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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캉’ 재도전과 선수의 자격[뉴스와 시각] ‘킹캉’ 강정호(37)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트라이아웃(입단테스트)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야구계가 시끌시끌하다. 강정호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라스트 댄스 도전 MLB 트라이아웃 에피소드 1’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서 그는 “많은 분이 투표해주셔서, 도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며 “나이가 많아도 늦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결과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 강정호는 자신의 채널에 투표 글을 올렸고, 약 3만 명의 팬이 참여한 결과 찬성 92%, 반대 8%가 나왔다고 소개했다. 이번 도전이 팬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고, 자신의 도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오랜 기간 실전 경력이 없으니 뽑아줄 팀이 없기 때문에 트라이아웃 절차를 거쳐야 한다.왕년의 유명 선수가 현역에 도전을 한다면 보통 박수를 쳐준다. 몇 년 전 유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원희 용인대 교수가 40대의 나이에 15년 만에 현역 복귀를 선언, 현역 때의 체급에서 스무 살 어린 후배들과 고된 훈련을 이겨내며 당당히 겨뤘고 자비로 국제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파리올림픽 출전에는 실패했지만, 많은 후배 선수의 귀감이 됐다. 하지만 강정호의 도전에 고개부터 갸우뚱해지는 것은 그의 과거 이력 때문이다. 그는 이미 음주운전과 음주뺑소니 등으로 ‘3진 아웃’을 당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2015년 15홈런, 2016년 21홈런을 기록하며 피츠버그의 주전 내야수로 자리 잡았지만, 2016년 12월 서울에서 음주뺑소니 사고를 내면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2009년, 2011년에 이어 3번째 음주운전인 것으로 드러나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이로 인해 미국 당국이 강정호의 취업 비자 갱신을 거부했고, 강정호는 2017년을 통째로 쉬었다.2018년 말미에 힘겹게 복귀했지만, 2019년 시즌 중에 방출됐다. 강정호는 이후 KBO리그에 복귀를 추진했지만, 싸늘한 여론만 확인해야 했다. 현재 강정호는 미국 LA에서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고 국내 스타 선수들도 레슨을 받고 있다. 그가 가진 재능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많다. 사고만 안 쳤더라도 대선수 반열에 올랐었을 수도 있다. 배리 본즈, 로저 클레멘스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들도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했다. 세상은 야구만 잘한다고 훌륭한 선수로 보지 않는다.더구나 그의 언행을 보면 그가 과연 달라졌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국내로 복귀하면 어떤 성적을 낼 것 같냐는 팬의 질문에 “3개월 준비하고 KBO를 가면 3루엔 김도영이 있으니 유격수로 복귀하면 골든글러브를 받을 수 있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KBO는 물론 후배 선수들 비하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팬이 판단하듯, 그는 이제 그냥 야구 유튜버다. 그의 도전에 “신규 콘텐츠, 조회수 아니겠냐” “딱 봐도 조회수 뽑는 거죠” 등의 반응이 많다. 덕승재(德勝才·덕이 재주를 앞서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아직도 그에게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인격적으로 성숙한 그를 보여주는 게 먼저다.
- 방승배 기자
- 2025-03-28 11:47
AI 시대와 ‘글쓰기 주권’[뉴스와 시각] 세상 참 알쏭달쏭하고, 사람 기이하다. 어느 때라고 안 그랬겠냐만, 요즘 ‘쓰기’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한쪽에선 챗GPT를 활용한 소설 작법 등 ‘AI 시대를 대비한’ 글쓰기 강좌가 성행이고, 다른 한쪽에선 일정 시간과 물리적 수고를 투입해야 하는 필사(筆寫)가 인기다. 관련 책이 대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하니, 제대로 유행이다. 언제나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과도기적 상태라지만, 한 화면에 담긴 두 장면 사이의 틈이 너무 넓고 깊어, 어디쯤 발을 디뎌야 할지 가끔 아찔하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AI의 창작에 대해선 가능성과 위험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수준이 인간에겐 한참 못 미친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AI가 쓴 기사, 시와 소설의 완성도가 매번 놀라움을 준다. 1년 전과 반년 전이 다르고, 일주일 전과 오늘이 다르다. 내일, 내년은 또 어떨까. 두려움과 기대감 속에 새로운 ‘글쓰기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챗GPT 활용’만 검색해도 그 뒤에 비즈니스·인문 글쓰기, 에세이·웹소설·단편소설 쓰기가 줄줄이 따라붙는다. 필요가 시장을 만들었을 터, 이 현상은 최근 각종 글쓰기 공모전이 ‘AI 사용 여부를 표기하라’고 공지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사람의 순수 창작을 선별하려는 문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AI가 쓴 글도 창작의 범주에 넣겠다는 ‘선언’이다. 또, 지난해 한 일본 작가가 챗GPT를 활용한 소설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은 후론 작가와 AI의 협업도 엄청난 뉴스는 아니게 됐다. AI가 실험이 아니라 이미 일상이 돼서다. 적어도 ‘쓰기’에서만큼은말이다. 이 작가는 최근 챗GPT로 쓴 소설을 또 발표했다고 한다. 전작에선 2%만 활용했으나, 이번엔 95%를 AI가 썼다. 현지 언론에 작가는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매우 만족.”이쯤 되니, 마음이 급하다. 하루빨리 ‘AI 글쓰기’ 수업을 들어야 할까. 발이 슬쩍 방향을 튼다. 그런데 이 풍경의 대척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필사 열풍’은 무언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이뤄놓은 것들을 꿀꺽 집어삼킨 AI가, 몇 초 만에 매끈한 글을 내어주는 시대에 한 땀 한 땀, 꾹꾹 눌러쓰는 행위 말이다. 손글씨는 AI가 오기도 전에, 진작에 사라진 유물이다. 손과 뇌를 쓰고, 시간과 마음을 쓰는, 도파민 한 톨 없는 필사의 귀환에 그럴듯한 분석은 이미 많다. 디지털 피로감에 대한 반동, 아날로그 감성의 충족, 문해력 보강 및 집중력 향상을 위해, 그리고 독서의 한 방법이자 힐링 혹은 명상으로서…. 가져다 대면, 다 그럴 법하다. 왜 쓰는지에 대한 물음을, ‘무엇을 쓰고 있나’로 바꿔본다. 우리가 쓰는 ‘그것’이 결국 우리가 ‘쓰는’ 이유니까. 필사의 대상은 시, 소설부터 격언과 명언, 드라마 대사와 노래, 경전, 여기에 최근 헌법까지 가세했다. 지극히 기본적인 것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해주는 양식들이다. 이를 읽고, 눈에 담고, 손으로 쓰며 마음에 새긴다. 정신이 고양되고 세계는 확장한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필사는 때아닌 유행이 아니라 제철이다. AI의 진격에 맞서 인간다움을 탐구하고 지키려는 수행이다. 결론은, AI 시대를 대비한 글쓰기라면 챗GPT 활용 강좌보다 이 ‘필사의 노력’이 먼저다. 머지않아 두 장면이 한 폭에 겹쳐지는 날, 분명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두, ‘글쓰기 주권’을 사수하시길.
- 박동미 기자
- 2025-03-27 11:44
트럼프·정의선 회동과 국익[뉴스와 시각] 미국 대통령의 공간인 백악관의 집무실(오벌 오피스) 바로 옆 회의실인 루스벨트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2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소개를 받고 미국의 국조(國鳥)인 흰머리수리가 새겨진 연단에 섰다. 그리고 향후 4년간 210억 달러(약 31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투자 계획을 발표한 첫 한국 기업인이다. 추측건대, 26일 조지아주 서배너의 자동차 제조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 플랜트 아메리카’(HMGMA) 준공식을 앞두고 투자 계획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알렸을 테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원하는 바로 ‘그것’, 미국에 공장 지어 상품을 미국에 팔겠다 나서니 발표 행사를 직접 주관할 뿐 아니라, 현대차를 두고 “진정 위대한 기업”이고 “대단한 기업”이라고 강조했다.비슷한 그림은 석 달 전에도 있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1000억 달러(143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손정의 회장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트럼프 1기 때 투자한 액수의 두 배를 내놓겠다는 데 대한 답례다. 일본은 크게 고무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통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까지 동원, 트럼프 대통령과 끈을 만들기 위해 목맨 일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2주가량 뒤인 2월 7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간 정상회담까지, 일본은 민과 관, 기업과 정부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제도와 체제, 다자간 협의보다 개인 간 협상과 친분을 더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에 맞춰 온 나라가 나선 모양새다. 그리고 그 핵심에 일본이 내세우는 기업의 과감한 대미 투자가 있었다. 트럼프의 ‘광폭한 관세전쟁’ ‘방위비 인상 압박’에서 일본은 한 발 벗어나거나, 아예 피해갈 수 있을 줄 알았다.하루하루 말이 바뀌는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아직까지는 일본의 희망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상호관세 부과 대상이 될 ‘더티(dirty) 15’에 유럽연합(EU), 중국, 한국 등과 함께 거론된다.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국가를 그냥 두지 않겠다는 의지 앞에 동맹이든 적이든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동맹에 훨씬 더 가혹하다는 뒷말이 나온다. 정상회담 뒤 한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듣고 싶은 말을 읊어준 이시바 총리의 행보, 일본 기업들의 움직임이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26일까지 일본에 대해서만 특별히 관대한 트럼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즉흥적이고 극단적이며, 예측이 쉽지 않은 트럼프 시대를 맞아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냉철하게 판단해 필요한 투자를 하는 기업의 행보는 그 자체로 생존과 성장을 위한 몸부림이다. 일본처럼 이를 과도하게 국가의 움직임과 결부시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른 정치적 고려 없이 오롯이 기업 자체의 판단, 논리로 이뤄진 행보야말로 자연스럽게 정부의 버팀목이 되고 국익에 보탬이 될 수 있다. 협상의 유연성을 높이는 카드가 될 수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원칙을 갖고 트럼프 시대에 대처하면 자연스레 국익을 위한 최적의 판단이 뒤따를 것이다.
- 민병기 기자
- 2025-03-26 11:52
경제 팽개친 野의 탄핵 중독[뉴스와 시각] 야권이 끝내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 버튼을 눌렀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 5당은 지난 21일 ‘기획재정부장관(최상목)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 무엇보다 이번 탄핵안 제출은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실익이 없다”며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내부의 반대 의견에도 탄핵안 제출을 강행했다.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이를 통과시키면 최 부총리는 곧바로 직무가 정지된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4일 업무에 복귀했지만,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상황에서 경제 컨트롤타워가 ‘기능 정지’된다는 점이 매우 우려스럽다. 최 부총리의 직무가 정지되면 김범석 기재부 제1차관이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업무를 대행하게 된다. 헌법재판소의 한 총리 탄핵 기각 판결로 야당의 최 부총리 탄핵안도 사실상 명분을 잃어버린 셈이 됐다. 한 총리가 복귀 첫 일성으로 “통상전쟁에서 국익을 확보하는 데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붓겠다”며 위기에 처한 경제의 회복에 전념하겠다고 밝혔지만, 민주당은 최 부총리 탄핵안을 밀어붙일 태세다. 지금 우리 경제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서 있다. 동맹이었던 미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에 대해 자동차·철강 등 주력 수출 품목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려 하고 있다. 어렵게 체결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전면 수정해야 할 판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자원과 국토가 풍부한 여느 선진국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오로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 보호무역주의의 발로는 ‘상권’이 없어지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경제정책을 총괄해야 할 기재부의 리더십 공백은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경제정책 리스크에 국내외 투자자들의 신뢰는 크게 훼손될 것이다. 이는 외국인 투자 감소와 원·달러 환율 상승, 증시 변동성 확대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의 관세전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한국의 주력 산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다. 유럽연합(EU)도 미국과의 관세전쟁에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각종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한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전략도 마련하지 못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고물가·고금리로 가계의 소비 여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이는 내수 침체와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도 날로 커지고 있고, 이에 따른 가계부채 문제는 이제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은 빠른 경제 리더십의 회복뿐이다. 경제 컨트롤타워 공백을 최소화하고, 미국의 관세전쟁에 대응할 전략을 하루빨리 세워야 한다. 고물가·고금리로 어려움에 처한 내수 진작을 위한 해결책도 시급하다.한국 경제는 지금 거대한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것은 튼튼한 리더십 아래 좋은 전략과 방책을 마련해 온 국민이 똘똘 뭉쳐 대응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지금 그 발목을 잡고 있다. 한탄스러운 일이다.
- 임대환 기자
- 2025-03-25 11:42
知中·用中 지혜도 필요하다[뉴스와 시각] “요즘 상하이(上海)가 한국인들로 북적여요. 상하이도 좋지만, 베이징(北京)도 좋다고 전해주세요.”지난 연말 한 행사에서 만난 화춘잉(華春瑩) 외교부 부부장은 한국 특파원이라는 기자의 소개를 듣더니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중국이 지난해 11월부터 한국인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를 시행한 이후 상하이를 여행하는 한국인의 숫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한 현상을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실제로 중국의 무비자 조치 이후 중국을 찾는 한국인이 많아졌다. 상하이와 칭다오(靑島)가 한국 젊은이들의 새 관광지로 떠올랐고, 이곳의 유명 맛집은 한국인들로 붐빈다. 요즘 중국 내 주재원들은 그간 비자 조치에 가로막혀 중국을 찾지 않았던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이들 맞이에 정신이 없다. 모두투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월까지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52% 늘었다.그러나 반대의 경우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급감한 방한 중국인 관광객의 수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약 602만 명이었지만,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460만 명에 그친다. 지금 중국인들에게 한국이 주는 매력도는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최근 베이징에서 만난 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큰 소비력을 가진 중국인의 경우 한국은 주요 관광지로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그나마 한국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보러 가는 젊은 중국인들만 한국 관광에 적극적”이라고 전했다. 여기에다 최근 탄핵 정국에서 반중(反中) 혹은 혐중(嫌中) 정서가 확산하는 것은 큰 문제다. 우리 정부는 중국 단체 관광객에 대한 한시적 비자 면제를 오는 3분기 중 시행할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해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고 경제를 진작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 추산에 따르면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100만 명 증가하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0.08%P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앞서 중국 정부가 한국에 무비자 조치를 시행한 데 대한 화답의 성격도 짙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훈풍을 타기 시작한 한·중 관계의 흐름을 이어가자는 취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얼어붙었던 한·중 관계는 지난해 5월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올해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한층 격화한 미·중 대결과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여러 방법으로 드러내고 있다. 중국이 한국에 내미는 손은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런 때 극우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혐중 메시지는 치명적이다. 주한중국대사도 일부 세력의 반중 감정 조장에 우려를 표했다. 악화하는 국민 감정이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 지중(知中), 용중(用中)의 자세가 필요한 때다.
- 박세희 기자
- 2025-03-24 11:45
프로야구 열풍과 유비무환[뉴스와 시각] 최근 야구인들은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오는 22일 개막하는 프로야구 개막전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자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이 조금이라도 끈이 닿는 관계자들에게 손을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선수와 감독 등 코칭스태프, 한국야구위원회(KBO)·구단 관계자는 물론이고 야구 기자들에게까지 ‘표를 구해 달라’는 요구가 연일 쇄도한다.이처럼 정규리그가 개막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프로야구 열기가 뜨겁다. 지난 8일 시작돼 18일 막을 내린 시범경기에는 총 42경기에 총 32만1763명, 평균 7661명의 관중이 야구장을 찾았다. 종전 기록인 7470명(2012년)을 넘어선 역대 최고 수치다. 올해는 전국구 인기구단인 한화가 2만 석 규모의 대전한화생명볼파크를 사용하고,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한 피치클록 등이 도입돼 2년 연속 1000만 관중 달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프로야구는 위기였다. 그간 프로야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득했다. 병역 비리, 승부조작, 불법 약물 투약, 음주운전 등 그동안 갖가지 범죄로 얼룩져 왔던 게 사실이었다. 그럴 때마다 리그의 신뢰는 바닥을 쳤다. 그러나 지난해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티빙과 중계권 계약, 로봇심판(ABS·자동볼판정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특히, 공정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정서에 ABS 도입 결정은 ‘신의 한 수’로 평가됐다. 이제 프로야구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를 넘어 관객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종합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야구장은 가성비 좋은 공간이자 놀거리, 먹거리, 볼거리가 겸비된 공간이다. 또, 젊은 여성 야구팬이 크게 늘면서 각종 굿즈(관련 상품) 등 상품 매출이 증가해 1500억 원을 돌파하는 이정표를 세웠다.지금 당장은 프로야구의 아성이 흔들림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인기가 영원하리라는 법은 없다. 2000년대 초반 침체기처럼 팬들이 다시 프로야구에 등을 돌리는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야구계 안팎에서도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허구연 KBO 총재도 지난해 12월 한 시상식에서 “1000만 관중에 도취하는 순간에 다시 900만, 800만 관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 야구계가 모두 힘을 합쳐 앞으로 계속해서 1000만 관중 그 이상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프로야구가 인기를 꾸준히 유지하려면, 야구단은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콘텐츠를 더 찾아야 한다. 단지 인증샷을 찍고 먹거리를 즐기기 위해 야구장을 찾았던 관중들의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아야 1000만 관중 시대가 이어질 수 있다. 악성 사건·사고는 가장 경계해야 할 적이다. 음주운전 사고, 사생활 문제 등 선수들의 일탈 행위는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높아진 인기만큼의 프로 의식을 가져야 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언젠가 지는 날이 있듯이 프로야구계도 ‘영원한 1등은 없다’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유비무환 자세가 중요한 때다.
- 정세영 기자
- 2025-03-21 11:41
동맹 교란할 ‘셰셰 줄타기’[뉴스와 시각]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이 오락가락 행보로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우방국들은 배신감을 토로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폭탄 발언에 연일 진땀을 흘리고 있고, 미국 내에서는 관세 불확실성에 투자와 소비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일관성 없는 행보 속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을 하나, 둘 챙겨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멕시코를 상대로 관세를 한 달간 유예해주는 대가로 자국으로의 불법 이민자와 펜타닐 유입 통로인 국경 통제 강화를 위한 자금과 인력을 약속받았다. 특정 국가에 이어 품목별 관세 부과 예고만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 기업들로부터 조 단위 선물 보따리도 챙겼다. 이 정도면 트럼프 대통령의 별명을 ‘매드맨’보다 ‘밀당의 고수’ 또는 ‘전략의 달인’이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해 보이기까지 한다. 미국의 통상 상대국에 이어 미국인들의 관세 반감이 커지고 있다지만,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집권 1기 때와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47%, NBC 조사)을 기록하고 있다.좌우를 오가는 오락가락 행보로 비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효과로만 보자면 꽤 괜찮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기 대선 시 향방을 가를 중도층이 민주당으로 향하는 것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좌측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하는 행보에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 대표가 자청해 보수 논객과 대담에 나선 것도 이례적 행보였다. 내용 자체도 화제가 됐다. 이 대표는 대담에서 “민주당도 잘못한 게 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돌아보면 우리가 완전무결하게 잘했다.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하며 탄핵 사태에 대한 책임 일부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체를 주장해온 재벌에 대해서도 “병폐가 많이 완화됐다” “국제사회에서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달라진 인식을 내비쳤다. 반대편에서는 진의를 의심하지만, 이 대표는 이러한 자신의 변화를 “유연성”으로 표현했다.이 대표의 유연성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통할까.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들은 저를 ‘한국의 트럼프’라고 부른다”며 스스로를 ‘실용주의자’로 칭했다. 이 대표가 과거 트럼프 대통령을 실용주의자로 평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질감을 나타내며 호감을 내보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도 셰셰(謝謝), 대만에도 셰셰”라는 그의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유연성으로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외교·안보 관계에서 유연성은 그저 모호한 태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DC에서는 미군을 ‘점령군’으로 부르고, 한·미·일 해상훈련을 ‘국방 참사’ ‘안보 자해’라고 평가했던 이 대표의 과거 발언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최근 이 대표가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 대표의 말대로 미국이 걱정하지 않도록 외교·안보 노선을 또다시 바꾸지 않길 바란다. 정세가 급변하는 시기, 괜한 줄타기로 혈맹 미국의 의심을 사는 건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다.
- 황혜진 기자
- 2025-03-20 11:48
‘징벌적 상속세’ 없앨 때다[뉴스와 시각] 상속세가 도입 75년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정부가 총재산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방식에서 상속인 각자가 물려받은 재산에 세금을 물리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과세 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상속세는 과세표준(과세의 기준) 1억 원 이하엔 10%, 1억∼5억 원엔 20%, 30억 원 초과엔 50%의 세율을 적용하는 누진 체계를 따른다. 이 때문에 재산을 통째로 과세 대상으로 삼아 세금을 부과하는 현행 유산세 방식보다 상속인별로 잘게 쪼갠 재산에 세금을 각각 부과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일 때 납세자는 세금을 덜 내게 된다. 정부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30억 원을 배우자와 두 성인 자녀 등 총 3명에게 10억 원씩 상속할 경우 지금 상속세 기준으로는 총 4억4000만 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뀔 경우 배우자를 제외한 두 자녀만 9000만 원씩 총 1억8000만 원의 세금을 내면 된다. 낼 세금이 절반 넘게 줄어드는 셈이다. 상속세는 처음 도입됐을 당시만 해도 소수의 부유층이 내는 세금으로 여겨졌다. 상속인들이 아무 대가 없이 취득한 ‘불로소득’에 세금을 매겨 실질적 평등 원칙을 실현하기 위함이 부과 근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자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상속세는 더 이상 부자들만의 고민거리가 아닌 상황이다. 올 1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13억8000만 원에 달한다. 서울 아파트 한 채 가격 수준인 15억 원짜리 아파트를 3명의 자녀에게 물려준다고 가정했을 때, 현재 방식으로는 일괄공제 5억 원을 뺀 과세표준 10억 원에 대해 2억4000만 원의 세금을 물린다. 자녀 1명당 8000만 원씩 상속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하면 늘어난 자녀 공제 5억 원을 적용해 자녀당 과세표준 자체가 0원이 돼 내야 할 세금이 없어진다. 부모가 한평생 피땀 흘려 꾸린 아파트 한 채나마 자녀들에게 그대로 물려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상속세 과세가 없는 나라는 호주 등 14개국에 달한다. 전 세계적으로 상속세 폐지·축소가 대세가 되고 있다. 상속세를 유지하는 국가도 직계비속에 대해서는 면세·감세 혜택을 줘서 실제 세금폭탄을 맞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부가 지난 2월 일반 국민 1만 명과 전문가 3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일반 국민의 82.3%, 전문가의 85.3%가 상속세 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최대 주주 할증까지 붙으면 최대 60%까지 치솟는 상속세율 때문에 문을 닫은 우량 중소기업 사례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한국무역협회가 중소기업인 79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4명은 “상속세 문제 등을 이유로 가업을 승계하지 않고 매각이나 폐업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상속세수가 10% 줄면 장기적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0.6% 증가한다는 보고서까지 나왔다. 여야가 배우자 상속세 폐지 등에 공감대를 형성하는가 싶더니 정부의 유산취득세 전환 발표 후 야당에선 ‘부자 감세’라며 다시 상속세 개편에 대한 반대 기류가 흐르고 있다.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징벌적 과세는 바꿔야 한다.
- 박수진 기자
- 2025-03-19 11:34
배달앱 시장 개혁 필요하다[뉴스와 시각] 최근 광주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던 50대 자영업자 A 씨는 직원들이 퇴근한 후 가게 화장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6년 전 거액의 빚을 내 식당을 차린 A 씨는 창업 초기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했지만, 이번 불경기까지 버틸 힘은 없었다. 그는 유서에서도 ‘장사가 안돼 힘들다’고 괴로워했다. 코로나19라는 혹독한 시련을 견딘 음식업계가 요즘 더 큰 고통을 호소하며 하나둘 쓰러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570만 명이었던 자영업자가 올해 1월 55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불과 두 달 사이 20만 명이 폐업을 선택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2020년 수준이다. 음식업 자영업자는 전체의 10% 정도 된다. 하지만 한국의 음식업계는 영세한 경우가 많아 폐업 비중은 훨씬 높다. 2023년 음식사업자 폐업률은 16.2%로 전체 업태 중 최대였다. 당시 폐업한 음식사업자는 15만8279명으로 월평균 1만3190명이 문을 닫았다. 이는 2020년(14만282명)을 넘어선 것이다. 지난해엔 2023년 수준을 뛰어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음식업계의 고통이 가중되는 이유는 원재료비가 상승하고 인건비와 임차료 부담까지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배달앱 수수료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 결과, 외식업 점주들이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요인은 배달앱 수수료였다. 음식업계는 가장 악질적인 배달앱으로 시장점유율이 60%에 달하는 배민(배달의민족)을 겨냥하고 있다. 2010년 창업해 2018년 유니콘 기업이 된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배민은 2020년 독일 기업에 매각된 이후 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배민의 수수료는 지난해 10% 수준까지 올랐다. 최근 여론의 압박에 밀려 매출에 따른 차등 수수료제로 바꾸긴 했지만, 포장 주문만 해도 중개 수수료를 6.8%나 떼어가는 폭리 구조는 여전하다. 과도한 수수료 논란으로 국회 국정감사에 단골손님으로 끌려 나갔던 카드업계도 현재 영세 가맹점에 대해 0.5%만 수수료를 받는다. 음식업계에선 아무리 장사가 잘돼도 매출의 30% 이상이 배민 등 배달앱으로 넘어가는 구조라고 증언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2023년 매출액 3조4155억 원, 영업이익 7000억 원으로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그해 배당으로 독일 모기업에 유출된 돈만 4127억 원이었다. 해외 유니콘 기업들은 인공지능, 로봇 등 미래 자국의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데, 한국의 유니콘 기업이라는 회사는 국내에서 자영업자들의 고혈만 빨아들이며 영업이익률 20%를 넘겼다. 또, 그 이익의 절반 수준은 해외로 빼돌리는 모양새다. 외국에도 음식 배달 기업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배민만큼 이익률이 높고 자영업자들에게 절대적인 갑으로 존재하는 기업은 없다. 배민의 주인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는 매년 거액의 적자다. 미국 1위 딜리버리 기업인 도어대시도 2023년까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제 자영업자를 착취하고 배달 라이더만 경쟁의 질주로 내모는 배달 기업을 근본적으로 손볼 때다. 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달앱 시장 개혁을 통해 증명해야 할 것이다.
- 김만용 기자
- 2025-03-18 11:42
北 핵잠 앞 기막힌 안보 현실[뉴스와 시각] 북한이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을 선보인 지 2년 만에 핵탄두 장착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최대 6000t급 핵추진잠수함(핵잠)인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 및 ‘북한판 이지스함’ 2척 건조 모습을 지난 8일 공개했다. 북한은 2021년 핵잠 공식 설계 검토(기본설계)를 끝냈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독자 기술로 핵잠이나 ‘북한판 이지스함’을 건조하는 건 불가능하다. 철강 산업이 매우 낙후된 북한이 잠수함 압력선체용 HY-80 이상 특수강을 자체 제작·가공해 압력선체를 만들거나, 소형 원자로를 제작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김정은이 젊은 병사들을 총알받이로 러시아에 파병한 대가로 소형 원자로와 수만 가지 부품·재료들, 이지스함 첨단 장비들을 지원받아야 핵잠·‘북한판 이지스함’을 건조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북한 해군력 증강사업이 무서운 속도를 내는 것은, 김정은이 진두지휘하며 러시아 기술을 도입, 국가 총력전을 펴기 때문이다.2020년대 후반쯤 동해에서 한반도를 향해 핵미사일을 날릴 북한의 대형 전략원잠 위협이 현실화돼 국제질서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로 등장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정부는 북·러 협력이 심화하고 북한 비대칭 전력이 대응 불가능할 수준까지 성장하는 동안 이렇다 할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지금이라도 경각심을 갖고 대비하지 않으면 북한 전략원잠은 대한민국 미래에 끔찍한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잠수함 전문가인 문근식 한양대 특임교수는 “비닉(대외비) 사업으로 묶여 있는 국내 핵잠 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전환,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연구개발과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미국에 방위비를 더 내는 한이 있더라도 핵잠 기술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안했다.북한 핵잠이 동해 바다를 휘젓고 다닐 날이 코앞인데도 방산 현장에선 기막힌 안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핵잠 개발은 고사하고 북한 핵잠 등 수중 핵 도발을 막을 ‘수중 킬체인(Kill Chain)’ 핵심인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은 국익보다 사익(社益)을 앞세운 방산업체 법적 분쟁 등으로 1년 가까이 표류 중이다. 방산업체가 정부 사업 일정·방식까지 쥐락펴락하고 방위사업청은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 보니, 해군참모총장이 나서 KDDX 건조업체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서신을 보내 ‘해군 함정 적기 전력화 필요성’을 읍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우리나라에 함정 방산 도움 청구서를 본격적으로 내밀 경우, 이지스함 설계 능력을 갖춘 엔지니어를 대량 요구할 수 있다. 그에 앞서 상세설계를 빨리 마쳐야 하는데, 사업이 지연될수록 미국 요구와 중첩돼 KDDX 사업 추진이 굉장히 힘들어질 수 있다. 이런 마당에 방산 관련 정치권 인사들이 적기 전력화는 도외시한 채 특정 기업 이해관계에 매몰돼 ‘KDDX 사업을 다음 정권으로 미뤄야 한다’며 방사청에 압력을 가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핵잠·KDDX 건조 사업은 골든 타임을 놓쳐 북한에 뒤처지고 나면 땅을 치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 정충신 선임 기자
- 2025-03-17 11:23
저출생 해결 위한 골든타임[뉴스와 시각] 바바(Vabba), 보바(Bobba), 라테 파파, 라테 맘마…. 스웨덴에는 육아 관련 신조어가 흔하다. 바바는 ‘집에서 아이를 돌본다’란 의미다. 스웨덴어로 돌보다(varda)와 아이(barn)를 합친 말이다. 보바는 코로나19 사태 때 생긴 말이다. 바바와 일하다(jobba)의 합성어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일한다는 뜻이다. 바바와 보바는 직장에서 자주 쓰인다. 모든 직장인은 바바와 보바를 위해 결근할 수도, 재택근무할 수도 있다. 바바를 통해 태동된 이들이 라테 파파와 라테 맘마다. 한 손엔 커피를 들고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끄는, 스웨덴 육아 문화를 상징하는 이들이다. 한 나라의 말엔 그 나라 문화가 투영돼 있다. 우리 육아 문화는 ‘독박육아’ ‘4세 고시’ 등으로 대변된다. 고달픈 육아는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을 한 세대 만에 절반 이하로 떨어뜨렸다. 섬뜩한 전망도 잇따른다. 지난 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저출생 실태를 우려하는 책자를 사상 처음으로 펴냈다. 골자는 2023년 0.72명 수준인 합계출산율이 유지되면 한국 인구는 75년 후 2000만 명 초반대로 반 토막 난다는 것이다. 2082년엔 전체 인구 10명 중 6명가량은 65세 이상 노인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았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9년 만에 반등했다는 통계가 나온 지 1주일 만에 나온 경고다.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전년보다 0.03명 늘었다. 현재로선 추세적 반등과 ‘반짝’ 반등 여부를 가늠할 수 없다. 아이 울음소리가 커졌다고 하기에도 미미한 수치다. 정부 희망대로 내후년 합계출산율이 0.8명대로 진입한다고 해도 갈 길은 멀다. OECD 회원국 중에서 합계출산율 1.0명을 밑도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인구정책 전문가들은 0명대 출산율은 전쟁이나 전염병 창궐 없이는 불가능한 수치로 보고 있다. 낙관할 수 없는 이유다. 스웨덴이 ‘보육 천국’의 토대를 세웠던 계기는 인구 위기다. 1980년대 초 합계출산율이 1.6명까지 떨어지자 사회 구조를 바꾸는 제도 개혁에 나섰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회·경제적 원인을 없애기 위해서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했고, 동거부부를 포용하는 ‘동거법’을 제정했다. 모든 영역에 남녀가 평등하게 혜택과 책임을 나눈다는 ‘차별금지법’도 만들었다. 정책은 사회 인식을 바꿨다. 라테 파파가 흔해지자 전업주부와 경력 단절 개념은 사라졌다. 합계출산율은 2.0명대로 다시 올라섰다. 정답지는 나와 있다. 아이를 기를 만한 환경이 되면 낳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겐 결혼과 출산은 불리한 ‘선택’이다. 결혼하면서 비싼 집값을 감수했는데 아이까지 낳으면 ‘헬육아’가 기다린다. 육아휴직이라도 하면 소득은 줄고 경력은 끊긴다. OECD는 직접적인 재정 지원보다 일과 가정이 양립하도록 육아휴직 제도와 노동환경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20년 가까이 250조 원 예산을 퍼붓고도 출산율은 세계 꼴찌다. 죽은 정책이었단 얘기다. 사회 분위기를 바꾸려면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저출생은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위기다. 정책이 다시 공회전한다면 우리 앞에 닥칠 미래는 인구 절벽뿐이다.
- 권도경 기자
- 2025-03-14 11:39
‘내전 사회’ 막을 尹의 선택[뉴스와 시각] 지난 8일 구속취소 결정이 난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구치소를 나와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꽉 쥐어 보이고 90도 인사를 여러 차례 했다.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 정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나는 건재하다’며 권력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구치소에서 관저로 무대를 옮긴 윤 대통령은 곧바로 여권 인사들을 차례로 접촉했다. 헌법재판소 선고를 앞둔 예민한 시점인 만큼, 대통령의 대외 활동이 자칫 갈등 조장·여론 분열로 해석될 수 있지만, 윤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참모들이 있는 용산에서는 ‘절제 또 절제’를 강조하는데, 대통령이 있는 한남동에서는 ‘관저 정치’가 이어지는 그림이 펼쳐지는 것이다.윤 대통령은 어쩌면 기각·각하 이후 상황을 본격 대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윤 대통령 주변에서 기각 가능성을 높일 목적으로 논의되던 ‘임기 단축 개헌 스케줄 제시’가 올스톱된 것도 이 같은 기류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기각이 코앞인데, 뭐하러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는 의견이 수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처럼, 윤 대통령 측은 기각·각하 의견이 담긴 그럴듯한 보고서를 올리고 있을 수 있다.헌재 결정이 어떻게 나든, 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절제’다. 기각 결정이 나도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에 대한 판단이 근소하게 갈렸을 뿐일 것이다. 복귀 시, 윤 대통령은 제한된 권력을 국민이 원하는 곳에 한시적으로 써야 한다. 윤 대통령 스스로 “임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제한하고 비대해진 국회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개헌 작업에만 온 힘을 쏟는 게 바람직하다. 복귀를 해도 명태균 관련 의혹,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이 사라지지 않는다. 윤 대통령 보폭이 커지면, 이 의혹도 덩달아 커질 게 자명하다. 여권 관계자는 “개헌에 착수해 ‘개헌 대통령’이 되는 게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파면 결정 시, 윤 대통령은 이를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즉각 수용해야 한다. 탄핵심판 과정의 법 기술자 면모, 지지자를 최대 방어막으로 삼는 선동 정치의 공간은 더는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불복의 정치를 한다면, 우리 사회는 내전 상태가 될 것이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황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국제사회 질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넷플릭스의 판타지 드라마 ‘중증외상센터’의 의사 백강혁은 “외상센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후배 질문에,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의사가 된 이유 그거 아니었나”라고 답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썼다. 믿기지 않는 44년 만의 판타지 같은 비상계엄을 한 윤 대통령도 헌재 결정에 앞서 ‘내가 대통령이 된 이유’를 톺아봤으면 한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대통령으로 기록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 손기은 기자
- 2025-03-13 11:39
‘尹 석방’에 기여한 野 원죄[뉴스와 시각] 윤석열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풀려나자,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 5당은 10일 심우정 검찰총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고, 심 총장 탄핵소추안 발의도 공언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패라 그런 것(아니겠나)”이라며 몰아세웠다. 또, “검찰이 그 흔한 산수를 제대로 못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검찰이 즉시항고를 하지 않은 부분은 비판 소지가 있다. 법에 보장된 검찰 권한이고,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즉시항고를 하는 게 맞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검찰 탓인가. 결정문을 보면 재판부가 구속을 취소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윤 대통령은 구속 기간이 만료된 상태에서 기소됐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영장실질심사로 인해 수사 서류가 법원에 있던 기간을 구속 기간에서 제외하며 ‘일(日)’을 기준으로 계산했지만, 재판부는 시간으로 계산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법원은 구속 기간 산정과는 별개로 공수처 수사권 논란 등도 사유로 들었다.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고, 공수처와 검찰이 피고인 신병을 이전하면서도 신병인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구속한 것이 위법한지는 본안 재판, 나아가 최종심인 대법원에서 판단할 사안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이러한 논란을 그대로 두고 형사재판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 상급심에서의 파기 사유는 물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심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향후 절차적 흠결이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문제를 더 키우면 안 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정인 셈이다.이 대표 말처럼 산수 실수로 사안을 규정한다면 사실을 상당히 호도하는 게 된다. ‘일’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은 오랜 관례였다. 법원 결정이 나온 직후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형사소송법은 ‘일’과 ‘시간’에 대한 개념을 구분하고 있다”며 법원이 무리한 해석을 해 선례를 뒤집었다고 짚었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공식 발언에서는 이 같은 지적을 찾을 수 없다. 정말 산수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법원에 먼저 따져야 한다. 왜 갑자기 구속 기간 산정 방식을 바꿨나, ‘장삼이사’가 아니라 하필 최고 권력자가 피고인인 사건부터 적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법원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침묵하기에 이 대표의 개인적 상황이 작용했다는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대표로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사법부와 각을 세우는 건 피하고 싶을 것이다. 공수처와 관련해서는 야당 내에서 비판 하나 찾기 어렵다. 공수처를 둘러싼 논란은 초기부터 불거졌지만, 민주당은 항상 공수처 편이었다. 윤 대통령 수사 주체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검찰은 빠져라”라고 하면서 힘을 보탠 게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이른바 검찰 개혁을 통해 이뤄낸 가장 큰 성과가 공수처다. 구속 취소 결정으로 형사사법 시스템의 결함이 다시 한 번 드러났지만, 이를 인정할 수는 없을 테다. 윤 대통령이 관저로 돌아갈 수 있었던 데에는 의도와는 관계없이 민주당 역시 큰 몫을 했다.
- 조성진 기자
- 2025-03-12 11:35
경제 망칠 ‘신기루’ 공약들[뉴스와 시각] 헌법재판소가 조만간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여·야 정당이 물밑에서 국민에게 제시할 경제 분야 공약(公約)을 가다듬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될 경우 60일 안에 대통령 선거를 해야 하니 정당 입장에서는 공약 개발이 발등의 불이 될 것이고,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보수와 진보 진영 간 대결이 어느 때보다 격화한 상황에서 앞으로 ‘공약 전쟁’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최근 발표된 대선 공약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경제 공약의 대표적인 사례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산하 민주연구원이 지난 2일 공개한 유튜브 영상을 통해 밝힌 “(한국에)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하나 생겼다면, 70%는 민간이 가지고 30%는 국민 모두가 나누면 굳이 세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발언이다. 그는 “앞으로 도래할 인공지능 사회에서, 엄청난 생산성의 일부를 공공의 영역이 가지고 있으면 모든 국민이 그걸 나누는 시대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발상이 현실화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회사가 나올 것을 예상해서 미리 지분의 30%를 국가나 국민 펀드가 갖겠다는 식의 발상은 역설적으로 엔비디아 같은 회사의 출현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6일 밝힌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 500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명분이야 좋지만, 돈을 어디서 마련할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를 통과한 올해 정부 예산(총지출)이 673조3000억 원 정도다. 500조 원이라는 큰돈을 어떻게 조성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힌 뒤 어디에 쓰겠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태도일 것이다. 최근 여·야 정당이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감세(減稅) 정책도 예상되는 조세수입 감소분 등에 대한 분석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안도걸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2022년 22.1%에서 2023년 19.0%에 이어 지난해에는 17.7%로 급락했다. 조세부담률이란 국세와 지방세 수입이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국민 세 부담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감세 정책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조세부담률이 불과 2년 만에 4.4%포인트나 급락하는 것을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경제 공약 중 하나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근거를 찾기 어려운 어설픈 가설(假說)을 국가 정책으로 내세운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과거 개발연대(開發年代)에나 통했을 법한 미래 성장률이나 물가, 1인당 국민소득 등을 수치로 제시하는 ‘믿거나 말거나’ 식 공약도 더는 나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당이 경제 공약을 내놓을 때 국제적으로 넓은 시야를 갖추고,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다면 실현 가능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조해동 기자
- 2025-03-11 11:46
관세 無風지대, K-콘텐츠[뉴스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에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그는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서라면 동맹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관세 폭탄을 던지고 있다. 철강과 알루미늄 같은 원자재에서 시작해 적용 분야를 반도체와 자동차로 확장하고 있다. 누가 봐도 일방적이지만, 세계 1등 국가로서의 체면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돈 보따리를 싸 들고 온 CEO에겐 찬사를 보내는 반면, 빈손의 리더에겐 면박을 주고 심지어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지난달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하이라이트였다. 휴전과 평화를 염원하며 광물협정을 하러 온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모욕을 준 후에 돌려보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물론 영국과 유럽연합, 아시아 일부 국가 등이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자국의 안보와 미래를 놓고, 더는 미국의 선의를 바랄 수 없다는 공통된 위기의식이 깔려 있었다. 대만의 TSMC는 미국에 1000억 달러(약 146조 원) 투자를 약속했고, 일본은 이보다 앞서 대미투자 1조 달러로 확대라는 ‘당근책’을 제시했다. 트럼프의 이른바 ‘미친놈(Mad Man)’ 전략에 응한 셈이다.그런데 한국은 아직 대화도 시작하지 못한 상태다. 대통령 탄핵과 여야 극한 대립의 비상시국에 외교나 통상 문제를 챙길 여력조차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차라리 트럼프의 시야에서 조용히 벗어나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자조적 분석도 나온다.관세정책은 트럼프가 이번에 새롭게 내놓은 협상 카드가 아니다. 이미 집권 1기 때부터 국가안보를 이유로 ‘무역확장법 제232조’를 적용해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은 철강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 수출 쿼터제를 수용해 방어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 강도가 더욱 거세고 빠르며, 전방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자칫하다간 공들여 쌓은 선진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도 있다. 고율의 반도체 관세, 주한미군 분담금 증액 등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미국의 막무가내식 공세를 막아낼 비장의 카드가 아직 남아 있다. 바로 K-콘텐츠다. K-콘텐츠는 ‘매드맨’ 트럼프의 관세정책에서 가장 영향을 덜 받는 분야로 꼽힌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 품목에서 서비스업이 빠져 있고, 특히 음원, 콘서트 티켓 수입 등으로 이뤄진 K-팝은 관세를 매기기에 모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방송영상 콘텐츠의 글로벌 OTT 의존도가 높다거나, 중국의 한한령 같은 비관세 방식의 장벽이 있긴 하다. 그래도 웹툰, 엔터테인먼트 등은 관세·비관세의 장벽보다 콘텐츠 자체의 매력에서 성패가 갈린다는 점에서 ‘관세 무풍지대’로 여겨진다.올해는 방탄소년단(BTS)이 군에서 제대해 돌아오고, 블랙핑크가 다시 뭉쳐 월드투어를 시작하면서 한동안 주춤했던 K-팝에 서광이 비치고 있다. 6월에는 ‘오징어 게임’ 시즌3가 공개돼 기대를 모은다. 지긋지긋했던 중국의 한한령도 곧 풀릴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오히려 K-콘텐츠 재도약의 좋은 기회다. 우선 ‘때리고 보는’ 트럼프의 ‘협상의 기술’에만 휘말리지 않으면 된다.
- 김인구 기자
- 2025-03-10 11:43
선관위, 전면 개조 급하다[뉴스와 시각] 수년 전 지인들과의 저녁 자리에 ‘선관위 계약직’으로 일한다는 한 여성과 동석한 적이 있다. 재기발랄했던 그는 직장 상사들 험담을 한참 동안 쏟아냈는데 주로 선관위 직원들의 ‘끼리끼리’ 조직 문화와 나이를 막론한 ‘꼰대질’에 관한 얘기였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사람들은 뭘 잘못했는지도 몰라요.”최근 선관위 채용 비리 사건을 다루면서 그 한마디가 머리를 스쳤다. 특혜 채용에 관여했던 선관위 직원은 감사원 조사에서 “믿을 만한 사람을 뽑기 위해 친인척을 채용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했다. “선관위는 가족 회사”라는 발언도 나왔다. 비리가 적발돼 조사받는 처지에 이런 황당한 말을 해명이라고 한 것이다. 선관위는 2023년 채용 비리 논란 당시 고위직 자녀 5명을 직무 배제했다가 반년 만에 슬그머니 업무 복귀 조치를 해 놓고 “선거를 앞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혜택이라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뭐가 잘못인지 알았다면 하기 힘든 말들이다. 선관위 공무원들은 선거 때가 되면 휴직을 했더라도 복귀해서 일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선거철마다 무더기로 휴직한다. 선관위는 이런 휴직자 급증을 지방 공무원 경력 채용을 위한 핑계로 삼았다. 선관위 공무원들은 이 자리에 지방 공무원인 자녀를 깨알같이 뽑아 넣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리와 기강 해이는 아마 여기가 끝이 아닐 것이다. 선관위는 영국 버킹엄궁전, 이탈리아 콜로세움 등 관광지를 도는 국외 연수 프로그램이 논란이 될 때마다 반짝 ‘시정’을 다짐하곤 비판이 잦아들면 버젓이 다시 관광지를 돌았다. 2023년엔 몰디브와 코타키나발루, 지난해엔 영국·미국·캐나다에 다녀왔다. 정치권 관계자는 선관위 국외 출장에 대해 “선거철 고생한 직원들에 대한 포상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62년간 348명에서 3000명 규모로 인원이 늘었는데도 틈날 때마다 조직 확대를 모색해왔다. 건물을 짓는 데만 300억 원이 투입되는 선거박물관이 대표적이다. 선관위는 2023년 선거박물관 건립을 위한 보고서에 총 28명의 운영 인력이 필요하다고 썼는데, 퇴직 공무원 임용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2013년에는 일반 시민에게 체계적인 선거교육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선거정치교육원’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기존 선거연수원 인원과 예산을 늘리고 원장직도 차관급 정무직으로 승격하는 전형적인 몸집 불리기 방안이다. 오늘날 선관위는 공공연한 채용 비리, 근무 태만에도 이를 바로잡을 자정 능력까지 상실한 조직이 됐다. 성역 안에서 키워온 ‘우리’에 대한 관대함이 고도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헌법기관의 도덕 관념을 수십 년간 갉아먹어 온 것이다. 앞으로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선관위원장은 고개를 숙이겠지만, 조직의 고질병은 낫지 않을 것이다. 선관위가 제시한 외부 인사 주도의 한시적 특별위원회도 비난 여론을 피하기 위한 미봉책일 가능성이 크다. 감사원이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직무 감찰할 수 없다면 국회가 이를 감시하고 견제할 책임이 있다. 여야는 국정조사·국정감사를 뛰어넘는 외부 감시 장치를 마련해 선관위 통제를 제도화해야 한다.
- 김윤희 기자
- 2025-03-07 11:44
WTO 제소라는 공허한 대응[뉴스와 시각]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이 지난 4일부터 기어코 멕시코·캐나다에 대해 25%의 관세 부과(자동차만 한 달 더 유예)를 시행했다. 캐나다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인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을 체결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 우호국이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보복 관세 부과 방침과 더불어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분쟁 해결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믿었던 미국으로부터 이런 대우를 받은 캐나다가 마련한 대응책이겠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당황스럽다. ‘WTO 제소’가 실효성 있는 대응책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취임 후 미국의 대미 적자에 따른 무역 불균형 해소 등 각종 이유, 근거, 명분으로 ‘관세전쟁’으로까지 불리는 관세정책을 내놨다. 반면,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새로운 관세정책에 대해 “어떠한 정당한 근거나 필요성도 없다”고 비판했다. 제2, 제3의 멕시코·캐나다가 될 수 있는 다른 국가들에는 트뤼도 총리의 지적이 더 옳은 소리로 들릴 것이다.앞서 지난달 미국의 관세 부과 정책에 반발한 중국도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는 WTO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제소 방침을 밝혔다. 2001년 뒤늦게 WTO에 가입하고도 가입의 전제였던 시장경제 도입과 민주주의 수렴, 인권 존중이 20여 년 동안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중국조차 다급하니 WTO를 찾는다. 현 국제사회가 국제법이나 국제규범, 호혜·평등의 원칙이 적용되는 상태였다면 애초부터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정책 자체가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WTO를 통한 국제사회 통상 분쟁 해결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미국도 ‘관세 폭격’으로까지 비하되는 정책을 결정, 발표하지 못했을 것이다. WTO는 다자무역 체제의 근간으로 범세계적 교역 확대와 무역규범 강화, 특히 회원국 간의 무역분쟁 해결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교역 핵심 기구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1기 재임 시절 ‘큰 그림’을 그려 놓기라도 했는지, WTO의 분쟁 해소 기능은 사실상 마비 상태다. 미국 측은 2019년 당시 WTO의 분쟁 처리 절차를 담당하는 상소 기구 위원 선임 승인을 거부해 상소 기구 구성이 불가능해졌다. 이에 무역분쟁이 WTO에 접수돼도 하급심 격인 패널 절차를 거친 이후 상소심을 진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통상 분야 학계에서는 미국 주도의 새로운 무역기구가 설립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처럼 WTO 체제는 이미 유례없는 위기 상황이고 회원국들도 WTO 분쟁 해결제도의 개혁을 논의 중이지만, 상황을 타개할 묘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미국의 관세 폭격을 맞은 뒤 WTO 제소를 언급한 캐나다와 중국도 물론 이런 상황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WTO 제소라는 공허한 반박을 할 수밖에 없는 그 나라들의 입장과 격해지는 관세전쟁 속에 유효한 기능을 할 수 없는 WTO의 처지가 유감스럽다. 이는 국내 통상 당국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최근 방미를 계기로 구성한 미국 측과의 실무협의체를 통해 개별 협상에 더욱 치중해야 한다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현상이다.
- 박준희 기자
- 2025-03-06 11:51
사법 불신 키운 ‘원님 재판’[뉴스와 시각] ‘남북 분단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법적 논리로는 미처 다 설명할 수 없는 ‘모순과 공백’이 도처에 산재해 있음.’ 2월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허경무)가 문재인 정부 당시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의 주역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에 대해 기소 2년 만에 내놓은 1심 선고에서 각각 징역 10개월, 6개월 선고를 유예하며 밝힌 양형 사유다. 선고유예는 2년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것으로 유예기간이 끝나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전과기록도 남지 않는다. 정 전 실장 등은 2019년 11월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어민 2명을 5일 만에 북송했고 이들은 며칠 뒤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 최대 쟁점은 탈북어민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판단하느냐였다. 재판부는 “국적법 제2조에 따라 이들이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 지위를 취득했다”면서도 “사회적 공론화·토론으로 모순과 공백을 메우는 대신 피고인들을 처벌하는 게 나은 해결책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판결의 또 다른 논쟁거리는 선고유예 요건이었다. 형법 제59조는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의 형을 선고할 경우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때 선고를 유예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2003년 대법원 판례상 꼭 죄를 깊이 뉘우쳐야 선고유예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반성 정도가 중요 요건인 셈이다. 하지만 정 전 실장 등은 선고 직후 “재판부가 밝힌 내용이 사실은 피고인들이 무죄임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202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1심에서 선고유예를 받은 비율은 0.78%였다. 약 130명 중 1명만이 받는 가장 가벼운 처분을 내린 것인데 재판부 스스로 우리 국민으로 규정한 탈북어민들을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북송한 행위가 과연 죄질이 경미한 사안인지 의문이다. 남북 분단이 계속되고 탈북어민 북송과 같거나 유사한 사건이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재판부의 솜방망이 처벌은 동일한 위법행위가 반복될 수 있도록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는 평가다.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은 법관의 양심이 개인적 소신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의해’ 뒷받침되는 직업적 양심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법관이 헌법과 법률보다 양심이나 재량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 소신을 앞세우면 민주주의 기반인 법치주의는 흔들릴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정치 사법화로 사법 불신이 심화하고 사법부 독립마저 위협받는 상황이다. 법원 난입 사태가 발생하고 특정 법관의 신상을 털거나 인신공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기본권을 보호하고 법의 정의를 구현하는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에 대한 공격은 용납할 수 없지만, 법원도 이를 자초했다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법리’가 아니라 ‘법리로 설명할 수 없는 모순과 공백’을 내세워 국민의 생명을 사지로 몰아넣고도 반성 없는 고위공직자를 솜방망이 처벌하는 판결은 사법 시스템의 공정성에 의심을 갖게 하는 주범이다. 오직 법리에 따라 재판하는 법관이 필요한 시대다.
- 김남석 기자
- 2025-03-05 11:37
‘익명 시대’ 비판한 봉준호[뉴스와 시각] 지난달 28일 공개된 영화 ‘미키17’은 봉준호 감독이 내놓은 첫 공상과학(SF)물이다. 기대감은 흥행으로 반영됐다. 지난 연휴에만 13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이 영화를 챙겨봤다. 정작 봉 감독은 “SF영화이지만, 현실과 견주어보면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미키17’을 봤다면 봉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죽으면 즉시 다시 프린팅돼 위험한 임무에 재차 투입되는 복제 인간 미키를 둘러싼 살풍경이 저임금을 받고 쳇바퀴 도는 소모적인 삶을 반복하며 정체성을 잃어가는 현대인과 몹시 닮았기 때문이다.‘미키17’의 원작 소설 ‘미키7’ 속 주인공 직업은 역사학자였다. 하지만 봉 감독은 이를 보육원 출신 청년으로 바꾸었다. 그는 사채를 끌어 마카롱 가게를 열었다가 망했다. 이후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다 내몰리듯 우주행 비행선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봉 감독은 미키를 마냥 ‘피해자’로 그리진 않는다. 그가 스스로 복제 인간이 돼 끊임없는 죽음을 반복하는 ‘익스펜더블’(소모품)이 되는 서류에 직접 서명했기 때문이다. 극 중 이 사업을 추진하는 이들이 수차례 “설명서 제대로 읽어보신 것 맞죠?”라고 물었지만, 미키는 익스펜더블이 된다는 의미도 모른 채 “네”라고 답한다. 그리고 뒤늦게 미키는 “설명서 제대로 읽어볼걸…”이라고 후회한다. 함부로 사채에 손대고, 눈앞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더 큰 위험을 내재한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지 않은 미키의 모습 역시 신문과 TV 뉴스 사회면 어딘가에서 본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든다.봉 감독은 이 같은 자본의 칼날, 노동 착취의 영역을 넘어 생명과 생존에 대한 근원적 질문도 던진다. 어느 순간, 미키의 거듭된 죽음은 당연시된다. “죽는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이 영화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대사다. 모두가 갖는 궁금증이다. 정작 “미키가 왜 죽어야만 하지?”에 대한 질문은 없다. 미키의 죽음은 이미 기본값이 된 셈이다. 이는 미키 역시 매한가지다. 그를 죽어도 되는 존재로 여기는 주변의 시선과 선입견은 미키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미키17’은 지극히 봉 감독다운 영화다. ‘기생충’ ‘설국열차’의 계급 갈등과 자본의 민낯, ‘옥자’로 제시한 생명 윤리 메시지를 적절히 섞으며 봉준호표 리얼리즘의 연장선을 늘였다. 그의 첫 장편 상업 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봉준호1’이라고 한다면 ‘미키17’은 ‘봉준호8’쯤 된다. 하지만 ‘봉준호8’이 ‘미키17’이라 불려선 안 된다. 봉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추구하는 궁극적 메시지 중 하나가 ‘이름 찾기’이기 때문이다.“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은 무엇일까?” 이 영화를 제대로 봤다면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미키17’은 그의 이름이 아니다. 기계의 부품처럼 언제든 치환되는 17번째 소모품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종국에 드러나는 그의 진짜 이름은 ‘미키 반즈’다. 현대는 익명의 시대다. 온라인 상에서 다양한 ID로 존재하고, ‘부캐’가 각광받는다. 하지만 봉 감독은 진짜 이름을 잃으면서 정체성까지 흐려지는 것을 경계한다. 앞서 영국의 유명 심리치료사 마리사 피어는 “나는 나로서 충분히 가치 있다”(I am enough)고 강조했다. 봉 감독이 ‘미키17’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다.
- 안진용 기자
- 2025-03-04 11:44
스포츠 노장 투혼의 그림자[뉴스와 시각] 올겨울 실내스포츠와 동계종목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을 꼽자면 배구의 김연경, 농구의 김단비,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승훈이다. 이들은 모두 30대 중·후반의 노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37세 ‘배구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은 현재 V리그 최초로 ‘은퇴 투어’를 하고 있는데, 매번 관중석이 꽉 찬다. 김연경은 공격 주요 지표에서 국내 선수 중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티켓파워, 시청률 등 모든 면에서 김연경 없는 한국 배구는 ‘앙꼬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배구계는 벌써부터 내년 시즌을 걱정하고 있다. 김연경이 V리그에서 뛴 건 여덟 시즌이지만, 한 경기 44득점 기록은 20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대표팀을 준결승에 올려놨고, 4위 팀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올림픽 MVP에 뽑히기도 했다. 현재 한국 여자농구는 35세 김단비(아산 우리은행)천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단비는 지난 24일 서울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2024∼2025 여자 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만장일치 MVP를 수상했다. 베스트5, 득점상, 리바운드상, 블록상, 스틸상, 최고 공헌도상, 우수수비선수상 등 8관왕. 수비상까지 수상했다는 건 적지 않은 나이에도 넓은 코트를 종횡무진 뛰며 팀을 위해 헌신했다는 얘기다. 통산 16번째 라운드 MVP로 선정된 김단비는 아산 우리은행의 15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37세 빙속철인 이승훈(알펜시아)은 7년 만에 월드컵 금메달을 따냈다. 이승훈은 24일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5차 대회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우승했다. 그는 지난 11일 하얼빈동계아시안게임에선 정재원·박상언과 팀 추월 은메달을 합작하며 아시안게임 한국 역대 최다 메달 기록(9개, 금 7·은 2)도 세웠다. 그는 한국 올림픽 최다 메달 기록(6개)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이번 월드컵 금메달로 내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동계올림픽 매스스타트 메달 전망도 밝혔다. ‘에이징 커브’(나이에 따른 운동능력 저하)를 잊은 듯한 선수들의 투혼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이들의 활약 이면에 선수 수급이 안 돼 뒤처진 국제경쟁력이 있다. 한국 여자배구는 몬트리올올림픽(1976년)에서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 아시안게임에서 2차례(1994·2014년) 금메달을 땄었다. 여자농구도 두 번의 세계선수권 준우승(1967·1979년)에 이어 올림픽 은메달(1984년)을 땄다. 지난 파리올림픽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제 이들 종목의 올림픽 출전은 남의 나라 얘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평균 1명도 채 안 되는 지금은 자녀를 뛰어난 운동선수로 키우기 참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 외에도 선수들의 근성 부족도 한몫한다. 김단비는 “옛날 선배들은 ‘헝그리 정신’으로 열심히 했는데 요즘은 솔직히 그런 게 없어졌다”고 했다. 이승훈도 “많은 유망주가 훈련량이 많고 힘든 중장거리를 꺼린다. 나를 넘어설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참 아쉽다”고 했다. “김연경 같은 선수의 탄생은 하늘이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말이 달리 들리지 않는다.
- 방승배 기자
- 2025-02-2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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