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評>경제정책 本末 뒤바뀌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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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규 산업연구원 원장

한국은 대규모 완전 개방국가
구조개혁으로 경쟁력 키우고
형평성 이룰 고난도 처방 절실

소득주도 정책 목적지는 성장
분배 자체에만 집중하면 실패
경제적 약자 지원도 마찬가지

한국 경제의 지속 발전 방향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성장세가 약화하고 분배 구조가 악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해법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문제 해결책이 제각각인 것은 한국 경제의 정체성과 처한 여건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른 데 근본 원인이 있다. 제대로 된 처방전을 위해서는 세계 속 한국 경제 위상과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내수 규모가 작고 부존자원이 전무한 한국 경제는 세계 수요를 바탕으로 성장했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는 지금 대규모 완전 개방경제 국가로서 승자독식의 세계 시장에서 생사를 놓고 다투는 절박한 생존 경쟁에 직면해 있다. 한국은 올해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30∼50그룹에 7번째로 진입하게 된다. 양적 규모가 커지는 만큼 지속 성장을 위한 고민과 해결책은 더 어렵고 복잡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치열한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버틸 수 있는 산업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국내 산업은 인구와 자원 측면에서 우리나라를 압도하는 중국을 따돌리면서 최고의 생산성과 고부가가치를 자랑하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을 넘어서야 비로소 세계시장에서 존재 의미를 지킬 수 있다.

경제 내부 효율성과 형평성의 조화도 이뤄야 한다. 형평성의 신장 없이 성장을 지속할 수 없고, 형평성만 강조해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세계 경제 발전의 패러다임 변화에도 대응해야 한다. 모든 사물을 연계하는 초연결화와 인간 지능에 근접하는 초지능화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전기자동차, 암호 화폐와 같은 새로운 산업과 사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산업화시대 의식과 제도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지금까지 확보한 경쟁 우위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성장 둔화 속에서 분배 구조는 갈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대국으로서 선진국 경제로 발돋움하려면 구조 개혁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으로 소득 격차도 해소해 나가야 하는 고난도 복합 처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개혁과 혁신의 구호는 언제나 거창하나 성과는 좀처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충실하게 이룬 산업화 ‘성공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산업의 후광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경제·사회적 관성 때문에 한 발짝도 실질적 변화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계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고 신산업을 위한 규제 철폐도 주장만 무성할 뿐이다.

정체 상태인 한국 경제 상황에서 정부의 새로운 경제정책 시도는 일단 기대할 만하다. 이전과 다른 관점과 우선순위를 강조하는 신성장 전략으로 침체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의지가 굳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역시 제대로 실현하느냐 하는 점이다.

먼저, 소득 주도 성장정책의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 정책은 분배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분배를 통한 성장을 이루려는 발상의 전환을 담고 있다. 성장을 통해 소득을 올리는 게 아니라, 소득을 늘려 성장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임금상승→기업과 산업 구조조정→제품 질과 서비스 향상→생산성 향상→수익 증대→투자 확대→고용 상승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소득 주도 성장과 규제 개혁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신사업을 일으키려는 혁신성장이 연계돼 상승효과가 커진다.

대기업 한계를 극복하려는 중소벤처기업 중심 정책도 신성장 전략이다. 다만, 경제적 약자로서 보호 지원 차원에 머물게 되면 이 역시 그 전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경쟁과 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강한 벤처중소기업을 육성해야 이들 중심의 새로운 경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기업 간 대등한 협력을 유도하는 공정 경제 역시 대·중소기업의 상생 발전을 이루려는 또 다른 성장 전략이다. 이 역시 대립적 관점에서 억울함을 해소하는 측면에만 역점을 두면 두 부문의 장점을 서로 살려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기업 간 동반 성장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없다.

정부의 성장정책을 본래 의미대로 단기적 고통을 감내하며 꾸준히 추진하면 얼마 후 중소기업 경쟁력이 살아나고 고임금하 생산성 향상을 이루는 노동시장 선진화가 실현돼 각 경제 부문이 조화롭게 발전하는 선진국 경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