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방송평>가을 프로개편

MBC를 마지막으로 TV방송 3사의 올 가을 프로그램 개편이 끝났다. KBS는 시사·토론·문화·다큐멘터리를 확대하여 공영성을 더욱 살리겠다고 했고, SBS는 가족오락 프로그램 강화와 공적 책임 제고를 표방했으며, MBC는(최고의 시청률을 즐기는 중이라 개편할 필요도 없겠지만) 경제난국 타개를 위한 지혜와 위안을 제공하기 위해 정보·공익·교양물과 청소년 대상물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KBS 1TV가 연속극과 ‘가요무대’외에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저녁시간에서 배제했고, 2TV가 오후8시대에 뉴스와 문화프로그램을 배치한 것처럼, 각 방송사가 캐치프레이즈대로 방송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으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금년 2월의 봄 개편 때에도 각 방송사의 포부는 대단했었다. 10대 취향의 오락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주시청대상을 중·장년층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가족채널의 기능을 강화하고 국가적인 경제난국을 TV가 풀겠다고 다짐했었다.

KBS는 2TV의 수목드라마 ‘그대 나를 부를 때’를 비롯하여 주말극과 일요 아침드라마, 시트콤 ‘아무도 못 말려’를 과감히 폐지했다. SBS도 2월부터 드라마 2편과 월요시네마극장 등을 없앴다. 심야 프로그램도 사라졌다.

그러나 어느 틈에 이런‘공약’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고 온 시청자가 경험한 것처럼 금년의 TV는 어느해보다도 더 치열한 시청률전쟁을 벌였다. 이제 내년 봄 개편 때도 올해와 똑같은 감회에 젖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 개편의 특징은 체면 없이 다른 채널의 프로그램을 엇비슷하게 복사한 것. 비근한 예로 KBS의 ‘비디오 추적 놀라운 TV’라든지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 등에서는 쉽게 SBS의 프로그램이 연상되고, SBS의 시트콤 ‘나 어때’는 대학생을 고교생으로만 바꿔놓았지, 무대도 MBC의 ‘남자 셋 여자 셋’과 닮은 꼴. 이렇게 프로그램이 서로 닮아가고 드라마도 서로 비슷해지다가는 서로 자멸하는 길을 갈 것이 뻔하다.

이제 토·일, 월·화, 수·목의 세 편의 미니시리즈를 주축으로 한 기본편성의 골격을 어느 방송사가 과감하게 탈피해 나가느냐에 따라 시청률전쟁의 판도가 달라지리라 본다. 남의 편성표나 엿보고 같은 편성 패턴에서 흙탕물을 튀기는 싸움을 하느니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편성표를 그려보는 슬기롭고 용기있는 방송사는 없을까. <방송평론가 정순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