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구이 40년에 남은건 단골들”

서울 서대문경찰서를 지나 서울역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서대문 원조 숯블 돼지갈비 통술집’이 있다. 요즘은 너도나도 원조이고 더 나아가 비조(鼻祖)까지 등장했지만 이 돼지갈비집이 이 곳에 처음 문을 연 때가 1963년이었고 주변에 숯불돼지갈비집이 없는 걸로 봐서는 원조는 원조인 것 같다. 오래된 대로 외관이 허술한데 안으로 들어가도 허술한 건 마찬가지다. 외양·내부 장식 모두 신경쓰지 않는 곳이라 앞으로도 나아질 전망은 별로 없어 보인다. 주인 포함해 일하는 사람도 세 명 모두 할머니다.

주인 할머니 고수덕씨가 67세, 동서 김귀엽 할머니가 70세, 고씨의 조카 정영자씨는 55세이므로 굳이 할머니라고 부르기엔 아직 이르다. 동서는 창업 무렵부터 같이 일했고 정씨는 몇년 뒤 가세했다.

페인트칠한 시멘트벽에는 전선줄이 핏대처럼 얼기설기 뻗쳐있고 술광고지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는 가운데 뭔가 작전지시를 하는 히딩크도 끼여있다.

“멋보다는 맛이니까.”

젊은 손님들을 많이 끌려면 내부장식을 좀 세련되게 바꿀 필요가 있지 않냐고 하자 고씨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와잉 뭐라고?”

요즘 많이 유행하는 와인삼겹살, 대나무통삼겹살처럼 메뉴라도 다양하게 해 볼 생각이 없냐는 물음도 전혀 불필요했다.

고씨는 20대때인 50년대말 대처에서 한 번 본때나게 살아보겠다고 고향 전남 광양에서 언니따라 서울에 올라왔다. 언니 소개로 여수 출신인 남편(몇년전까지만 해도 통술집에서 숯불 날라주던 할아버지·지난 해 작고)을 만나 결혼했고 남편이 공장일하는 동안 고씨는 서울역 앞에서 좌판을 놓고 과자를 팔았다. 지금은 웃고 살지만 되돌아보면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대개의 사람들이 다 그랬듯이.

인생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몰라 살만한 것이고 가난한 집안 그나마 거덜낼 것만 같던 세상이 뜻밖에 보태줄 때도 있는 것이다. 서울 온 친정아버지 모시고 창경원 나들이 갔다가 복권을 샀는데 덜커덕 당첨된 것이다. 꿈이냐? 생시로다라는 말은 이때 쓰는 말일 것이다. 60만환. 지금 시세로는 6000만원쯤 되는 것 같다고 고씨는 말했다.

친구, 친지 불러 몇날 며칠 잔치 벌인뒤 남편이 물었다. 이 돈으로 뭘할까.

“밥집하자고 했지. 밥집하면 최소한 밥은 굶지 않을 것 아니냐…. 그래서 남대문 시장 근처에 백반집을 차린거야.”

그 때가 61년. 다시 남대문에서 마포로 옮겨 돼지갈비집을 열었다가 시장이 철거되는 바람에 63년에 이곳 서대문에 자리를 잡은 게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쇠고기불고기가 최고의 외식이던 때라 양념에 잰 돼지갈비를 연탄불에 구워먹는 맛은 입안에서 녹고도 남았다. 독립문과 서울역 중간의 전차 정거장이 바로 앞에 있어서 오가는 손님 뿐만 아니라 단골들도 많았다.

돼지갈비 한 대에 100원, 맥주컵보다 조금 작은 컵으로 소주 1잔 50원. 돼지갈비만 따로 팔지 않았으므로 손님들은 술값에 갈비를 덤으로 먹는다는 기분이었다. 그때 잠을 자던 방에 지금은 손님들을 받지만 당시 홀에 있던 식탁용 드럼통은 4개 뿐이었고 손님들은 서로 합석하거나 서서 먹었다. 아직도 마포나 신촌 일부에 있는 향수의 ‘서서갈비’였던 셈이다.

“버는 것보다 떼인 게 더 많았는데…. 외상지고 갚는 것은 고사하고 먹고 난 자리에서 눈 깜짝할 새 도망가기도 잘하고, 한번은 서대문 로터리 우체국 골목까지 쫓아간 적도 있다니까.”

아무리 외상지고 떼먹었을 망정 그래도 배고프던 때 만난 사람들이 더 정이 많았고 그래서 그 때가 더 좋았다고 고씨는 말했다. 외상에 떼이건, 싼 값에 팔건, 바가지를 씌우건 장사하는 사람들이 열이면 열 하는 말이 ‘남는 거 없다’이다.

“장사란게 실은 다 사람장사야. 단골들이 생기고, 잊어버릴만 하면 찾아오고, 얼굴보면 반갑고.”

옛날에 술값 떼먹고 달아났었다며 기억도 나지 않는데 찾아와서 2만원을 쥐어주는 사람, 애인하고 와서 돼지갈비 먹었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컸다며 가족 데리고 온 사람, 총각 때 와서 먹었는데 지금은 며느리가 있다는 사람, 아들과 손자까지 3대가 함께 다시 찾아오는 사람, 20년만에 왔다는 사람. 고씨는 장사해서 남는 것은 바로 이런 손님들이라고 했다.

“옛 손님만 좋다는 건 아니고 지금 오는 손님들도 참 ‘수준’ 높아. 우리 같이 서비스가 시원찮은 데 와서 바쁠 때는 직접 술도 꺼내 먹고, 물수건도 갖다 쓰고.”

추석, 설명절만 쉬고 일요일에도 돼지고기를 파는 두 할머니와 중(中)할머니 세 분은 열심히 일하는게 건강비결이라고 했다.

“그런데 옆집 고기맛이 어떤지 한 번 사먹어봐야 할까….”

할머니들은 조금 떨어진 것도 아니고 바로 옆에 찰싹 붙어 번쩍이는 통유리문에 현대식 인테리어를 갖추고 최근 문을 연 제주 흑돼지고기 전문점이 자꾸 걸리는 것 같다.

마태운기자 matw@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