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아내 잃은 선비들의 ‘사모곡’

‘조선 선비, 아내 잃고 애통한 심사를 적다’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제목 그대로 선비들이 아내를 저승으로 떠나보내며 지은 제문(祭文) 49편을 한글로 옮겨 묶은 것이다. 제문을 옮겨놓았다고 하면, 틀에 박힌 글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물론 글의 성격상 일정한 형식에서 크게 자유롭지는 못하다. 내용에서도 절절한 심정을 털어놓다보니, 앞서간 아내에 대한 애도에 치우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같은 제문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된다. 형식상 극히 한정된 글임에도 불구하고, 행간에 흐르는 아내에 대한 사랑은 요즘 세태의 얄팍한 사랑 고백과는 차원이 다른 격조와 진심을 보여준다.

또한 부부가 살아온 한평생을 반추하는 대목에선 당대의 생활상을 여실히 엿볼 수 있으며, 나아가 조선시대 선비들의 무능과 가정경제에 대한 무심함을 뚜렷이 들여다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아내들은 애처로우면서도 강인한 부덕(婦德)의 전형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17세기 한성부 서윤(庶尹) 등을 지낸 정양은 제문 처음부터 “아 당신이 죽었으니 우리 집안은 망하고 나는 곧 죽겠구려”라며 호들갑을 떤다.

게다가 “나는 병을 앓아 30년 동안 하루도 제대로 버틸 기력이 없었는데, 당신이 어린애를 대하듯 나를 잘 돌봐주며 때맞춰 먹여주고 철따라 입혀주었소”라는 대목에선 아내가 오히려 어머니에 가깝지 않았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이어 “집에는 쌀 한 톨 없었지만, 내가 술을 좋아하는 걸 알고 난리통에 도망가는 와중에도 술은 떨어지지 않게 해주었소. 심지어 삼척의 산중에서 식량이 떨어졌을 때, 당신은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어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만은 평소와 다름없이 술 마시고 배불리 먹게 해주었소”라는 구절에 이르면, 아무리 과장됐다고 하더라도 어이가 없을 정도.

정양의 제문뿐만 아니라, 이처럼 집안일에는 무심한 채 음풍농월하는 남편과 생활고를 헤쳐나가는 아내의 모습이 대비되는 제문들을 여럿 볼 수 있다.

또 하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에 이르는 전쟁의 참화가 얼마나 심각했던가 하는 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한 가정의 피란 과정을 통해 전란의 와중에서 겪는 고초와 비참함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아울러 책 곳곳에 조선시대 생활사를 그린 풍속화를 곁들여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유미림·강여진·하승현 옮김.

김영번기자 zero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