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무엇이 농민을 고통스럽게 하는가

지금 우리나라 농촌에는 세 가지 큰 고통이 있다. 농산물 수입 개방으로 무엇을 심어야 할지 몰라 겪는 고통과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연재해로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고통, 그리고 고령화와 소득 격차로 부채가 늘어 영농 의욕 자체를 잃은 고통이 그것이다.

정부의 말대로 수입 개방은 수출이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인지 모른다. 그러나 1인당 소득이 1000달러도 못되던 60~70년대 수출 제일주의 저곡가 정책 아래에서도 빚은 늘어갔지만 그것을 갚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국내총생산(GDP) 11위 경제대국, 5000억달러의 무역 규모, 첨단 반도체·자동차·선박 수출 강국이라는 화려한 수사가 남의 말로만 들릴 뿐이다.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 경기도와 강원도, 경상남도의 풍수해에 이어 올해는 호남지방이 폭설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연재해는 농업을 현대화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의 생존권을 지키고 수입 농산물에 적극 대항하기 위해서 농업 생산과 유통시설을 현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농업시설 재해보험과 농작물 보험을 적극 확대하고, 낡은 시설들은 첨단화해야 한다.

과거 정부가 추진한 유리온실 사업을 완전히 실패한 사업으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리온실 투자는 30%나 성공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성공률은 1~2%, 자영업자 성공률은 10% 안팎이며, 더욱이 바이오산업 성공률은 기껏 0.01%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은 실패한 경험이 교훈이 되어 농업 투자 성공률이 크게 높아졌다. 이제 과거와 달라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다.

사실 우리 농업은 본질적으로 불리한 점이 많지만 우리 농민들의 타고난 근면성과 기술력, 다양한 기후조건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고품질 시장은 유리할 수도 있다. 현재 우리 농민들은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로 네덜란드가 지배했던 일본의 파프리카 수입시장을 10년 만에 70%나 장악했다. 한국 농민들의 기술 수준은 네덜란드와 일본 사람들이 더 위협적으로 생각할 정도이다. 우리는 중국을 위협만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세계적인 연구기관인 월드워치는 앞으로 중국을 누가 먹여 살릴 것인지가 문제라고 말한다. 중국은 우리의 거대한 잠재 시장이다.

육지보다 낮은 바다를 막아 농사를 짓는 네덜란드는 농지 값이 우리의 4배나 된다. 그러나 거기에 첨단 유리온실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우리나라 농지 평당 생산성의 2배나 되는 방울토마토와 파프리카 및 꽃을 생산하여 전 세계로 수출한다.

우리나라 농가당 적정 규모라 할 수 있는 1000평의 유리온실 건설비는 5억~7억원이나 되어 우리 농민들이 감당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정부는 20~30년 이상 장기 저리로 융자를 해주거나 시설을 지어 빌려주어야 한다. 공업 분야나 건설 및 학교 시설까지도 일반화된 이른바 리스 사업을 BLT(건설-이전-임대·built-lease-transfer) 형태로 농업분야에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국내에서 개발된 고품질 쌀의 성분과 맛은 일본의 고시히카리나 미국의 칼로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지만 재배·건조·가공·저장·유통·브랜드 가치 등 가공과 유통과정에서 차이가 벌어진다. 일본이나 미국의 브랜드 쌀은 낟알에 흠이 없는 완전미가 90% 정도이고 현미로 저온 저장돼 도정 후에는 즉시 소비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우리 쌀도 가공·저장·유통 과정에서 품질을 높여 대표 브랜드를 육성해야 한다.

우리 농촌의 문제는 농민들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는 물론, 농협과 문화일보가 앞장서 벌이고 있는 1사1촌과 같은 결연을 통한 실질적 협력이 절실한 때이다.

[[김병무 / 순천대 교수·농업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