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권 어찌되나…” 침통

허준영 경찰청장이 시위 농민 사망의 책임을 지고 퇴임하자 일선 경찰들은 아쉬움을 토로하며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허 청장이 경찰의 수사권 확보에 전력을 다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퇴진이 수사권조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경찰내에 퍼지고 있다. 또 경찰 일각에선 이번 시위 농민 사망사건의 책임을 경찰이 뒤집어써야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에따라 경찰의 조직안정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허 청장 마지막 모습=허 청장은 30일 오전 10시 경찰청 지하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이번 농민시위로 인해 돌아가신 두분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허 청장은 이어 “시위대가 막무가내식 폭력을 일삼고 큰 소리칠 만큼 잘못된 시민의식이 팽배해 있다”며 폭력시위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뒤 “특히 국가정책추진으로 인해 표출된 사회적 갈등을 경찰만이 길거리에서 온몸으로 막아내고 그 책임을 끝까지 짊어져야 하는 안타까운 관행이 이 시점에서 끝나길 소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사구조개혁은 국가 경영시스템상 견제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성역을 없애자는 것”이라며 “검찰도 기득권 고수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수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협력해야 할 것”이라며 임기중 못이룬 수사권 조정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앞서 평소 출근시간인 7시20분쯤 운동복 차림으로 서울 신문로 관사를 나서던 허 청장은 “평소 5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다보면 5시40분쯤 상황실에서 보고가 왔는데 오늘은 보고가 안 왔다”며 “혼을 내려고 보니 내가 사표를 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소회를 묻는 질문에 직답을 피한 허 청장은 향후 계획을 묻자 “아무런 계획이 없다”며 “외교관 5년, 경찰 22년 근무하는 동안 일요일도 못 쉬었다. 이제는 좀 쉬어야지”라고만 답했다.

◈어수선한 경찰=경찰의 수사권 확보를 위해서라면 검찰과의 일전도 불사했던 허 청장이었기에 경찰내 확산되는 불안감은 더 크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수사권 확보를 위한 경찰의 대응이 허 청장 개인이 아니라 경찰 내부 시스템에 따라 이뤄지고 있어서 큰 지장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검찰의 반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후임이 얼마나 허 청장만한 추진력을 보일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농민들의 과격시위는 문제삼지 않고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 한 경찰 간부는 “당시 농민들의 과격시위로 인해 경찰도 218명이나 부상을 입었다”며 “농민이 사망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서 툭 하면 죽봉을 들고 나서 폭력시위를 벌이는 농민들에게는 왜 이렇게 관대한지 모르겠다”라고 비난했다. 또다른 경찰관도 “폭력시위를 제대로 안 막으면 안 막았다고 징계하고 힘들여 막으면 과격하게 막았다고 옷 벗으라고 하면 어쩌라는 것이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후임은 누구=허 청장의 후임으로는 최광식(56) 경찰청 차장, 이택순(53) 경기청장, 강영규(57) 경찰대학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최 차장은 업무공백 없이 수사권 조정 등 현안을 이끌고 조직을 조기에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 최기문, 허준영 등 전직 청장이 대구경북(TK)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전남 고흥출신인 최 차장이 지역안배 차원에서도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행정고시(18회) 출신인 이 경기청장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고 서울 출신으로 지역색이 옅은 점이 경쟁력을 높인다. 다만 이 청장이 현 정부에서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지낸데다 이해찬 총리의 용산고, 서울대 1년 후배라는 사실은 이번 인사에서 유리하게 작용할지, 불리하게 작용할 지 관심거리다. 경남 합천 출신인 강 학장은 경찰내 대표적인 경비통으로 꼽힌다.

김석기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