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오동진의 동시 상영관>파편화되고 고립된 삶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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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은 무성하지만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영화가 점점 더 많아지는 한 한국영화의 미래는 없다. 이성강 감독의 장편 실사영화 ‘살결’이 그런 경우다. ‘마리이야기’와 ‘천년여우 여우비’같은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의 미야자키 하야오 소리를 듣는 이 감독이 실사영화, 그것도 19세관람가 등급조차도 약간 오버하는 느낌의 ‘센’ 영화를 만들었고 그래서 여기저기서 화제를 모았지만 정작 극장에선 찾아볼 수가 없는 현실이다. 전국 3개 스크린에서만 개봉했기 때문이다. 서울 중앙극장과 미로스페이스, 그리고 부산 서면CGV 등이다. 아마 지난주 박스오피스에서는 비교적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살결’은 ‘올해의 발견’ 격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내용과 줄거리는 꽤나 부조리하다. 처음과 끝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엉켜 연결돼 있으며 따라서 줄거리를 시간 순으로, 정상적으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한마디로 단박에 독해가 되지 않는 영화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죽은 여자와 소통하게 되는 설정은 초자연적이기도 하고, 초현실주의적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래서 언뜻, 이런 유의 영화에서 한 이름값 하는 걸로 유명한 미국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예컨대 ‘로스트 하이웨이’나 ‘멀홀랜드 드라이브’같은 것)을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야하고 섹스신이 많고, 또 두 남녀의 허덕이는 음향효과가 적나라하기로는 프랑스 파트리스 셰로의 ‘인티머시(우리말 제목 ‘정사’)’를 닮아 있다. 오히려 ‘인티머시’보다 한발짝 더 나아간 듯한 모습인데 이 영화의 첫번째 베드신은 무려 7분간이나 계속된다. 게다가 영화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농염한 신이 계속될 것이라는 암시를 슬쩍 흘린다. 남자 주인공은 여자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왜 꼭 아홉번이어야 해?” 주인공 민우(김윤태)는 다시 만난 옛애인이자 유부녀인 재희(김주령)로부터 아홉번의 섹스를 약속받는다. 헤어짐이 예정된 만남을 통해 민우는 또 한번 크게 상처받는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남자와 여자의, 그렇고 그런 불륜담만을 담은 것은 결코 아니다. 전문 사진작가이자 기자인 민우는 그러나 생활의 방편을 위해 3류 시사지에서 ‘몰카’를 찍으며 살아간다. 어느 날 우연히 공원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로 죽은 여자(최보영)의 살결을 만진 후 그는 여자의 영혼과 소통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 일이 있은 후 민우는 십수년 만에 과거의 연인이었던 재희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곧 격정적인 관계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민우가 재희와의 밀회를 위해 새로 얻은 월셋집은 공교롭게도 공원에서 죽은 여자가 살던 집이다. 민우는 현실의 여자와 환상의 여자를 동시에 느끼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성강 감독은 이번 실사영화를 통해 ‘마리이야기’같은 애니메이션에서는 미처 하지 못했던 얘기를 한꺼번에 풀어 놓고 싶어한다. 사람들의 해체된 관계, 단절된 소통, 강박과 집착, 파편화되고 고립된 삶의 모습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음 속에서 마치 뭉크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아 심란해진다. 차라리 절규하고 싶어진다.

남자의 둔부를 아무리 크게 잡고 여성의 육체곡선을 아무리 과감하게 잡았다 한들 이 영화의 계속되는 섹스신이 사람들을 결코 성적으로 흥분시키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벌건 대낮에 벌어지는 두 남녀의 정사는 (실제로 정사가 벌어지는 공간은 얇은 커튼이 쳐진 상태의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곳이다) 건조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다. 감정은 폭발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억압된다.

이성강 감독은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 마치 원자탄처럼 농축돼있는 정서적 억압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주인공 민우가 두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듯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분열증을 앓게 하고 있는가를 알아내려 한다. 하지만 그 해답은 쉽게 찾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민우는 극후반에 환상속의 여자에게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모든 건 욕망이 빚어낸 환상일 뿐이야. 너도, 나도, 그녀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집착을 하는 걸까.” 민우가 던진 질문의 답을 각자 찾아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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