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 서사·현실 등지고 ‘겉멋’만”

근래 집약적으로 거론되는 문학의 위기는 일본 소설에 자리를 내준 ‘장편소설의 위기’가 그 요체다.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는 ‘한국 장편소설의 미래를 열자’라는 주제 아래 최원식과 서영채의 평론가 대담과 황석영 공지영 배수아 김연수 강영숙 등 근래 장편위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입을 빌려 대책을 모색했다.

장편소설은 “근대문학의 챔피언”(최원식)이면서 “한 작가의 역량이 제대로 드러나는 분야이며 문학의 본령”(황석영)이다. 철학 역사 사회 인류학 등 인문학적인 총체성, 그 두꺼움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장편의 시대’가 도래하기 어렵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동안 ‘87년 이후 정치적 자유가 문학에는 오히려 질곡’이었다든지, ‘교양의 쇠퇴와 신자유주의로 포괄되는 실용주의의 대두’등 주로 사회과학적 요인이 장편소설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작가들의 생각은 어떨까.

황석영은 소비자(독자)보다 생산자(작가)에 책임의 비중을 두고 있다.

그는 “장편소설이 나오는 토양은 글쓰며 견디는 ‘전업작가’가 많아야 하는 건데, 요즘은 좀 알려졌다 하면 대학 문예창작학과에 교수자리가 나서 들어가 주저앉아 버리고 만다”며 “요즈음 우리 문학은 서사와 현실을 등한시하면서도 대중에 대하여는 고답적인 ‘겉멋’으로 버티고 있다”고 비판한다.

황씨는 출판과 독자들의 문제도 지적한다. 그는 아직도 해외문학에 대한 턱없는 ‘상찬과 오해’가 그치지 않고 있다면서, “예컨대 베르베르인가 하는 프랑스 작가는 프랑스 문단에도 알려지지 않은 SF대중작가”이고, “코엘류는 통속작가로 기자들도 점잖게 언급을 피할 정도”며, “‘다빈치 코드’도 아무리 대중적으로 많이 팔려도 교양인은 외면하는” 작품이라 꼬집는다.

소설가 김연수의 접근은 좀더 현실적이다.

그는 한국소설에서 단편이 비중이 높은 이유에 대해 “문예지들이 단편소설을 청탁하니까 소설가들은 단편소설만 쓰는 것”이며 또 “신인을 대상으로 장편소설을 모집하면 신인들이 장편을 쓰게돼 있다”고 말한다.

그는 문학상과 문예지 수록 등 단편 위주로 형성된 한국문학의 제도는 “문학시장과 문학작품을 유리”시키며, “일본문학의 득세는 그것이 특별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기 보다 한국소설이 ‘단편위주의 문학제도’라는 진퇴양난의 수렁속에 고립돼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어 그는 장편소설을 한 편 쓰자면 2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지만, 이를 전작장편으로 출판할 경우 인세수입이란 건 많아봐야 100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경제적 이유도 덧붙였다.

올 2월부터 일본 호세이(法政)대학 객원연구원으로 도쿄에 체류중인 소설가 강영숙은 “극소수지만 한국소설을 읽어본 일본인들의 반응은, 분단이라는 특수상황 때문인지 작가의 자의식이 강하고, 작은 얘기부터 풀어나갈 줄 몰라 무겁고 감동이 없으며, 심지어 작가들이 내가 작가요, 하고 잘난척 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라며 “우리 독자들이 일상생활의 잔잔한 사건들로부터 은은하게 전개되는 일본소설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일본 소설이어서가 아니라 소설의 포지션이 달라졌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