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 뒷면에 감춰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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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지금보다 150년쯤 젊었을 때 의학계가 깊은 잠속에 빠져 있었다. 콜레라, 페스트, 티푸스, 천연두가 인류 역사를 쥐고 뒤흔들었다. 기원전 5세기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18세기 중반까지 2300년 동안이나 서양의사들이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위는 피를 뽑는 것(사혈)이었다. 의학의 암흑기에 채혈침은 ‘마법사의 지팡이’같은 존재였다. 사혈이 치료가 아닌 예방에까지 효과가 있다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한 사람들은 고대인이 아니라 19세기 의사들이었다.

이들은 과도한 체액을 자연적으로 방출하지 못할 경우 질병의 원인이 되므로 정기적으로 피를 뽑아야 한다고 강권했다. 여성의 생리는 피를 자연스레 방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간주됐다. 치질로 인해 항문에서 나는 피나 심지어 코피도 건강의 징표로 환영받았다. 19세기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균이 묻은 손으로 이 산모 저 산모를 치료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균을 전파시켜 산모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저자는 ‘의학사의 거짓 진보’에 날을 들이댄다. 저자는 “18세기 중반 이전의 의사들은 환자를 치료했다기보다 불안을 억누르는 데 도움을 줬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히포크라테스의 숭고한 선서에서 시작한 의술이 질병정복과 인간 생명의 연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쉼없이 걸어온 눈부신 진보의 역사라는 신화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의학의 시조’였던 히포크라테스는 오랜 기간 피를 뽑고, 토하거나 설사하게 하는 방법을 거의 모든 질병의 치료법으로 자리잡게 했다. 예컨대 그는 모든 감기를 반복적인 피뽑기와 설사유도 방법으로 치료했다. 외과수술은 대개 치명적이었고 피뽑기, 설사나 구토를 통한 치료법은 한결같이 환자들을 허약하게 만들 뿐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 자체가 과학이 아니라 ‘거대한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현대 역사가들이 이제서야 찾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되풀이 얘기하고 있는 논점은 수없이 많은 의학적인 진보가 햇볕을 보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17세기에 발견된 이론과 관찰만으로도 근대적인 질병의 세균설을 확립할 수 있었다.”(찰스-에드워드 에이모리 윈슬로, 1943년) 페니실린으로 환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한 최초의 시기는 1880년대이다. 하지만 두번째 치료는 1940년대까지 기다려야 했다.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발견들은 매번 놀랍게도 의사들의 저항에 직면했다. 언젠가 전염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편도선을 도려내는 편도적출 수술이 20세기 중반까지 성행했다.

이 대담하고 도발적인 책은 의학이 인류역사 내내 ‘신비의 기술’이었다는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놓는다. 엉터리 의학이 19세기까지 아무런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살아남은 이유는 “의사들이 스스로 작동된 자연치유 과정의 결과를 낚아채려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흥미를 끈다.

예진수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