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동서 잇고 싶어 모험”

꼭 20년전인 1987년 5월28일 19세의 서독 청년 마티아스 루스트는 구 소련의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단발 세스나기를 몰고 착륙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의 대담한 모험 직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방공망이 뚫린 허점을 물어 강경 군부를 축출할 수 있었고 이후 소련의 붕괴, 냉전 종막으로까지 이어졌다.

루스트는 현재 성공한 투자자이자 고액 포커선수로 독일 함부르크에 살면서 에스토니아를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다. 그는 27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당시 나는 86년 레이캬비크 미·소 정상회담에서 핵군축 회담이 실패하고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에 매우 실망하고 있었다”며 “나는 꿈으로 가득차 있었고 세스나 비행을 통해 (냉전중인) 동서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항공조종사였던 그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모험을 시작했다. 모스크바까지는 400마일. 소련 영공으로 들어서자 미그 23기가 바짝 다가왔다. 소련전투기가 83년 대한항공 여객기를 격추시켰던 일이 생각났지만 루스트는 오히려 그 사건으로 소련이 세계여론에 혼이 났기 때문에 자신을 유도착륙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생겼다. 미그기 조종사가 ‘스포츠 항공기’라고 보고하자 지상 지휘관들은 “소련에 어떻게 그런 비행기가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소련의 지상관제소에서 루스트의 세스나기를 둘러싸고 “진짜 비행기냐, 아니면 커다란 새냐” 로 헷갈리고 있는 사이 루스트는 구름속으로 사라진 뒤 모스크바까지 날아갔다.

루스트는 “내가 소련 군부를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어쨌든 고르바초프를 돕게 되었다”며 “ 이는 단지 평화에 대한 나의 바람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루스트는 이후 소련에서 불법입국죄로 14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그 비행 이후 나는 많은 문제에 부닥쳤지만 하지만 그것은 내 운명이었고 누구든 자신의 운명대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 최형두특파원 choih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