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세상 맑은 목소리로 보듬죠”

“무작정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 곤란할 때가 많아요.” “우리한테라도 하소연하는 것이니 친절하게 받아주렴.”

114 전화번호 상담원은 세상의 변화를 누구보다 빨리 읽는다. 114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이드(한국인포데이타) 대구지역본부에서 상담원으로 근무하는 현홍경(25)·현유나(23)·조영미(25)·임경수(23)씨. 현홍경씨와 현유나씨는 자매 사이며, 각각 조영미씨·임경수씨와 절친한 친구 사이다. 현홍경씨는 2005년 7월 임씨의 오빠와 결혼했고 조씨는 두달 먼저 현씨 자매의 셋째 오빠와 결혼해 시누·올케 사이가 됐다.

이들은 “상담 전화를 받다보면 사회의 변화를 알게 된다”며 “각박해진 세상에서 114상담원의 친절한 목소리에 힘을 얻는다는 고객이 많아져 기분좋기도 하지만 그만큼 씁쓸한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현홍경씨는 “최근 유난히 술 마시고 전화하는 고객이 많아졌다”며 “아무래도 삶이 힘들어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하루 평균 1000통의 전화를 받는다. 임씨는 “최근엔 114를 전화지식인으로 생각하는 고객이 많이 늘었다”며 “휴가철에는 환율을 묻거나 유명 관광지 근처 교통상황을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유나씨는 “최근 주식이 유행이라더니 실제로 주식 시세를 묻는 전화도 많이 걸려오는데 그럴 땐 정중히 관련 업종의 전화번호를 안내해 드린다”고 말했다.

조씨는 “가장 황당한 것은 ‘불이 났을 땐 어디로 전화해야 하나요’라거나 ‘경찰서에 신고하려면 몇번에 해야 하나요’라고 묻는 전화도 하루에 몇통씩 꼭 걸려온다는 사실”이라며 “그만큼 114번호를 많이 기억하시는 것 같아 기분좋다”고 덧붙였다. 현홍경씨는 “최근에는 포털사이트에서 전화번호를 제공하고 있어 젊은 층이 114에 전화하는 비율이 조금 낮아졌다”며 “그래도 최근 들어 많은 분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경우도 많아져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씨는 또 “처음에는 전화번호를 조금만 늦게 찾아도 고객들이 바로 욕을 해서 너무 힘들었다”며 “지금은 자주 찾으시는 전화번호는 외울 정도”라고 말했다. 조씨는 “114상담원이라면 목소리가 하이톤이고 예뻐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 감기가 걸리거나 목소리가 잘 안나올 때는 고객들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들은 2003년부터 임씨 이모의 소개로 5년째 함께 근무하며 남편보다 가까운 사이를 자랑하고 있다. 임씨는 “결혼한 언니들이 도시락도 넉넉히 싸와서 함께 먹으며 수다떠는 게 너무 좋다”고 말했다. 조씨도 “가끔은 남편이 자기보다 친구·동생과 더 친한 것 같다며 질투한다”고 덧붙였다.

대구 = 민병기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