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 19명 전원 석방 합의>“어쩔 수 없어 국제 원칙 못 지켰다”

아프간 한국인 피랍사태를 풀기 위해 정부당국은 ‘자국민 생명보호’와 ‘국제테러단체와의 협상 불가 원칙’이라는 두 가지 원칙 사이에서 고심하면서 테러단체와의 직접대면협상 및 국제 외교전을 통한 우회압박 전략을 활용했다. 테러단체와의 직접협상은 외교적 부담을 무릅쓴 것이었지만 국민생명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불가피하게 용인됐다.

◆ 외교적 부담 무릅쓴 국제테러단체와의 협상 = 정부는 피랍 사태 발생 3일 만에 조중표 외교부 1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대책반을 아프간 수도 카불로 급파했다. 문하영 외교부 본부대사(전 우즈베키스탄 대사)는 가즈니주 현지에 내려가 탈레반과의 협상을 시작했다.

가즈니 현지 협상팀 실무직원은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에 직접 참여했으며 강성주 주아프간 대사는 탈레반 측과 직접 전화통화도 했다.

정부의 본격적인 직접협상은 2명의 인질이 살해되고 협상이 교착에 빠진 지난 10일 적신월사를 통해 이뤄졌다. 탈레반이 정부에 직접협상을 줄기차게 요구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 정부도 국제테러단체와는 협상할 수 없다는 국제적 원칙을 깨야 할 만큼 상황이 급박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29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선택을 해야 했다”면서 “원칙을 지키려 했으면 19명 인질의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또 대면협상 결과로 2명의 인질이 석방됐기 때문에 정부는 현실적 해결책으로 직접협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우방국, 이슬람 국가 등 국제사회의 도움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당국은 지난 16일 3차 대면접촉 이후에도 탈레반 측과 전화통화 등 물밑접촉을 지속했고, 연내 한국군 철군과 선교활동 중지 등의 조건을 제시하며 마지막 대면 직접협상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 결과 29일 오후 19명 인질 석방 합의가 도출된 것이다.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아프간 정부, 우방국, 사우디·인도네시아 등 이슬람권 국가들과의 공동 대응과 협의를 통해 (직접협상으로) 우려되는 외교적 문제를 최소화하려 노력했다”며 “국제사회가 향후 (대면접촉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문제 삼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인질문제 국제이슈화에 성공, 해결발판 마련 = 탈레반은 반군단체인 만큼 국제사회의 여론에, 또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란 점에서 주요 이슬람 국가의 입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미국, 아프간 주둔 국제안보지원군(ISAF) 파병국과의 긴밀한 협조 체제를 총가동했다. 정부 당국자는 “우방국들은 협상 로지스틱스(논리)와 탈레반 활동 정보 제공 등 지속적인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백종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대통령특사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을 면담했고 탈레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파키스탄의 정부 고위 당국자들을 접촉하며 탈레반에 외교적 압력을 가했다. 특히 8월 초 아세안지역포럼(ARF)을 계기로 아프간피랍사태를 지역문제에서 국제이슈로 부각시킨 송민순 외교부 장관은 지난 24일 과거 탈레반 정권을 인정했던 이슬람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3개국 순방에 나서며 저변외교를 펼쳐 사태 해결의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수균기자 freewi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