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교과서에 日식민사관 버젓이”

“자국 중심주의와 대국주의가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뿌리다.” 동아시아 한·중·일 3국의 역사분쟁의 근저엔 이웃나라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윤덕홍)과 중국 런민(人民)교육출판사가 10일 베이징(北京)에서 개최한 ‘제4회 한·중 교과서 세미나’에서 유용태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한·중·일 역사교과서의 동아시아 인식’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3국이 모두 자국사를 동아시아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시각이 결여돼 있다는 것. 다음은 유 교수의 발표 요지다.

◆중화민족사관과 일제식민사관의 동거 = 중국은 고구려가 줄곧 중원왕조에 조공을 했다는 것을 근거로, 중앙에 예속된 지방정권으로 간주한다. 이는 중국과 주변국과의 조공·책봉 관계를 춘추시대 주나라 왕실과 제후국 간의 봉건관계와 동일하게 보는 견해다.

즉 중국과 비(非)중국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중화주의의 극한을 보여준다. 이 논리대로라면 일본·베트남 등 다른 모든 조공국들도 중국사에 포함되지 않느냐는 반론에 부닥친다.

한편, 중화민족사관 안에 일제식민사관이 오래 전부터 들어와 동거해 왔다. 런민출판사본 ‘세계사’(1983), ‘세계통사’(1997)에 일관되게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의 내용이 서술돼 있다. 이와 관련, 중국 역사교재는 일본 후소샤(扶桑社)판의 서술보다도 더욱 강렬한 일제식민사관을 견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 대학교재의 한국사 인식은 중국 소수민족 지방정권 고구려의 남하와 임나에 거점을 둔 일본세력의 북진이라는 ‘중·일 병진(竝進)’의 구도로 짜여져 있다.

◆동아시아인에 의한 동아시아 소외 = 한·중·일 3국 교과서에서 자국 이외의 동아시아 서술은 중국 7.9%, 일본 18.4%, 한국 20%에 불과하다. 이는 유럽에 대한 서술(각각 64%, 45.4%, 34.2%)보다 현저히 적은 양이다.

동아시아의 소외 속에서도 두드러진 현상은 소국의 소외다. 한·중 공히 민족운동을 서술할 때 반제민족(反帝民族)을 국가형성의 유일한 주체로 삼은 탓에 그 내부의 소수민족은 아예 배제했다. 따라서 주류민족과 소수민족 사이에 작동하는 위계구조가 간과된 것이다. 유구(琉球)를 비롯, 티베트 몽골 위구르족의 역사가 주목받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이같은 ‘동아시아 부재’, ‘소국 부재’의 세계사 구성체제는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서구로 들어가는 것)시대 일본의 국가주의 또는 대국주의로부터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

◆자국중심주의와 대국주의 = 팽창 지향의 제국 논리를 내면화한 각국의 역사 인식은 자국중심주의에 머물고 있어 국경을 넘는 순간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역사 분쟁의 가장 뿌리 깊은 원인은 여기에 있다. 한국은 주변국에 대한 억압과 역사갈등을 가장 적게 조장한 점에서 동아시아 역사대화를 앞장서서 이끌 명분과 위치를 갖고 있다. 또한 소국과 소민족의 처지를 함께 주목하면 지역질서를 위협하는 제국의 존재를 상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엇비슷한 여러 나라가 경쟁하고 견제하는 유럽과 달리 초월적 지위를 가진 중·일·미 3국이 차례로 군림해온 동아시아에선 이들 제국의 상대화야말로 지역내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필수적 과제다.

동아시아 역사분쟁의 연원이 중화제국을 모델로 한 대국주의에 있다고 해도 중국과 일본 안에도 그에 비판적인 소국주의 논리 역시 존재해 왔다. 이같은 소국주의 논리를 부각시키면 대국주의와 제국의식을 상대화하는 자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