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살이 100년’재일교포의 발자취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45년 8·15해방 직후 일본 야마구치현 나가토시의 센자키 항에서 귀국선을 기다리는 조선인들. 역사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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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在日) 한국인, 우리 귀에는 ‘재일교포’로 익숙해져 있는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왔을까. 재일 한국인이 대한해협을 건너가기 시작한 시점은 1905년 쯤으로 잡는다. 재일 한국인이 형성된 지 100년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시점을 맞아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재일 한국인의 역사’(역사넷)를 통해 고난에 찬 그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 중앙 민족교육위원회’가 기획하고, ‘역사교과서 재일 코리언의 역사 작성위원회’가 펴낸 책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평이하게 구성돼 있으면서도 사진 등 각종 자료들이 풍부하게 수록돼 있어 재일 한국인 역사에 대한 전문서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책의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조선인은 왜 대한해협을 건너갔나 = 에도(江戶) 시대부터 메이지(明治) 전기까지 일본에 사는 조선인은 거의 없었다. 일본 당국의 통계를 보면, 재일 조선인은 러·일 전쟁이 시작된 1904년에 겨우 233명 정도가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유학생이나 망명한 정치가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돼 식민지가 된 1910년 이후 재일 조선인은 점차 증가하기 시작했다.(그래프 참조)

해방을 맞이한 1945년 재일 조선인은 240만명이나 됐다. 이 숫자는 당시 조선인 총인구의 약 10%에 해당한다. 조선인은 대지에 굳건히 뿌리를 내린 농경 민족이지, 유목민이 아니었다. 그런데 겨우 40년 사이에 어떻게 이처럼 대규모의 유이민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이는 일제의 토지 수탈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1910년대는 토지 조사사업에 의한 ‘토지 수탈’, 1920년대는 산미 증산계획에 의한 ‘쌀 수탈’, 1930년대는 황민화 정책에 의한 ‘노동력 수탈’, 1940년대는 징용·징병에 의한 ‘생명 수탈’이 가해졌던 것이다. 이주 초기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토지 수탈이었다. 재일 조선인은 1911년 2527명에서 1920년엔 3만189명으로 늘어났다. 9년 사이에 무려 10배 이상 증가했던 것이다. 결국 토지를 빼앗긴 농민이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입증하는 자료가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의 소유지다. 동척은 1909년 대한제국 왕실 등의 토지 1만1000정보(약 109㎢)를 현물출자해 창립된 회사인데, 토지 조사가 끝난 1918년에는 전답만 해도 8만 정보(약 793㎢)를 가진 거대 지주가 됐다.

1930년대에 걸쳐선 매년 8만~15만명의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토지 조사사업으로 토지를 상실하고, 산미 증산계획으로 대출금이 늘어난 농민들이 급격히 증가한 데다 중·일 전쟁발발(1937년) 이후 전시 노동력 동원으로 강제적으로 일본에 연행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1920년에 약 3만명이었던 재일 조선인 인구는 1939년엔 무려 96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재일 조선인은 어떻게 살았나 = 일본에 건너온 조선인은 조선에서의 생활과 전통을 살리기 위해 골몰했다. 여성들은 한복을 즐겨 입고, 조선의 요리를 만들었다. 일본인이 조선인에게는 집을 빌려 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스스로 집을 짓고 살았다. 그 중에는 조선에서와 같이 온돌을 갖춘 집도 있었다.

일본 사회의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서로를 도우며 함께 살기 위해 차츰 한 곳에 모이고, 이윽고 집단 거주지구(조선인 마을)가 형성됐다. 그러나 거주지구의 태반이 도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하수·전기 등의 기본 설비가 갖춰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인 마을에선 고춧가루, 마늘을 비롯한 조선 요리의 식재료, 조선 옷감, 조선 식당 등의 점포가 있었고 일거리를 알선 받을 수 있었다.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關東) 대지진’은 재일 조선인의 삶을 바꿔놓은 큰 사건이었다. ‘조선인은 놔두면 우물에 독을 넣는다. 또는 방화를 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수천명의 조선인이 학살 당했다. 조선인 피해자의 신원과 전체 숫자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5000∼6000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일본에 와 있던 조선인이 약 8만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5명 중에 1명 꼴로 희생 당했던 것이다.

◆징용·징병의 시기 = 조선인 강제 연행기는 대체로 1939년 이후 1945년까지다. 이 시기 일제는 노무 동원, 병력 동원, 준 병력 동원, 여성 동원의 방식으로 강제 연행을 실시했다. 1939년부터 6년 사이에 연행자의 가족을 포함, 100만명 이상의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왔다. 일본으로 건너간 노동자의 수는 70만~80만명으로 추산된다. 일본의 댐, 광산, 철도, 도로, 어느 하나에도 조선인의 피와 땀이 흐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1945년 해방 당시에 조선인 군인은 육군 중장 2명을 비롯, 소장 1명, 대좌 2명, 좌관 약 25명, 위관·견습 사관 약 200명, 육군 18만6980명, 해군 2만2299명, 육·해 군속 15만4907명으로 모두 36만4186명에 달했다. 이는 당시 일본 군인의 10% 이상에 상당하는 인원이었다.

일본 공안조사청의 발표에 따르면, 해방 이후 8년이 지난 1953년 5월 시점에서 조선인 군인 및 군속의 복귀자·복귀 예정자는 24만2620명, 생존예상·생존 확실 10만5203명, 사망·사망 확정 1만6340명, 불명확 23명이라고 돼 있다. 해방 후 8년이 지났는데도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존 예상’으로 분류돼 있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