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발목잡혀 글로벌 기업 불가능”

재계가 정부의 규제개혁 접근 방식에 대해 개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현재처럼 규제에 발목이 잡힌 기업환경으로는 글로벌 경쟁체제에 더이상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 경제는 외형으로는 국내총생산(GDP) 규모 12위, 수출은 11위이나 1990년대 중반이후 경제성장률이 4%대로 고착화되는 등‘경제 조로화’징후가 두드러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지만 기업 설비투자는 지지부진하고 임금 경쟁력도 뒤처져 있는가 하면 노사문제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부 효율성과 기업 효율성도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다 대선정국과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기업환경 개선에 대한 정책 반영도를 높이기 위한 복안도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가 법인세율 인하 및 과세표준 상향조정, 서비스업 외국인 고용허가제 허용 확대 등 52개 요구안을 건의한데 이어 전국경제인연합회도 18일 대규모 기업환경 개선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전경련은 지난 5월부터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을 중심으로 6000여개 규제안에 대한 전방위 전수조사를 진행해 왔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 요구안은 세부적으로 약 700건이 되는 대규모로알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노무현정부에서 8082개 규제를 재분류해 5050개 정도로 줄이는 등 성과를 거뒀다고 하지만 출자총액제한제도, 수도권 규제 등 핵심잔존규제가 여전해 기업들의 현장체감도가 극히 낮다며 불만을 표시해 왔다.

대한상의가 건의한 52개 요구안에도 이같은 과제가 빠짐없이 포함돼 있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정책, 적대적 인수·합병(M&A)방어장치 미비 등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해묵은 과제’부터 종업원의 불법행위에 대해 회사도 연대책임을 져야 하는 양벌조항 적용면제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인식과 시스템의 전환 요구다. 대한상의 핵심 관계자는 지난 7월, “현재의 방식과 시스템으로 업계가 필요로 하는 규제개혁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면서 “근본적으로,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건의안이 사안별 규제철폐외에 규제제도의 방향 전환, 규제개혁 조직 및 시스템 개선에 무게가 실린 것도 이때문이다. 예컨대, 규제방식이 현재처럼 포지티브 방식으로 흐를 경우 민간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무시해 하향평준화를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민간은 자신들에게 이로운 게 무엇인지 모르고,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엉망이 되기 때문에 정부가 미리 규제한다는 발상이 문제”라면서 “출자 상한선을 정부가 미리 정해 놓고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투자를 공무원이 판단하겠다는 출자총액규제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민종기자 horiz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