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현대판 충신’ 필요한 때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과 대통합민주신당 김한길 의원의 정계은퇴 선언이 찻잔 속 태풍으로 잦아들던 지난 9일 김장수 국방장관의 장관직 유임 고사 소식이 전해졌다.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측은 ‘김 장관이 새정부와 색채가 맞고 참여정부 장관도 원칙이 통하고 실력이 있으면 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장관직 유임을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장관은 ‘나는 아무리 그래도 참여정부 사람이다. 두 대통령을 모실 수 없다’는 취지로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의 이같은 결심은 노무현 정부 고위공직자들이 지난 대선을 통해 확인된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아랑곳하지 않고 총선 출마를 준비하거나 강단 복귀를 시도하고, 심지어 자신을 ‘영혼이 없는 존재’라며 폄훼하는 상황에서 갓 수확한 감귤같은 청량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충신불사이군(忠臣不事二君·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의 현대판 버전격인 ‘두 대통령을 모실 수 없다’는 표현도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13개월 남짓한 재임기간중 김 장관은 노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기보다 국가안보와 군의 사기를 우선하는 소신을 지켰다. 그는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악수해 ‘꼿꼿 장수’라는 애칭을 얻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서해북방한계선(NLL)은 영토개념으로 보기 어렵다”는 노 대통령의 ‘폭탄발언’에도 불구하고 “장관직을 걸고 NLL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고위공직에 임명되기가 무섭게 평생의 소신을 접고 대통령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다 결국 노무현 정부를 나락에 빠트리고 그것도 모자라 새로운 권력 앞에서 다시 영혼을 파는 ‘간신’들에 비하면 그는 확실히 현대판 ‘충신’이다. 그가 섬겼다는 ‘대통령’은 ‘정치인 노무현’이 아니라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통령’, 즉 ‘국민’이었다. 결국 그가 말한 ‘불사이군’은 국민의 심판을 받으면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는 ‘책임정치’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김 장관은 충신의 또다른 덕목인 청렴도에서도 두드러졌다. 2006년 11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그는 93년식 콩코드 승용차를 13년째 타고 다닌 것으로 밝혀져 ‘최근 임명된 각료 중 가장 청빈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았다. 야당인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조차 “(국방장관)후보자는 현재 집을 한 채도 가지고 있지 않고 땅 한평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최근 ‘지금 집을 사면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대국민 홍보를 해놓고 자기는 서울 강남에 시가 20억원짜리 아파트를 부인 명의로 소유하고 강남에 있던 또 다른 한채는 최근 팔았던 청와대 이백만 홍보수석의 이중성과 잘 대비되는 공직자상이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국민을 우선하는 충신보다 노 대통령의 코드와 시대착오적인 이념에만 매달린 간신들이 득실거렸기 때문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지 못한 노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정치든, 경제살리기든, 국가경영이든 결국은 사람이 한다.

인수위가 내놓고 있는 수많은 법개정안과 제도개선책도 운용하는 사람이 간신이면 국민을 섬기는 도구가 될 수 없다. 인수위의 가장 큰 책무는 진정한 충신을 추천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학연, 지연, 혈연은 물론 정치적 이해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어쭙잖은 능력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에 맞서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성품을 고려해야 한다. 좋은 뜻으로 김 장관에게 한 말이겠지만 ‘새정부와 색채가 맞다’는 식의 판단 기준도 지양해야 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민 / 사회부 차장]] minp@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