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후원금 받느냐 마느냐” 보수시민단체 ‘고민’

10년 만의 정권 교체라는 목표를 위해 전례 없이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던 보수성향 시민단체들이 정작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는 아노미(가치공동화 현상)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일부 단체는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직접적으로 지지한 전력 때문에 시민단체가 아니라 정치단체로 이미지가 굳어져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일부 단체들은 과거 진보 시민단체들의 정부지원금 수혜를 비판했던 것과 달리 “정부지원금이 필요하다”며 정부에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신청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영리민간단체냐, 정치단체냐’…정체성 논란 = 뉴라이트전국연합(전국연합)은 최근 행정안전부로부터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해 전국연합 모체인 ‘사단법인 뉴라이트’의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신청서를 냈다.

지난 2000년부터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시행되면서 정부에 등록된 민간단체가 공익사업 계획서를 내면 심사·선정·평가를 거쳐 일정 국비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국연합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지지를 사실상 공식 선언하는 등 ‘정치단체’로 인식돼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비영리민간단체로 인정할 수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연합 측 관계자는 “민간단체 등록 신청을 하러 갔더니 정부 담당자가 ‘뉴라이트가 뭐냐, 감이 안 온다’”며 “우리의 선진화 운동에 대한 이해, 보수우파 시민단체들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고 마치 정치단체인 양 생각하더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단체의 주요 목적 사업이 무엇이냐가 관건”이라면서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민간단체 등록 여부는 현재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변철환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은 “지난 대선까지는 정권 교체라는 목표를 지지하는 일반 시민들이 많이 후원해줬지만 막상 대선에서 이기고 나니 후원금 모금의 동기부여가 잘 안 되는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특정 단체에 일방적으로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면 정부지원금을 받는 것 자체로 비판받을 순 없지 않겠느냐”고 속사정을 털어놨다.

◆재정난에 노선 혼선까지 = 상당수 보수 시민단체들이 재정난을 겪으면서 규모에 상관없이 적지 않은 보수단체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과거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것을 비판했던 전력 때문에 정부지원금을 둘러싸고 보수단체 내부에서 상반된 의견이 나오는 등 노선문제를 둘러싸고 혼선을 겪고 있다. 선진화국민회의는 당분간 간판을 내리는 문제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박세일 공동대표는 “이제 선진화를 추구하는 정부가 들어섰으니 활동을 중단하고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시민운동을 계속 하더라도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박경만 정책실장은 “단체의 활동 중단에 대해 내부 이견이 많은 상황이지만, 우리가 내건 선진화 기치는 이명박 정권과도 일맥상통하니 앞으로 제대로 하려면 정부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은 “솔직히 순수 국제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려면 정부지원을 받지 말아야 하지만 운영이 너무 힘들어 단체 등록하고 지원금 좀 받자는 등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고백했다.

조중근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처장은 “예전만큼 운영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민단체는 기본적으로 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기본”이라며 “만약 지원금을 받는다면 단체활동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진기자 wayto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