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수사에 축소 시도까지…”

경찰이 지난 26일 발생한 일산 여아 납치 미수 사건을 단순 폭행 사건으로 분류하고 사건 사흘 뒤에야 증거확보에 나서는 등 축소·늑장 수사를 벌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사고 당일이 경찰이 안양 초등생 납치·살해 사건 재발을 막겠다며 ‘어린이 납치·폭행 종합치안대책’을 발표한 날이어서 면피성 탁상행정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문책을 피하기 위해 사건을 은폐·축소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 늑장수사 성토 = 경찰은 초등학생 강모(10)양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흉기를 가진 50대 남성에게 폭행을 당하고 납치당할 뻔한 사건을 단순 폭행 사건으로 분류했다.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다가 아파트 주민들이 수배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자 사건 발생 사흘 뒤인 29일에서야 폭행 장면과 범인의 얼굴이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을 확보하고 전담팀을 꾸렸다.

시민들은 이러한 경찰의 무사안일한 태도에 일제히 비난을 가했다. 초등학생 딸을 둔 이호근(34)씨는 “안양 초등생 납치·살해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한 시기에 어린이가 맞고 납치당할 뻔한 사건을 단순 폭행 사건으로 처리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국민 세금으로 일하는 경찰이 제대로 일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주부 최승례(여·28)씨도 “이렇게 치안이 흔들려서야 어디 편히 살 수 있겠느냐”며 “이제 한국에서는 불안해서 애들도 맘 놓고 키우지 못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네티즌들도 경찰의 무사안일한 태도를 성토했다. 아이디 natong은 “만약 납치되고 사흘이 지났다면 아이도 죽고 범인도 못 잡았을 것”이라며 “초동수사 문제점이 여러번 지적됐는 데도 불구하고 늑장대처하는 경찰을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아이디 nsy0126은 “경찰이 그 상황을 보고도 단순 폭행이라며 수사를 소홀히 한 것을 보면 정말 울화통이 터진다”면서 “담당 경찰 본인의 자식이었어도 그렇게 술렁술렁 넘어갔겠느냐”고 따졌다.

◆ 사건 은폐·축소 의혹 = 시민들은 사건 당일 발표된 ‘어린이 납치·폭행 종합치안대책’ 때문에 경찰이 납치 미수사건을 단순 폭행 사건으로 축소·은폐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김준영(53)씨는 “경찰이 대책을 발표하자마자 터진 사건에 부담을 느껴 단순 폭행으로 서둘러 봉합하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며 “정신 못 차리는 경찰을 위해 내는 세금이 아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박찬민(34)씨는 “CCTV만 봤다면 어떤 경찰도 이 사건을 단순 폭행 사건으로 분류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면서 “어린이 납치·폭행 종합치안대책 발표일에 사건이 터지니까 문책을 피하기 위해 폭행사건으로 축소했다고 밖에 볼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호진(30)씨도 “안양 초등생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한데 단순 폭행으로 봤다는 게 상식적으로 믿기지 않는다”며 “말로만 ‘새롭게 달라지겠다’고 하지 말고 기본 치안부터 잘 지켜 달라”고 말했다.

윤석만·이화종기자 sa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