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뺀’ 크루즈… 추억만큼은 ‘럭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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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팬터지 대신 새로운 체험 선사

# 국내 연안 크루즈 시대 열려 = 크루즈 여행이야말로 여행이 가진 팬터지 가운데 절정이다. 바다 위를 미끄러지는 크루즈 선박에 올라 하늘 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감미로운 칵테일을 즐기거나, 갑판 위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석양의 노을을 바라보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배에 오르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숙소, 식사, 일정을 고민할 필요가 없고, 저녁마다 펼쳐지는 각종 이벤트와 공연 등도 관람할 수 있는 크루즈 여행. 그런 크루즈가 국내에서 처음 운행을 시작했다.

지난 2일 오후 5시.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국내 최초의 연안크루즈 ‘팬스타 허니’ 호가 뱃고동 소리와 함께 출항했다. 처음 운항하는 팬스타 허니 호에 올라 부산에서 여수까지 1박2일 동안 크루즈 여행을 체험해봤다. 매번 항차별로 목적지를 교체하는 팬스타 허니 호의 이날 첫 스케줄은 부산에서 출발해 여수와 진해를 거쳐 부산항으로 되돌아오는 3박4일 일정이었다.

그 여정의 결론은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것이었다. 크루즈 선박 운항사 측도 “팬스타 허니 호는 호화 크루즈가 아니라 ‘캐주얼 크루즈’”라고 했다. 캐주얼 크루즈란 말 그대로 ‘격식을 차리지 않는 약식 크루즈’를 뜻한다. 따라서 자칫 해외 유명 크루즈 선박의 시설과 서비스를 상상했다가는 실망하기 쉽다. 그러나 크루즈 여행에 대한 눈높이를 좀 낮추고 ‘새로운 체험’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여정이 될 듯싶다.

2. 카지노·클럽… 갖출 건 다 갖춰

# 페리 호를 개조해 만든 캐주얼 크루즈 = 부산항 북항 1부두에서 처음 마주한 1만4000t급 ‘팬스타 허니’ 호의 위용은 당당했다. 최고 15만t을 넘는 초대형 유명 크루즈 선박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국내 주요 항로와 항구의 정박 수용능력 등을 감안하면 길이 136m에 7층 건물 높이는 ‘최대의 크기’다.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건조한 이 선박은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일본 하코다테와 아오모리 간을 운행하던 페리 호였다. 이를 한국의 팬스타닷컴이 인수해 3개월여의 대대적인 개조 작업을 거쳐 크루즈 선박으로 재탄생시켰다.

팬스타 허니 호의 출항 첫날인 지난 2일 오후 4시. 승선카드를 발급받은 300여명의 승객들이 첫 크루즈 항해의 기대를 안고 배에 올랐다. 승객들이 팬스타 허니 호의 허리 쯤에 난 문을 통해 배 안으로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잘 꾸며진 5층의 메인 로비다. 베이지색과 오렌지색 톤으로 꾸며진 로비 한쪽의 카지노 테이블(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해외 크루즈 여행의 최고 인기시설은 바로 카지노. 그러나 팬스타 허니 호의 카지노는 그야말로 순전히 ‘재미’를 위한 체험용 카지노다. 1만원을 내면 10만원 상당의 칩을 주고, 그 칩으로 룰렛이나 블랙잭 등을 해서 칩을 따면 돈 대신 와인 등 기념품으로 내주는 방식이다.

선내 곳곳의 인테리어는 그다지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깔끔한 편이었다. 하지만 당초 여객을 운송하던 페리호는 운항을 목적으로 건조된 탓에, 몇몇 편의시설은 외국의 본격 크루즈 선박에 못 미쳤다. 식당 등 선내 공용 공간도 수용 승객 수에 비해 비좁아보였다. 그러나 화물 선적 장소를 개조해 만든 듯한 공연 공간은 300명쯤은 너끈히 수용할 만큼 컸다.

3. 남도 봄바다·야경 ‘한폭 그림’

# 해운대의 야경, 그리고 배 위에서의 만찬 = 오후 5시. 긴 뱃고동 소리와 함께 팬스타 허니 호가 수면 위로 미끄러졌다. 운항 첫날 크루즈의 첫 기항지는 전남 여수지만, 여수까지는 네댓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 이동은 대부분 승객들이 잠든 새벽시간에 이뤄지고, 나머지 시간은 바다에 ‘떠’있게 된다. 부산항을 나선 팬스타 허니 호는 먼저 야경(사진)이 아름다운 해운대 앞바다로 향했다. 승객들은 갑판으로 나와 멀리 부산항 쪽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감상했다. 어둠이 내리자 배는 해운대 앞바다에 육중한 닻을 내렸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부는 갑판에서 바라보는 해운대 앞바다의 불을 켠 광안대교와 고층건물들의 야경(사진)은 아름다웠다. 이따금 불을 켠 상선들이 해운대 앞의 바다를 오갔다.

이윽고 저녁식사 시간. 크루즈 요금에는 하루 세 차례 식당에서의 식사와 중간 중간에 제공되는 간식까지 1일 6회의 식사 비용이 모두 포함돼 있다. 팬스타 허니 호의 식당은 두 곳. 하나는 뷔페식으로 음식이 차려지는 식당이고, 다른 한 곳은 정찬이 마련되는 고급식당이다. 요트 캐빈 아래 등급의 객실 승객들은 뷔페식당 ‘무궁화’를, 요트 캐빈 객실 손님부터는 정찬식당인 ‘체리 블러섬’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뷔페식당의 메뉴는 중급 호텔 수준. 다만 승선 인원에 비해 공간이 좁은 편이어서 만실이 됐던 운항 첫날 저녁식사 때는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불편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1박2일 승객들이 빠져나간 둘째 날부터는 메뉴와 분위기가 크게 나아졌다. 식당에는 7~8명이 앉는 원탁 테이블과 4인용 테이블이 대부분이어서 연인이나 부부가 오붓한 식사를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체리 블러섬’은 모두 4인용 테이블인 데다 좌석도 여유가 있어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4. 고급객실 vs 텐트룸 ‘취향따라’

# 객실별로 하늘과 땅 차이… 숙소 = 팬스타 허니 호를 이용한다면 선택에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 바로 숙소(사진)다. 사실 크루즈의 목적이 ‘이동’이 아닌 바에야, 여행의 품질은 숙소의 비중이 가장 크다. 객실 타입은 모두 11개나 된다. 타입별 객실의 수준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최고급인 월풀 욕조와 냉장고 등이 갖춰진 프레지던트 스위트 허니 객실이 있는가 하면, 대형 온돌방에 촘촘하게 쳐진 텐트 안에서 자야 하는 ‘텐트 캐빈’룸도 있다.

객실 타입은 ‘요트 캐빈’ 객실을 중심으로 아래위로 나눠볼 수 있다. 프레지던트 스위트 허니부터 요트 캐빈까지의 객실에는 침대와 샤워시설, 화장실이 구비돼 있지만, 이 등급 아래는 대부분 방에 스펀지 요를 깔고 자는 온돌방이거나 이층침대로 채워진 공간이다. 방에는 간단한 세면대만 있을 뿐이어서 공동 화장실이나 사우나를 이용해야 한다. 특히 요트 캐빈 아래 세 번째 등급인 프리미엄룸부터는 복도 쪽의 문만 있을 뿐 창문도 없다. 여러 명이 한데 모여 흥겹게 놀기 위한 것이라면 모를까 가족이나 연인끼리 낭만적인 크루즈를 즐기려 한다면, 요트 캐빈 이상의 객실을 택하는 편이 낫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이다. 요트 캐빈은 1인당 1박 기준 25만800원. 3박4일 일정이라면 75만2400원이다. 객실이 2인실이니 2명이 함께 이용한다면 150만4800원이란 적잖은 비용이 든다. 물론 게다가 기항지별 관광요금 1인당 7만원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운항사 측은 이 크루즈가 ‘럭셔리’가 아닌 ‘캐주얼’이라고 강조했지만, 가격은 부담스러운 편. 저렴하게 가자면 텐트 캐빈을 이용해 2인 3박4일 여정의 가격을 84만4800원까지 줄일 수는 있지만 크루즈 여행을 즐기겠다면 되도록 ‘좋은 방’을 택하는 것이 좋다.

1박 기준 1인당 14만원 ~ 53만원

팬스타 허니 크루즈는 기본 일정이 3박4일이지만, 1박2일 또는 2박3일만 이용할 수도 있다. 요금은 식사 등을 포함해 1박당 계산된다. 크루즈의 최고급 객실은 프레지던트 스위트 허니. 단 1개의 객실만 있다. 1인당 1박 53만6800원으로 가격도 최고다. 로열 스위트(이하 1인 1박 기준 39만800~41만5800원)와 발코니 스위트(31만6800원), 요트 캐빈(25만800원)까지는 샤워시설과 냉장고, 화장실이 갖춰져 있다. 온돌방이나 이층침대를 비치한 캐빈 패밀리, 캐빈 사랑방(21만7800원) 등은 4~6인 가족들을 위한 객실. 스탠다드룸(14만800~15만1800원)은 8인실로 온돌방과 이층침대를 갖추고 있다. 저렴한 대신 창문이 없어 답답한 느낌이 든다. 가장 저렴한 것이 텐트 캐빈(14만800원)으로 큰 온돌방에 텐트 30동을 쳐놓았다.

골프존·헤어숍·레스토랑 등

메인 로비 아래층인 4층에는 매일 저녁엔 공연장으로, 심야엔 나이트클럽으로 변신하는 클럽 ‘마스까라데’가 있다. 5층에는 가라오케도 있다. 배 안에는 무궁화(뷔페식당)와 체리블러섬(정찬식당) 등 2곳의 레스토랑과 2개의 바가 있다. 테크선라이즈는 배 앞쪽의 제법 널찍한 전망 좋은 바고, 스타보드는 가볍게 맥주 등을 마실 수 있는 자그마한 규모다. 배 안에는 허니스파란 이름의 남녀 사우나가 있다. 배 뒤쪽 갑판에는 무한 야드라고 이름 붙인 골프존도 있다. 이곳에서는 바다 위로 시원스레 드라이버 샷을 할 수 있다.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테이블과 헤어·네일숍도 있다.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는 상점도 있고 24시간 편의점도 있다. 이 밖에 어린이 놀이공간 등도 갖춰져 있다.

계절·날씨 따라 목적지 바꿔

팬스타 허니 호는 고정된 정기 항로를 운항하지 않고, 계절과 날씨 등에 따라 운항 목적지를 바꾼다. 첫 항차에는 부산-여수-진해-부산 구간을 운항했으나, 앞으로 부산을 모항(母港)으로 해서 부산-완도-제주-부산, 부산-통영-완도-부산, 부산-하의도-거제-포항-부산 등 다양한 구간을 3박4일 또는 4박5일 일정으로 운항할 예정이다. 당초 크루즈 운항선사인 팬스타라인닷컴은 9일 두 번째 출항을 예정했으나, 첫 운항 과정에서 서비스 등의 문제점이 발견됨에 따라, 두 번째 항차를 포기하고 시설·서비스 점검과 보완에 나섰다. 이에 따라 오는 23일 부산-완도-제주-부산을 도는 항로로 두 번째 항차를 운항할 예정이다. 이어 30일에는 부산-완도-제주-부산 여정의 항해를 한다. 팬스타라인닷컴은 4월 한 달 동안, 전 객실의 요금을 20% 인하한다. 또 오는 10월까지는 승용차 등 차량선적료도 추가 비용부담없이 무료로 제공한다.

개별·패키지 투어상품 중 선택

기항지에서는 배에 머물며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배에서 내려 현지 관광을 할 수도 있다. 크루즈에서 마련한 패키지 여행상품을 택해 돌아보거나 개별 여행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패키지 여행상품을 이용할 경우 1인 7만원 안팎. 배에 승용차를 싣고 기항지에서 손수 운전을 하며 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팬스타 허니 호는 크루즈 선박이면서도 이례적으로 200대의 차량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놓았다. 실제로 첫 취항 때도 승객들이 몰고 온 30여대의 차량을 배에 싣고 운항했다. 이날 차량을 몰고 온 승객들은 기항지인 여수와 진해 등에서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종일 관광을 하고 크루즈로 돌아오기도 했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