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오동진의 동시 상영관>군사분계선 안 초소의 집단살인극

전작 ‘알포인트’에 이어 또다시 군대와 군인들을 소재로 다룬 공수창 감독의 신작 ‘GP 506’은 끝까지 수수께끼를 남기는 유형의 미스터리극이다. 506GP에서 대원들 사이에 번진 괴질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괴질이 퍼졌는가. 괴질은 과연 어디에서 왔는가. 정작 더 궁금한 것은, 이 괴질의 정체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이다. 이것이야말로 끝까지 남는 수수께끼의 정점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GP 안에서 벌어진 대형 살인극은 괴질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자꾸 느껴진다.

이제 막 아내의 장례식을 마친 군수사관 노 원사(元士·하사관 계급의 하나로 이른바 노란 다이아몬드인 준위보다 아래, 상사보다는 위다. 일종의 특무상사급으로 생각하면 된다)는 상급자로부터 특명을 받는다. 군사분계선 안 506GP에서 원인 모를 살인극이 벌어져 소대원 21명 가운데 20명이 몰살했는데 그중 GP장인 유 중위의 시체를 찾아 오라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유 중위가 육군 참모총장의 아들이라는 것. 유 중위와 함께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나머지 소대원들은 살아있는 병사가 모두 살해한 것으로 보고됐다. 참혹한 시체가 쌓여 있는 506GP로 급파된 노 원사는 그곳에 미리 와있던 헌병 수사대와 합류, 유 중위의 시체를 찾고 동시에 범행 동기를 캐는 데 주력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헌병대원들마저 하나둘씩 서로를 죽고 죽이는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공 감독에게 있어 GP막사, 병영 (혹은 ‘알포인트’처럼 전투가 벌어지는 베트남 정글 어디쯤) 등은 군이라는 집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 그건 인간 심연의 공포를 들여다볼 수 있는 미학적 공간이다. 전작에 이어 두번째 작품마저 광기에 휩싸인 군인들의 얘기를 그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의 작품세계를 지나치게 군사적, 정치적으로 확대해석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반복해서 군인들의 이야기를 만든 것은 군대야말로 인간 내면의 숨겨진 폭력성과 광기가 쉽사리 노출되는 ‘닫힌 감옥’이기 때문이다. 이건 결국 미셸 푸코의 ‘감옥’에 대한 사색과 같은 맥락으로 느껴지는데 공수창은 가장 극악한 형태이자 상징적 감옥인 군대라는 공간을 통해 우리 사회가 혹시 합법과 지식, 권위와 규범의 탈을 쓰고 사실상 각 개인들의 삶을 더욱더 옥죄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묻는다.

현대사회는 만인의 효율적인 삶을 위한답시고, 무엇보다 안전한 삶을 위한답시고 일정한 테두리를 쳐놓고 법과 도덕, 질서의 이름으로 규율들을 심어놨는데 실상 사람들의 일상을 뒤흔드는 아우성은 밖에서가 아니라 안, 곧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결국 공수창이 지목하는 것은 군대 내부가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의 문제다. 공수창의 ‘군인들’이 극중에서 쉽게 미쳐가는 것, 적에게가 아니라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GP 506’ 안에서 가장 이성적인 인물로 보이는 노 원사의 행적이 결국 도로(徒勞)로 귀결되는 것은 그가 지키려는 내부가 사실은 ‘작은 내부’일 뿐 ‘더 큰 내부’의 문제가 엄존해 있어서다. 그는 병사들의 광기를 자멸을 통한 ‘또 한번의 몰살’로 없애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근원을 없애기에는 역부족일 뿐이다. 공수창의 영화가 공포의 외피를 쓰고 있음에도 사실상 무섭기보다 처참하게 느껴지는 것, 섬뜩하기보다 차라리 슬픈 장송곡처럼 비관주의에 휘감겨 있는 듯이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짧은 기간이나마 이 영화가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건 아이러니다. 효용의 극단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금의 시대, 어두운 진실의 이면보다는 밝고 화려한 허상의 정면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대에 이 영화는 분명 그것과 크게 역행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객은 시대의 진실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일까. 혹시 이 영화에 나오는 청춘스타 조현재 때문에 빚어진 반짝 신기루에 불과한 것일까. 부디 전자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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