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제국대학 나온 게 親日인가”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4776명 명단과 함께 선정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후손들과 관련단체들이 반발하면서 법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어 후폭풍이 예상된다.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는 에텐라쿠(강천성악)와 같은 일본천황 찬양곡을 작곡했고, 나치 독일에서 ‘일독회’와 같은 친나치단체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친일 대상자로 꼽혔다.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안익태가 국내에서 친일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해외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했고, 나치에 협력했던 행위가 너무도 명백해 이론의 여지없이 수록대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시인 유치환은 이번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라 계속 심의 중인 상태. 최근 만선일보에 실린 유치환의 친일 논설이 추가적으로 확인돼 전문가들의 논의가 진행 중이다.

●…연구소 등에 따르면 자신의 친일 행위를 반성하고 직접 책임지려 한 인사도 적지 않았다. 이항녕은 지난 1991년 바르게살기운동 하동군협의회 초청 강연회에서 “일제 말 27세의 젊은 나이로 하동군수를 지내면서 자신의 출세와 보신에 눈이 어두워 군민들을 죽창으로 위협했던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신 하동 군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현석호는 지난 1986년 ‘한 삶의 고백’이란 저서에서 “나 개인으로서는 양심적으로 부끄러운 일이 없었지만 일정 때 고급관리로서 협력한 것은 사실”이라며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 대열에 참여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일과 출세를 위해 힘쓴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친일 인물 후손들 중 일부는 직접 사죄하기도 했다. 파인 김동환의 아들 김영식 선생은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 사죄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에 매월 회비도 납부하고 있다. 김 선생은 부친의 일대기를 쓴 ‘아버지 파인 김동환-그의 생애와 문학(1994)’에서 “가족을 대신해 국가와 민족 앞에 깊이 머리숙여 사죄한다”며 “아버지가 일제 말엽에 한때 저지른 치욕적인 친일행위를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용수·한창수·한상용의 후손 한진규 선생은 지난 2005년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 발표 후 “조상들의 업적과 함께 친일행동도 함께 후손이 책임지는 것으로 한국사회를 조금씩 바꿀 수 있을 거라 희망을 갖는다”고 전했다.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은 “민족문제는 우선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해왔다고 본다”며 “친일파를 공개한다는 미명하에 남한체제를 위협하고 친북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고 말했다.

반면, 장대현 한국진보연대 대변인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친일명단을 공개했고, 이번 명단 공개를 통해서 반민특위 좌절 이후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친일역사를 바로잡는 뜻깊은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최승희연구가인 강원대 한경자(무용과) 교수는 “무용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예술의 토대를 쌓는데 공헌한 예술인들을 순수하게 작품으로 보지 않고 행적과 관련해 재단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면서 “특히 최승희의 경우 작품연보에서 친일작품은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관계자는 “현단계에서 다시 친일 문화예술인 명단을 거론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예총 차원에서 이번에 발표된 명단을 검토한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아들 신철식 전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은 “아버지가 친일파와 관련된 어떤 언동이라도 있었다면 일본이라면 이를 갈던 이승만 대통령이 중용했겠느냐”면서 “일제시대에 경성제국대학을 나오고 일본에서 근무했다는 것을 문제삼고 있는데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하고 명단을 발표한다면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엄주엽·조민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