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시설 규제 풀자는 건의, 옛날 같으면 말도 못꺼내”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석래(왼쪽)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28일 저녁 베이징행 비행기에서 김만용(오른쪽) 문화일보 기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에 ‘올인’할수록 더 바빠지는 사람이 있다. 재계를 대표하는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다. 재계의 맏형인 전경련의 수장으로서 그는 요즘 말 그대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28일에도 오후 늦게 청와대에서 있었던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 참석한 조 회장은 대통령과 만찬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중국 베이징(北京)발 전세기편에 올랐다. 29일 중국의 재계 대표들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잠시라도 짬을 내기가 쉽지 않은 그를 기내에서 ‘간신히’ 인터뷰할 수 있었다. 1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그는 이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으며 “오너 경영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아달라”는 점을 집중 당부하기도 했다. 또한 조 회장은 “샌드위치론은 단순히 위기론일 뿐”이라면서 “동아시아 경제권의 통합”을 주장하기도 했다. 다음은 조 회장과의 일문일답.


―28일 청와대 회의 분위기는.

“다들 적극적이었다. 얘기도 많이 나왔다. 원래 오후 6시반에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얘기가 너무 길어지자 사회자가 중간에서 자르고 밥 먹으면서 하자고 할 정도였다. 어느 장관이 예전과 비슷한 수준의 발언을 해서 대통령의 지적을 받았다. 대통령은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정부에선 그냥 고려해보겠다, 앞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하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투자 애로를 보고했나.

“우선 제2롯데월드 관련 서울공항 고도제한 문제를 얘기했다. 군사시설의 여러 가지 제약이 있고, 관련규제 조항이 많다. 이제 평화와 안정이 이뤄졌으면 군이 어느 정도 비켜줘야 한다. 중소기업 쪽에선 최저임금제와 관련해서 제안을 했다. 현재 월 최저임금이 80만원대인데 초과근무수당이나 보너스 등을 합하면 110만원이 넘는다. 이를 외국인 근로자에게 똑같이 적용하다보니 외국인 근로자 고용 메리트가 사라졌다. 기업이 자기 비용을 들여 송전소를 설치하는 문제도 지적됐다. 요즘은 공장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건설되는 경우가 많다. 송전거리가 멀다보니 송전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땅주인과 협의하는 데 죽을 고생을 한다. 한전은 이런 분야의 전문가이니 한전이 하는 것이 낫지 않나. 특히 관광산업 개발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했다. 관광산업을 개발하려면 호텔, 리조트 등을 위해 토지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데 부유세 등이 과다하니 줄이는 방향으로 하자고 건의했다.”

―수도권 규제완화에 관해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같은 첨단기업은 고급인력 확보가 관건이다. 이런 인력이 ‘서울을 안 떠난다’고 하는 실정인 만큼 첨단산업은 수도권 규제를 풀어야 한다. 수도권 기존공장 증설도 문제다. 현재 공장의 바로 옆에 증설해야 기존 인프라나 지원시설, 관리인력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런데 공장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수도권에서 공장을 지으려면 다른 공장을 그만큼 허물어야 한다는 규정까지 있다.”

―보고를 들은 대통령의 반응은.

“대통령도 ‘좋은 아이디어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으니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밀어주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모든 것을 경제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회의에서 어느 장관이 예전에 하던 것과 비슷한 발언을 하니까 대통령이 ‘똑같은 대답하느냐’고 지적했다. 대통령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관에선 ‘고려해보겠다’,‘앞으로 검토하겠다’고 하니 대통령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들과 어떤 점이 다른가.

“기업인 출신이다보니 구체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과거 대통령과 다른 점은 기업에 대한 태도다. 옛날 대통령들은 ‘경제 잘돼가는데 무슨 문제냐. 애쓰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자고 한다. 과거엔 생각도 못한 일이다. 이날 군사시설 관련규제 얘기가 나왔는데 과거엔 꺼내지도 못하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를 가난에서 탈출하게 해준 박정희 대통령과 비교하더라도 그 열정이 다를 게 없다. 이 대통령은 ‘국민이 경제 살리기를 위해 나를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우리 경제 상황은.

“우리 경제는 살아나고 있다. 지금까지 분위기는 침체돼 있었다. 참으로 일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 30대 그룹을 보면 투자 계획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회의에서 얘기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모두 투자할테니 장애를 없애달라는 반응이었다.”

―중국의 추격이 빠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비용(코스트) 경쟁을 안 해도 될 만큼 노하우와 기술이 있다. 노사가 합심해서 서로 좋은 물건을 만들면 이길 수 있다. 노조가 룰을 깨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품질이 균일한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기업에 대한 투자가 안된다.”

―현재 중국에 진출해있는 한국 기업들이 어렵다는 얘기가 있다.

“자기 자신의 기술이 있으면 문제가 없다. 단순히 노동력만으로 하려는 게 문제다. 중국이 우리를 따라오는 속력은 빠르지만 우리도 달아나면 된다. 손님이 뭘 원하는지 빨리 알아내 조정하는 능력은 우리가 낫다. 고객 하나하나 서비스를 맞추는 것은 쉬운 게 아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본을 상당히 따라 갔다. 샌드위치론은 위기론일 뿐이다.”

―한중재계회의에서 어떤 제안을 할 것인가.

“동아시아 경제권을 형성해서 역내를 더 발전시켜야한다.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끌려다닐 순 없다. 민간차원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야한다. 유럽을 보면 참 부럽다. 비스켓 하나 만들면 전체시장에서 팔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전체를 상대로 만드는 비즈니스가 안된다. 한·중·일 재계회의를 만들어 차츰차츰 풀어가야한다. 솔직히 일본과 중국이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이제 한국이 중국에 투자하는 시대가 지나고 중국 자본을 유치해야한다는 얘기가 있다.

“이번 한·중재계회의에서 그 점을 강조할 것이다. 한국이 새 정부 들어와서 기업하기 좋아졌으니 투자해달라, 중국도 이제 돈 많이 벌었으니 한국으로 가지고 와달라고 말할 것이다.”

―중국 자본의 위험성은 없나. 기술유출 문제 등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자본이 들어온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자본이 들어와 해롭게 한다는 것은 못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공공성이 강한 부분에 외자가 지나치게 들어온다거나 독점을 형성하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그것은 제도로 보완하면 된다. 자본은 환영해야 하는 것이다. 외자나 내자나 다를 게 없다. 중국자본이 들어와서 조선업체를 산다고 하자. 그래서 그 조선소가 중국으로 가는 것인가. 자본과 함께 한국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삼성 비자금 조성논란에서 보듯, 아직도 국내에선 기업세습을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이 있다.

“사업을 얼마만큼 번창시키고 키워나가느냐의 문제는 사업하는 사람에겐 생명이자 일생이다.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능력 없는 아들한테 기업을 물려줘서 자기 일생과 바꿀 수는 없는 문제다. 자식에겐 먹고 살만큼 남겨주면 된다. 자기 돈을 물려줘서 손해보려는 놈이 어디 있으며, 누가 그런 사람에게 기업을 물려주겠는가. 자식에게 기업을 세습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오너에게 있어선 자신의 일생을 걸고 하는 일인데 무책임하게 하겠는가. 우리나라 상황에선 오너 경영의 장점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인의식면에서 오너 경영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재계에선 상속세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수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기업 경영권을 승계하려면 상속세를 내기 위해 기업의 반은 팔아야 한다. 불법적인 부의 세습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합법적인 부의 세습을 막아서는 안된다. 동네 구멍가게를 먹여살리는 것은 그 동네 부자다. 명품 사주는 것도 부자다. 그런 게 있어야 사회가 형성된다. 부자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곤란하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예전에 고촉통 싱가포르 총리를 만난 적이 있다. 싱가포르가 바로 상속세를 없앤 나라다. 고 총리에게 ‘왜 없앴느냐’고 물어보니 돈 있는 사람들은 결국 어떻게 해서든 안 내더라는 것이다. ‘룰’대로 다해도 합법적으로 다 빠져나가더라는 말이다. 또한 부자들이 상속세를 피해서 다른 나라로 다 가버리는 것도 문제다. 세수에도 전혀 기여를 안하는 데다 기업유치, 자본유치까지 저해하니 싱가포르 입장에선 상속세를 둘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이게 세계적인 추세다. 캐나다, 영국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상속세로 징수되는 돈이 연간 7000억~8000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안다. 자발적으로 세금 내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정부가 만들어줘야한다.”

―한·일 FTA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교역만 보면 한·일FTA는 우리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투자에 관해서는 우리가 코스트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일본자본의 국내투자 유치, 제3국 자본의 국내유치 등에 도움이 된다.”

―조 회장은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걸 어찌 아나? 곡식은 익어서 알맹이가 열려봐야 안다.”

―요즘 조 회장의 정력적인 활동에 놀라기도 한다. 현재는 인생에 있어서 어느 단계인가.

“인생은 항상 클라이맥스다. 항상 올라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한번 올라가면 언젠가는 내려와야한다.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면 클라이맥스든 아니든 상관없는 일이다.”

베이징 = 김만용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