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특집-불교-신학과 교수 특별대담>“탐욕, 성냄, 어리석은 집착 버리면 누구나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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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으로 종교간 갈등이 인류의 안위를 위협할 지경이 되고 있다. 그것을 ‘종교’간의 갈등문제로 모두 돌리는 게 맞지 않지만, 그렇다 해도 ‘종교’가, 더 폭넓게 각 종교가 오랜 세월 기반한 ‘문화’간의 충돌이라는 양상을 띠고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우리사회에서도 종교간 갈등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다행히 사회와 구성원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 더욱이 우리사회에선 종교인 또는 그 연구자나 신자들 사이에 종교 사이의 화합을 위한 노력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한국교수불자연합 회장이자 한국종교교육학회 회장인 김용표(불교학과) 동국대 교수와 성공회 사제로서 종교간 화합에 관심을 기울여온 김은규(신학과) 성공회대 교수가 8일 종교간 화합을 주제로 대담을 했다.

사회 = 여러모로 우리사회가 어수선한 가운데 부처님오신날을 맞게 돼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김은규 = 먼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마음(心)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진리를 터득하고 자비적인 실천 수행을 하신 부처님은 인류의 위대한 종교지도자이십니다. 이것은 사랑의 실천을 보여준 예수님과 동일하지요. 기독교의 성경도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의 마음이 그 중심에 있는데요,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마음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지요. 불교와 기독교 모두 마음 ‘심(心)’, 한 글자에 눈을 떠서 자기의 본성(自性·자성)을 보라는 진리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김용표 = 김은규 신부님의 부처님오신날 축하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열린 마음을 지닌 기독교인들과 불교인들이 서로 성탄절과 불탄절 때 축하의 메시지를 교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운 일입니다. 부처님은 모든 인간이 본래 부처라는 진리를 일깨워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은 모든 생명의 존엄을 깨달고 유정(有情·마음을 가진 살아 있는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되새기는 날입니다.

사회 = 흔히 기독교와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구원과 해탈’로 요약됩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는 타력, 불교는 자력 종교라고 말합니다. 어떤 차이들이 있을까요?

김용표 = 기독교는 ‘타력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고 불교는 ‘자력에 의한 해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신의 은총에 의한 구원과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한 해탈은 그 목적이나 방법이 매우 상이한 가르침으로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로 여겨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구원과 해탈의 길은 이기적인 자기 중심적 삶에서 다른 존재를 자신의 몸과 같이 생각하는 이타적 삶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개인의 내면적 신앙의 차원을 넘어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시대의 공동체와의 관계속에서 신앙의 목표를 찾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김은규 = 사실 타력과 자력은 구원과 해탈의 주체가 누구인가에서 나온 말입니다. 기독교는 신께 의지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르기 때문에 타력을 말하며, 불교는 팔정도(八正道)의 수행을 통해 열반과 해탈에 이르기 때문에 자력을 말하지요. 하지만 기독교인도 일생을 두고 번뇌가 일어나거든요. 따라서 구원받았다는 자만에 빠지지 말고, 자기 내면을 성찰하고 닦는 ‘점수(漸修)’의 수행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독교의 가장 약한 부분이 불교에서 가장 큰 장점이거든요. 상호보완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기독교가 지난 2000년간 인도·중국으로 흘러왔다면, 불교의 사상과 체계와 만나 함께 수행종교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회 = 김용표 교수님께 여쭙겠습니다. 적어도 한국 불교의 주류인 조계종은 간화선을 기둥으로 하는 수행의 종교입니다. 불교 조계종에서만 매 안거철마다 2000여명의 스님들이 안거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최근에는 재가 불자들에게도 수행이 일반화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다고 보시는지요?

김용표 = 대부분 한국 종교인들의 신앙과 마찬가지로, 기존 불교도들의 신앙형태도 기복신앙이 주류를 이루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생활화 운동이 확산되면서 불교 신행의 본질이 자기 수행에 있음을 자각한 재가불자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웰빙적 삶을 추구하는 불자들 사이에 간화선을 중심으로 한 참선수행 열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도심의 사찰에는 재가불자를 위한 선원이 많이 생겨 이제 참선은 불교도들의 일상적 수행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불교는 본래 구족한 불성을 스스로 자각하여 반야의 지혜를 얻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불교도들이 수행 중심의 신행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 불교만큼은 아니지만, 최근 개신교와 가톨릭에서도 수행을 연상케 하는 묵상이나 관상기도 등이 주목을 끌고 있지 않은지요? 이들 종교에서 묵상이나 관상기도를 강조하게 된 배경이 있는지요? 김은규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시지요.

김은규 = 한국의 보수 기독교는 비역사적이고 비사회적으로 개인에 초점을 두고 성령운동을 벌여 성장해 왔습니다. 밴드와 노래, 박수치며, 통성기도와 ‘할렐루야-아멘’이라는 감정적으로 흥분상태로 내모는 것이지요. 평신도를 우매하게 만드는 장치였다고나 할까요. 결국 기독교는 자기라는 주체가 없고, 모든 것을 절대자에게 의존하게 하는 신앙관이 미성숙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원인이 됐습니다. 저 개인도 영성훈련을 깊이 있게 못했지만, 이런 방식의 한계로, 묵상과 관상기도의 등장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봅니다. 성령체험은 조용한 내면적 수행을 통해서도 얻어지는 것이거든요. 기독교가 불교의 철학과 사상을 깊게 이해하면서 다양한 수행 방법들을 받아들여 내면의 세계가 깊어지면 좋겠습니다.

사회 = 불교 수행의 목표는 해탈입니다. 하지만 프로 수행자인 수좌들에게도 가능하지 않은 깨침이 재가 수행자에게 가능할지요? 해탈이 가능하지 않다면 왜 수행을 해야 하는지요?

김용표 = 자기 수행에 의한 니르바나의 체험은 물론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집착을 버리면 바로 부처와 다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승속(僧俗)과 남녀 노소의 구분이 없습니다. 해탈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삶을 완전하게 살려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서 살고자 하는 정진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사회 = 금권화, 상업주의화, 물량화로 비판받고 있는 한국 기독교에서 영성추구 바람은 종교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요?

김은규 = 한국의 보수 기독교는 1970년대 경제성장 논리에 상업화된 교회성장을 접목시켜, 대형교회를 추구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물질의 축복으로 보상받는다는 논리이지요. 1990년대 들어 영성운동이 기독교의 주류가 되었지만, 상업주의, 금권화, 교회권력, 근본주의의 속성은 변하지 않은 채, 제2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열린 ‘평양대부흥운동 백주년 기념’ 행사가 그 현주소를 보여준 것입니다. 기독교의 영성운동이 내면적인 성찰과 이웃에 대한 나눔운동, 사회의 약자, 여성, 인권, 사회정의, 생태, 평화, 이웃종교 등에 대한 관심보다는, 엄청나게 늘어난 교회들이 무한경쟁으로 가진 자가 더 많이 갖겠다는 힘의 논리로, 종교권력과 세속권력(기독교정당), 가부장적 권력을 동시에 거머쥐겠다는 근본이 깔려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사회 = 불교 수행 붐은 긍정적인 요소 못지않게 부정적인 요소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자본주의화, 상업화한 웰빙 바람을 타고 수행을 일종의 사치품처럼 소비하며 나홀로 행복 찾기에 몰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없지 않습니다.

김용표 = 현재 유행하고 있는 웰빙 문화는 내면적 요소보다는 상업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어 우려됩니다. 웰빙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건강식과 스포츠, 한방요법, 기공, 음악, 전통무예, 그리고 명상수련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화를 다스리며, 마음의 평화, 자연과 함께하는 삶, 그리고 자기를 계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태학적 삶과 통하는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상과 수행의 문제를 너무 피상적으로 이해하거나 육신 중심의 불로장생적 삶에 집착한다면 생사의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의 길과는 거리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회 = 개인과 사회의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수행, 또는 영성추구(기독교 신앙형태)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요?

김은규 = 구약성서 시대에 예언자들은 처음엔 입으로 죄를 많이 지었으나, 치유받은 이후 제사장을 포함한 사회 지도층의 구조적인 부패와 타락, 권력남용에 매서운 비판을 가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최우선시했습니다. 예수님도 병자들을 고치는 일만 한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권력자들과 고위 제사장들의 종교권력과 맞서서 십자가를 선택해 의로운 죽음을 보인 것이지요. 이처럼 영성은 개인과 사회와 역사가 통합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함석헌 선생, 문익환 목사, 티베트불교의 달라이 라마 지도자를 통해서 영성운동의 방향을 볼 수 있습니다. 영성은 자기-깨달음, 자기초월, 합리성, 창조성, 도덕성 등 내적인 실존 문제와 함께 공동체, 제도, 예배, 전통, 윤리, 사회, 종교 등 모든 범주에 걸쳐 있다고 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영성은 음악, 노래, 춤, 그림, 운동, 자연과 함께하기 등 문화와 예술, 과학으로 다양하게 승화될 수 있다고 보며, 선교와 포교도 수준 높게 가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 끝으로, 수행이나 영성추구와 관련해 부처님오신날 특히 강조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지요.

김용표 = 참된 웰빙을 위해서는 자아의 각성을 통한 불생불멸한 생명의 발견과 그 속에서 창조해가는 아름다운 삶, 나날이 새로운 삶에서 그 깊이를 더해가야 하지 않을까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모든 인류가 이기적인 물질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모든 존재와 자신이 본래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적 세계관을 깨달아 인류 공동체의 평화를 위한 자비의 등불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은규 = 우리는 인류문명사에서 큰 전환점이 되는 21세기, 새천년이 시작되는 시기에 살고 있는데, 이 시기는 해체주의, 탈권위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는 권위주의를 갖고 사상적 제약과 교리적 굴레에 스스로 갇혀 있습니다. 중세시대 수도원 영성운동도 결국 세속권력에 관여하고, 교회와 교권은 부패하고 타락하여, 교리화하고, 교조화된 역사적 교훈을 보는데, 현재 한국 보수 개신교가 어리석게도 그 전철을 밟고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시대의 영성은 기독교와 불교가 서로 공유하며, 개인수행과 사회적 책임을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붓다와 예수가 살아서 만난다면,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로 지내면서, 세상에 당면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며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사회 =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정리 = 김종락·엄주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