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노선 팽개친 ‘초유의 야합’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회창(왼쪽) 자유선진당 총재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원내교섭단체 공동구성 합의문 발표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김동훈기자

이회창 총재가 이끄는 자유선진당과 문국현 대표의 창조한국당이 23일 공동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전격 합의한 것에 대해 ‘정치적 야합’의 전향이라는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국회법상 교섭단체에 속하지 않은 의원 20명 이상이 별도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어, 공동 교섭단체 구성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인 이회창 총재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진보진영의 지지를 얻었던 문국현 대표의 결합을 놓고, 정치권에서는 “교섭단체 구성에서 얻는 이익을 위해 정체성마저 팽개친 야합”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 교섭단체 구성의 과실(果實) = 양당을 합친 의석은 21석(선진당 18석+창조한국당 3석)에 불과하지만, 교섭단체 구성만으로도 국회 운영 관련 협의에 참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다. 당장 18대 원 구성협상부터 참가할 수 있다. 상임위 및 특별위원회 위원 선임, 본회의장 의석배정, 헌법재판소 재판관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선출 등에 대한 국회의장―교섭단체 대표 협의에도 참여할 수 있다. 교섭단체를 지원하는 정책연구위원이 배정되고, 국회 사무실 공간 배정부터 달라진다.

다만 정치자금법상 같은 당 소속 의원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했을 때만 국고보조금 50%를 교섭단체들이 똑같이 나눠갖게 돼 있어 합당 없이 교섭단체만 구성했을 때는 국고보조금이 늘어나지 않는다. 만약 합당을 하면 현재 분기별로 선진당 5억3000여만원, 창조한국당 1억9000여만원인 국고보조금이 15억여원으로 뛰게 된다.

◆달라도 너무 달라 = 그러나 지난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드러난 정책을 비교해보면 양당은 거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수준이다. 특히 대북정책은 극단적 차이를 보인다.

선진당은 북핵폐기 및 국군포로·탈북자·이산가족 문제와 대북지원을 연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반면 창조한국당은 한국이 북·미, 북·일수교를 지원해줘야 된다고 외쳐왔다. 경제정책에서도 선진당이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집권 1년내 기업규제 철폐 등 ‘시장 만능주의’에 가까운 반면, 창조한국당은 비정규직 절반 이하 축소를 내걸고 있다.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정책’에 대해서도 선진당은 “학생선발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창조한국당은 3불정책 근간 유지, 국립대 공동학위제 등 대학서열화 폐지를 강조하고 있다.

◆정치권 일제히 비판 = 김정훈 한나라당 원내공보부대표는 “오로지 교섭단체를 구성해 상임위원장 자리 등 이익을 취하기 위해 합치는 것은 정치적 편법”이라며 “정치적 선택이나 성향을 무시한 당리당략적 행태로 국민에게 정치적 혼란을 줘서는 안된다”고 맹비난했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은 “명분은 정책연합을 내걸었지만, 교섭단체 구성에 따른 실리 때문에 합친 군색한 연합일 뿐”이라고 깎아내렸다.

신장식 진보신당 대변인은 “정체성이란 원칙을 버리고 취한 실리가 결코 이익이 될 수 없음을 곧 알게 될 것”이라며 “개혁과 진보로 포장해온 창조한국당의 본질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강형구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은 “정체성과 사상이 다른 두 정당이 당리당략을 위해 하나로 합치는 것은 정당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김성훈·민병기기자 taran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