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인물>‘꿈꾸는 미국’ 약속하며 꿈의 레이스 ‘스타트’

미국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28일 밤 콜로라도주 덴버의 미식축구경기장에서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하는 동안 7만5000여 당원들과 대의원, 지지자들은 열광했습니다. 인베스코 미식축구경기장을 가득 채운 청중들이 박수를 치며 함께 발을 구를 때는 경기장이 무너지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미국의 약속’이라는 주제의 연설은 오바마의 부모 얘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4년 전 여러분 앞에서 제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케냐 출신의 제 아버지와 캔자스 출신의 제 어머니는 유복하거나 유명하진 않았지만 아들이 가슴속에 어떤 꿈을 품든 모두 그대로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미국의 약속’ 때문입니다.”

오바마는 하지만 미국의 약속이 지금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고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만 더 적게 벌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집값 폭락을 겪고, (고유가때문에) 자동차를 운전할 수 없을 지경이 되고, 신용카드 대금을 못 내고, 학비를 감당할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은 21세기 미국이 ‘열심히 일하면 모든 꿈을 이룰 수 있는 미국의 약속’을 다시 되살릴 기회입니다.” 오바마는 이날 연설에서 “지금 우리는 결정적 순간을 맞고 있다”며 “나라는 전쟁 중이고 경제는 도탄에 빠지고 ‘미국의 약속’은 또 한번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오바마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은 때마침 미국 흑인인권운동사의 기념비적 인물,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나에겐 꿈이 있어요’ 연설 45주년 되는 날 이뤄져 역사적 의미를 더했습니다. 오바마가 수락연설을 하러 등단하기 직전 그의 가족사와 일대기가 소개되는 동영상을 보면서 문득 역사의 ‘간지(奸智)’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오바마의 흑인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지만, 이날 행사에서 소개됐던 백인 어머니와 2차대전 참전 용사인 백인 조부모에 대한 얘기는 ‘흑인 대통령’에 대한 백인들의 반발심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한 것 같았습니다.

올해 나이 47세인 그의 인생 역정은 ‘미국 정치’의 건강한 면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이날 오바마의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은 16년 전 30세의 나이에 명문 하버드 법과대학원을 졸업한 뒤 뉴욕·워싱턴의 대형 로펌의 거액연봉 자리를 마다하고 시카고의 지역운동가로 돌아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오바마는 하버드 재학 중 법률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역사상 104년 만에 처음 흑인출신 편집장으로 뽑혀 뉴욕타임스에 소개될 만큼 촉망받는 인재였습니다.

부통령 후보로 선출된 조지프 바이든 상원외교위원장도 ‘미국의 약속’을 증언하는 인물입니다. 블루칼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4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의 문을 밟았던 그는 지금까지 36년 동안 상원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바이든은 전당대회 3일째였던 27일 연설에서 고달픈 오늘과 대책 없는 내일을 걱정하는 미국 서민들의 아픔을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일찍 재운 뒤 부부들이 근심을 나누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상원의 중진인 그는 초선 상원의원인 오바마의 대선배입니다. 상임위에서 두 사람은 위원장과 소속위원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그는 까마득한 후배인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잘 모시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았습니다. 연령을 초월할 수 있는 미국의 문화가 새삼 부러웠습니다.

이번 주 미국의 이목이 민주당에 쏠렸다면 다음 주에는 공화당의 차례입니다. 오바마·바이든에게 쏠렸던 관심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곧 발표될 그의 러닝메이트로 넘어갑니다. 오바마·바이든의 공격에 매케인이 어떤 역공을 취할지 주목됩니다. 이미 매케인이 대선후보 간 공개토론을 자주 하자고 제의한 반면 오바마는 소극적인 면모를 보여온 것을 감안하면 매케인의 반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민주·공화당의 건곤일척은 이제 시작입니다.

덴버 = 최형두특파원 choih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