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살핀 제국주의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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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발표된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는 일반에게 ‘반전영화’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미 코넬대 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디어 헌터’ 등 1970년대 말 이후 제작된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들은 한결같이 제국주의의 숨겨진 무기에 불과했다. 우리와 다를 것 없는 너무나 인간적인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우리도 또한 피해자’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주인공들이 비서양인에게 공격당하는 모습을 연출해 서양으로 대표되는 미국이 비서양 세계에 행사한 폭력의 역사를 부인하는 한편, 자신들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남고자 하는 바람의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역사’ 그 자체를 해체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저자는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된 책에서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제국주의 식민지 질서를 미국과 일본, 한국 등지에서 제작된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인종주의는 있을지언정 민족적인 동일성을 묻지 않는다고 선전해온 미국의 국가 프로파간다가 얼마나 허구인지, 아시아의 백인인 일본인이 패전 이후 미국의 괴뢰로서 어떻게 우익으로 살아왔는지를 파헤친다.

일본의 우경화가 정치권에서 표면화된 것은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미 행정부와의 동맹 이후. 1985년 이치카와 곤(市川崑) 감독이 발표한 영화 ‘버마의 하프’는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고유의 국가상징을 강화하면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공고화했던 일본 정부와 우익세력의 아시아에서의 우월의식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이 영화에는 일본인을 너무 좋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원주민 행상 노파가 등장한다. 저자는 이 같은 원주민 행상 노파를 통해 비로소 자존심을 위로받고 또 인정받는 일본군을 통해서 아시아의 백인으로서 일본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처럼 아시아의 피지배자들을 ‘야만’과 ‘미개’의 시각에서 일관되게 바라봐온 일본도 미국 앞에선 한없이 작은 존재였다. 저자는 패전 뒤 일왕 히로히토(裕仁)가 전쟁 책임을 면책받는 데 미국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음을 지적한 뒤 이 점에서 미국과 일본이 공범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지나의 밤’과 ‘나는 전쟁미망인’, ‘늑대와 함께 춤을’, ‘냉정과 열정 사이’ 등 인종을 초월한 연애관계를 다룬 영화들에서 식민지 권력관계의 수립을 읽어낸 저자는 1999년 이창동 감독이 발표한 ‘박하사탕’이 새로운 국가주권의 존재방식을 예시한 영화라고 주장한다. ‘박하사탕’에서 동포를 지키기 위해 국가에 봉사하는 징병의무가 내전에서는 결국 동포에 대한 배반으로 끝나고 만다. 국민국가라 해도 국가와 국민은 하이픈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모순관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20세기 후반 동아시아를 필두로, 전 세계에서 광범위한 현상으로 대두된 국민주의가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지배하는 공상을 조작한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와 다름없다고 역설한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