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대만 수백년 쌓인 갈등 풀자”

동아시아의 역사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동아시아사 연구자포럼’이 출범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용덕)은 5, 6일 이틀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동아시아의 지식교류와 역사기억’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한다.

한·중·일을 비롯, 대만·홍콩 학자 29명이 발표를 하고, 모두 8개의 패널에서 16명의 학자들이 참가해 활발한 토론을 벌이게 되는 이번 학술회의를 계기로 ‘동아시아사 연구자포럼’이 출범하는 것.

‘연구자포럼’은 지난해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한 ‘중심과 주변에서 본 동아시아’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준비위원회를 결성, 이번에 결실을 맺게 됐다. 동아시아 역사갈등 해결을 위한 학자들 간의 긴밀한 협조와 공동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연구자포럼’은 약 10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는 운영위원회와 사무국으로 나눠져 운영될 예정이다. 역사 연구를 위한 민간협력 강화를 비롯 ▲국제학술대회 개최 ▲자체 뉴스레터 발행 및 단행본 발간 ▲신진연구자들과의 교류 촉진 등을 통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동아시아사 문제를 풀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준비위원을 맡고 있는 백영서 연세대 교수는 “동북아에서 첨예한 역사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국 학자들이 만나서 갈등을 풀어보자는 것이 포럼에 참가하는 4개국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국제학술회의에선 이태진 서울대 교수가 ‘한·중·일 3국의 상호인식의 과거와 미래-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회상하며’라는 주제로 기조강연한다. 또 후펑(胡澎) 중국사회과학원 교수가 ‘젠더의 시각에서 본 동아시아 위안부 문제’를, 미야자와 히로시(宮嶋博史) 성균관대 교수가 ‘근세 일본의 조선 인식-임진왜란의 기억을 중심으로’에 대해 발표한다.

이중 제2세션 ‘새로운 동아시아사 역사서술의 가능성’에선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가 ‘동아시아사 교육을 위한 성찰’이라는 주제로 동아시아사를 바라보는 기존 시각의 문제점과 향후 동아시아사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김 교수의 발표문 요지를 소개한다.

◆동아시아사 교과목의 탄생 = 한국 고등학생은 2012년부터 선택과목으로 ‘동아시아사’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한국사학계에서는 동아시아사가 결국 친일·친중 노선을 취할 것이라 우려하고, 서양사학계에서는 세계사 외에 동양사 과목이 하나 더 있다고 그 편중을 비판한다. 동양사학계에서는 한국에서 동아시아사가 학문적으로 아직 정립되지 않은 점을 지적한다. 동아시아사가 현실적 필요에서 등장한 과목은 분명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이미 그와 같은 사례가 있었다. 한국의 경우, 해방 직후 사용된 중학교 1학년 동양사 교과서인 ‘이웃나라의 생활:역사’에서 동아시아사 교육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화이(華夷)의식과 오리엔탈리즘 = 화이사상과 오리엔탈리즘의 공존이 우리 역사교육의 현주소다. 전(前)근대사의 경우 중국을 한족의 중화와 오랑캐의 북방민족으로 가르고, 일본 역시 오랑캐이며 우리만은 소(小)중화라는 화이의식에 근거해 가르치고 있다. 근현대사에서는 화이의식을 정확히 오리엔탈리즘이 대신한다. 화이사상과 오리엔탈리즘은 모두 문명화 논리다.

교과서의 선진문화 이동 통로는 조선후기까지 일관되게 중국→한국→일본이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그 경로가 다소 모호해진다. 일본이 서구 근대화에 가장 먼저 성공했다는 사실 이외에는 중국과 한국이 직수입했는지, 아니면 중개상이 있었는지 설명이 없다. 서구화가 아니라 일본화라고 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근대에는 중국이 중화이고, 근대는 서구가 중화다. 이것이 우리가 세계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이다. 사회진화론적 시각에서 강자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화이사상이 오리엔탈리즘과 결합하면서 사대의 주체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선린 지향의 동아시아사 = 동아시아사는 선린의식을 지향한다. 기존 역사교육, 특히 한국사 교육이 화이의식과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 우리와 이웃의 관계를 선린의 관점에서 서술해야 한다.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의 역사상은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대부분 한반도에서 생산된 사료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웃나라 역사서에는 ‘타자로서 보는 우리’에 대한 언급이 많다. 우리가 보는 우리와 함께, 이웃이 보는 우리를 함께 버무려야 제대로 된 우리의 과거 궤적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사는 이웃과 함께 했던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며 오늘을 생각하고 나아가 선린의 미래를 건설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