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盧측근 게이트>‘뇌관’ 정대근의 입

세종증권 인수와 휴켐스 매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정대근 전 농협회장의 ‘입’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세종측으로부터 50억원, 박연차 회장측으로부터 20억원을 받은 정 전 회장이 이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에 따라 검찰 수사의 방향과 강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전 회장이 현대차로부터 3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데다 추가로 거액의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나면서 크게 압박감을 느끼는 정 전 회장이 ‘입’을 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검찰 안팎의 관측이다. 3억원 때문에 5년형을 선고받은 정 전 회장이 70억원의 뇌물수수가 추가로 확정되면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는게 법원 안팎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정 전 회장이 뇌물의 사용처를 자세하게 밝힐 가능성이 있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으며, 이 경우 불똥이 정·관계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정 전회장의 좋지 않은 건강상태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정 전 회장의 변호인측은 “정 전 회장이 천식과 당뇨를 앓고 있어 매일 진행되는 검찰 조사를 힘들어 한다”고 밝혔다. 수사팀도 “정 전 회장이 조사에 잘 협조하고 있고 서서히 입을 열고 있다”고 밝혀 정 전 회장이 받은 뇌물 사용처에 대한 조사가 빨라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 전 회장의 뇌물 액수는 홍기옥 세종캐피탈 사장으로부터 2005년 12월과 2006년 2월 두차례에 걸쳐 나눠 받은 50억원이다. 휴켐스 매각과 관련해 2006년 1월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은 20억원은 결국 박 회장에게 다시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 돈 거래가 휴켐스를 박 회장에게 헐값으로 매각하는 대가였다면 뇌물 액수는 그만큼 더 늘어난다. 검찰은 홍 사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지 불과 3개월 만에 정 전 회장이 현대차 뇌물 사건으로 구속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 전 회장이 구속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로비 자금으로 이 돈의 일부를 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6년 5월 구속된 정 전 회장을 당시 여권 인사들이 자주 면회왔다는 점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검찰도 정 전 회장이 구속수감됐던 서울구치소 면회기록을 넘겨받아 분석하고 있다.

또 평소 정치인과 폭넓게 교류하며 정계 진출을 원했던 정 전 회장이 농협 회장을 그만둔 후 정계로 나가기 위해 이 돈을 사용하려 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50억원을 받은 직후 구속됐기 때문에 돈을 쓸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을 뿐 정 전 회장의 ‘관리대상’인 정치인들에게 일부가 건너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백기기자 bki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