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치우러 갔다가 ‘참 좋다’ 넋 놓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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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에서 태백을 거쳐 삼척으로 향하는 424번 국도. 낙엽송 눈꽃이 화려하게 피어난 능선을 넘어가는 오두재 고갯길에서 강원도도로관리사업소 태백지소 소속의 신재억(57)씨를 만났다. 1t짜리 사륜구동 포터 트럭을 몰고 도로 상태를 점검하러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태백시 하장면에서 나고 자랐다는 신씨는 지금껏 단 한번도 태백 땅을 떠나본 적이 없다. 겨우내 산간마을에 쏟아지는 폭설은, 그래서 그에게는 무덤덤한 일상일 뿐이다. 아니 폭설은 곧 고된 노동을 예고하는 것일 테니 지긋지긋할 법도 하겠다. 그가 제설작업 일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14년째. 오두재의 제설작업을 맡은 그는 눈발이 흩날리면 늦은 밤이건, 새벽이건 달려 나와야 한다.

그러나 그는 “어떤 때는 새벽에 눈 내린 풍경을 보면서 ‘아, 참 좋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어쩌다 찾아든 외지 사람들이 이 고갯길의 설경을 보면서 감탄을 하면 자신이 눈을 내리기라도 한 양 뿌듯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2~3년 전쯤 전남 순천에서 올라온 스무대가 넘는 관광버스가 무리하게 고갯길에 진입하다 눈에 갇혀 오도 가도 못 하게 된 적이 있었다. 이때 신씨는 갖은 고생을 하며 제설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승객들은 눈벌판을 뛰어다니며 환호성을 지르고 눈싸움을 했단다.

“처음에는 ‘누구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는데…’ 하는 생각에 슬며시 화가 나기도 했는데, 너무들 좋아하니 나도 덩달아서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신씨는 일대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만항재를 꼽았다. 하지만 안개와 바람 때문에 설경은 다른 곳만 못하단다. 그는 아름다운 설경으로 424번 지방도가 태백시 하장면을 거쳐 삼척시 미로면으로 이어지는 구간인 댓재를 최고로 들며 ‘꼭 가보라’고 했다. “왜 달력 사진 같은 풍경 있잖아요. 거기 풍경이 꼭 그래요.”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