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길’을 묻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2008년이 저물어갑니다. 벅찬 희망과 기대로 출발했지만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과 실망으로 점철됐던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밝힌 책들이 있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비춰주었습니다. 이 빛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용기를 잃지 말라고, 역사에서 항상 난관은 있었다고, 위기가 곧 기회라고 말합니다.

또한 문제 속에 해답이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꼼꼼히 되돌아보면 그 속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는 이정표가 숨어 있음을 책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꼽은 10권의 책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와 경제, 과학과 인문서적에서 우리는 또다른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분주한 연말연시에 차분히 이 책들에서 ‘길’을 발견해 보는 것이 어떨는지요. 사상 유례없는 불황 속에서도 꿋꿋이 양서를 펴내는데 진력을 다한 출판인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문화부

1. 역대 제국들의 힘은 ‘多元 + 관용’
제국의 미래 / 에이미 추아 지음, 이순희 옮김 / 비아북

역사상 존재했던 세계 초강대국들은 하나같이 ‘다원적’이고 ‘관용적’인 나라들이었다는 게 책의 핵심이다. 예일대 법대 교수인 저자가 펼쳐놓은 세계 제국의 역사는 그 어떤 역사책 못지않게 흥미진진하기 그지없다. ‘관용의 정신’을 축으로,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제국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꿰뚫고 있다.

저자가 꼽는 제국은 단순히 강대국 수준이 아니다. 그 나라의 권력이 동시대 경쟁국들의 권력을 분명히 능가해야 하고, 지구상의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경제력 혹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단순히 특정 지역에서의 우위라는 테두리를 넘어 지구상의 방대한 구역과 인구에 대해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한 제국들은 한결같이 인종, 종교, 배경을 따지지 않고 능력과 지혜를 갖춘 인재들을 끌어들였다고 저자는 누누이 강조한다.

향후 세계를 제패할 제국으로 중국·유럽연합·인도를 꼽은 저자는 이들의 한계 또한 지적한다. 오늘날 가장 매혹적인 투자국이면서 수십 개의 언어와 수천 개의 종교가 동등하게 존중받는 인도가 향후 제국으로 성장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 ‘新자유주의 신화’ 신랄하게 비판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 부키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저서로 널리 알려진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아일린 그레이블 덴버대 교수와 함께 내놓은 새 저작. 이 책 1부에서 장 교수는 기존에 펼쳤던 자신의 논리를 보다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신화’를 여섯가지로 요약, 이의 내용과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바탕으로 신화를 ‘기각’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적 정책 권고가 실패했으며, 개발도상국에서 때로는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이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무역과 산업, 민영화와 지적재산권, 국제 민간 자본 흐름, 국내 금융 규제, 거시 경제 정책과 제도들 등의 폭넓은 사안에 대해 저자들은 세세하게 대안을 제시한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민영화와 관련된 부분이다. 저자들은 ‘국영 기업은 만성적인 비효율, 낭비, 부실 경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실증 자료를 보면 국영 기업이 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3. 폭력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서 태어난 홉스봄은 나치를 겪었고, 대공황에 고아가 됐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케임브리지를 졸업, 미국 스탠퍼드, 매사추세츠공대(MIT) 등에서 역사를 가르친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역사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2000년부터 2006년 사이의 발표한 논문과 강연 등을 모은 이 책에서 홉스봄은 넓고 긴 안목으로 세계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테러리즘을 조망했다.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저서가 될지 모르는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을 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날 것을 간곡히 요구하고 있다.

홉스봄은 20세기가 물질적으로, 기술적으로 인류의 발전이 전례없이 확대됐으나 유사이래 가장 피비린내 나는 시기라고 규정했다. 직·간접적인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1억8700만명에 이르며 1914년부터 1945년까지는 ‘30년전쟁’으로 봐도 무방하고, “실제 전투뿐 아니라 전투를 감행할 의지가 충분히 고지된 시기”가 전쟁이라고 했을 때 40여년 동안의 ‘냉전’이 이어졌으며, 1990년대 이후 유럽, 아프리카, 서부 및 중부 아시아에서 무력충돌이 점철됐다고 진단했다.

4. 뇌-생각의 출현 / 박문호 지음 / 휴머니스트테러·폭력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통섭’을 시도한 저자의 시도는 야심차다. 방대한 뇌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생물학, 입자물리학, 양자철학은 물론 다마지오, 에덜만 등 신경철학자들의 사유까지 끌어온다. 책은 우주와 생명의 탄생에서 시작해 뇌의 진화과정에서 감정, 생각, 창의력 등이 어떻게 출현하게 됐는지를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우리의 뇌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뉜다. 앞은 운동, 뒤는 감각, 가운데가 기억이다. 감각, 운동, 기억은 생명 현상을 떠받치는 세 개의 받침대다. 저자는 뇌의 본질적 기능이 환경에 적응하는 운동의 생성이라고 믿는다. 뇌의 시스템이 어떤 패턴을 만드는가에 따라 우리의 운명도 결정된다.

저자는 의식 구조의 바탕을 이루는 입자물리학의 세계도 들여다본다. 물리학처럼 사람의 생각도 대칭과 대칭의 붕괴를 일으키며 계속 움직여간다는 것이다. 대칭의 붕괴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 학습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지식의 수준을 높이고 질문을 품고, 성장시켜야 한다”며 “임계치를 넘어서면 양은 질로 바뀐다. 그 임계치를 책으로 치면 2000권 정도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5. 우주·유전자 신비 분석 ‘과학 예찬’
무지개를 풀며 / 리처드 도킨스 지음, 최재천·김산하 옮김 / 바다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친절하게 안내하는 과학교양서. 저자는 과학에 쏟아지는 온갖 비난과 오해를 일일이 반박하며, 과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야말로 사람이 헛된 신비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도 우주만물의 경이에 대해 상상력을 갖게 하는 추동력이 될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책은, 우선 ‘우리가 지구에 살게 된 엄청난 우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너무나 익숙해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이 광활한 우주, 그리고 숫자로 헤아리기 힘든 어마어마한 시간 속에서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이곳 지구에서 살게 됐다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놀라움을 알게 된 것 역시 과학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며, 과학 덕분에 우리는 우주의 엄청난 크기와 지구의 나이를 비롯한 우주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게 됐다고 도킨스는 지적한다.

또 도킨스는 사람들이 불가사의한 존재와 미신에 빠져드는 이유를 특유의 논리적 전개와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파헤친다. 저자는 이 밖에도 유전자는 ‘이기적’ 본성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다른 유전자와 협조를 한다는 주장을 소개하고 있다.

6. 가공식품의 시대… 뭘 먹어야 할까
잡식동물의 딜레마 /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책은 잡식동물로서의 인간이 갖고 있는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을 파고든다. 수십, 수백만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인간은 먹을거리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냈다.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원시인들은 들판에 돋아난 수많은 풀들과 나뭇잎, 열매 중에 먹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놓고 골머리를 싸맸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식물의 독성으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다시 한번 잡식동물의 딜레마에 빠져 버렸다. 화학비료의 개발과 이에 힘입은 농산물의 대량생산, 숱한 가공식품, 패스트푸드와 유전자 조작식품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는 대형마트 식품매장의 진열대 위에서 무엇을 집을 것인지 망설이게 됐다.

저자는 이 같은 딜레마를 직접 몸으로 추적한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식사를 지탱하는 세 가지 음식사슬의 처음과 끝을 보여준다. 산업적 음식사슬, 전원적 음식사슬, 수렵·채집 음식사슬 등이다. 저자가 직접 몸으로 부닥치는 체험들을 따라가다보면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7. “석유·가스를 확보하라” 자원전쟁
자원전쟁 / 에리히 폴라트 외 지음, 김태희 옮김 / 영림카디널

석유를 비롯한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구리 아연 등 각종 천연자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세계의 각축전을 다루고 있다. 독일의 저명 시사지 ‘슈피겔’의 기자들로 이뤄진 필진은 세계 각국의 동향을 면밀히 분석하며, 새로운 ‘냉전’이 시작됐다고 결론내린다. 바로 ‘자원전쟁’이다.

우선 1부 ‘자원분쟁’에서는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어떻게 국가간 세력판도를 변화시킬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2부 ‘자원과 소비’에서는 세계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자원의 생산에 대해 살펴보고 있으며, 3부 ‘자원 생산자들’에선 천연자원 생산의 최대 수혜자인 호주를 비롯,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움켜쥐고 있는 러시아 등의 모습을 생생한 현장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다.

4부 ‘금속과 광석’에서는 기록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는 소수의 거대 자원생산 기업과 자원에 대한 투자의 최신 동향을 살펴보고 있다. 5부 ‘자원과 자연’에선 설탕과 커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세계적 갈등과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물 자원에 대해 분석한다. 마지막 6부 ‘미래의 에너지들’에선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원들을 소개하고 있다.

8. ‘그린에너지’가 세계경제 지배한다
코드 그린-뜨겁고 평평하고… / 토머스 프리드먼 지음, 최정임 외 옮김 / 21세기북스

에너지와 기후야말로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저자는 되풀이해 강조한다. 아울러 생물다양성의 급격한 감소는 단순히 자연 보전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모든 것이 연관돼 있는 지구생태계에서 한 종의 멸종은 그 자체를 뛰어넘어 다른 종의 생존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 같은 환경 문제들은 곧 에너지산업의 문제점과 직결된다. 저자는 일단 오늘날 지구촌경제에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역설한다. 에너지 빈곤의 결과는 과거에 비해 훨씬 가혹하고 파괴적이기 때문에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코드 그린’, 즉 청정에너지 혁명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저자는 “청정에너지 기술을 개발해 가장 효과적으로 배치하는 국가, 사회단체, 기업이 미래의 세계 경제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저자는 아주 구체적으로 청정에너지 혁명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를 그려 보인다. 아울러 에너지 혁신을 위한 생태 시스템 구축을 역설한다.

9. 씨줄·날줄처럼 엮은 동·서양사
역사-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남경태 지음 / 들녘

선사시대부터 한국의 외환위기(IMF 사태)에 이르기까지 무려 수천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책 한 권에, 그것도 동·서양을 넘나들며 수천년의 역사를 담는다는 것이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그러나 저자는 이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650여 장에 이르는 책에서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다. 마치 벼리에 꿰인 그물을 건져올리듯이 일관된 논지를 따라 세계사를 펼쳐 보인다. 거기에 한반도의 역사를 연관시키는 자상함도 빼놓지 않았다.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논지는 인류 문명이 중국·한국·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양 문명과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한 서양 문명으로 나뉜다는 것. 동양 문명은 통일 지향적이었던 데 비해 서양 문명은 분열·분산 지향적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서양 문명이 승리했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 문명으로 나아가고 있는 오늘날 서양 문명의 승리는 확실하며, 동양 문명은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역사란 연속과 단속, 연장과 단절, 우연과 필연, 차이와 반복이 중첩되는 현장”이라며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연속이고 어느 것이 단속인지를 파악하는 일이다”고 말한다.

10. 경제 흔드는 소수와 추악한 자본
쇼크 독트린 /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 살림

위기를 조장해 경제적(아울러 정신적) 충격을 주고 ‘얼떨떨해진’ 국가와 국민들에게 시장만능정책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고발서다. 다시 말해, 일부 계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다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이를 한마디로 ‘쇼크 독트린’으로 규정한다.

저자는 오늘날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드는 소수와 그들을 둘러싼 ‘부의 거품’ 내에서 흐르는 급격한 자본의 순환을 보여준다. 민영화와 자유시장, 규제 완화로 대변되는 이 시스템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폭로한다. 철저하게 계획된 ‘쇼크 독트린’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꿨는지 실감나게 펼쳐 보인다. 책을 통해 1973년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일으킨 쿠데타부터 1989년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건, 1991년 구소련 붕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3년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급변하는 현대사의 이면에 국제 금융자본의 어떤 욕망이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저자는 ‘시장의 잔인성’을 컨트롤할 수 있는 국가의 적극적 규제와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