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끝없는 위작논란 박수근그림…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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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위작 논란이 제기됐던 박수근의 그림. 위 첫번째는 연초 법정을 통해 재감정이 이뤄지는 경매가 45억2000만원대의 박수근 작 유화 ‘빨래터’이며, 위 두번째는 지난해 12월 또 한차례 위작 의혹을 불러일으컸던 ‘떡 만드시는 어머니’. 문화일보 자료사진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액 45억2000만원을 기록한 박수근 작 ‘빨래터’가 지난 한해 동안의 열띤 위작 논란 끝에 올초 법정을 통해 재감정이 이뤄진다. 또 지난해 12월 한 미술품중개인이 연세의료원에 기증한 박수근의 또 다른 그림 ‘떡 만드시는 어머니’에 대한 위작 의혹이 제기되는 등 박수근 작품 위작 논란이 미술가의 뉴스를 너머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술의 저변이 확대되는 한편 투자 대상으로 미술의 효용이 강조되면서 미술품컬렉션에 관심을 갖는 애호가층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박수근의 작품에 집중되는 미술품 위작 논란을 10문10답으로 정리해본다.


1. 박수근 그림 왜 위작이 많은가

위작은 예부터 줄곧 존재해왔다. 패션상품도 세계적 명품이라면 고가의 짝퉁까지 비밀리에 거래가 이뤄지듯, 위작 미술품도 화랑가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와 작품에 집중된다. 신작이 나올 수 없는 유명 작고 작가의 경우 짝퉁이 성행할 여지가 많다. 특히 박수근은 국내외 경매에서 1점당 수억~수십억원대에 거래가 이뤄지는 ‘국민화가’인 만큼 가짜그림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박수근 작품은 작품의 색깔이 워낙 독특해 위작 판별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2. 유독 미술시장에 자주 드러나는데

박수근은 미술작가로는 이례적으로 박완서 작 소설 ‘나목(裸木)’의 실제 모델로도 일반인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인물이다. 소설에서 한국전쟁 후 미군PX에서 미군 초상화를 그리는 주인공이 바로 박수근이다. 투박한 질감의 황토색 화폭 위에 펼친 박수근의 아이 업은 여인, 노점상 그림은 1950년대 후반, 1960년 초중반 당시 반도화랑 등에서 내국인보다 미군 등 외국인들에게 한국적 미감의 기념품으로 잘 팔렸다. 또 다른 ‘국민화가’ 이중섭의 작품이 국내 컬렉터들의 애장품으로 좀처럼 미술시장에 나오지 않았던 반면, 외국인컬렉터들이 미국 등 해외로 가져갔던 박수근 그림은 국내외 미술품 경매를 통해 지속적으로 거래가 이뤄지면서 그림값 상승을 주도했다.

3. 박수근 그림 인기 이유는

박수근은 해방과 전쟁이라는 격동기 근대사를 온몸으로 겪었던 근대기 화가 중에서 특히 당대의 시대상과 순박한 서민의 일상과 정서를 그림으로 담아냈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뒤 독창적인 화풍으로 향토적인 이미지를 화폭에 담아낸 그의 작품은 작가 생전에는 크게 평가받지 못했다. 박수근이 즐겨 그리던 아이 업은 여인과 어린이, 거리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남녀 등의 이미지는 결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어려운 시절의 풍경이었지만 세월과 더불어 그의 작품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한국적 미감이 강조되고 후대사람들 사이에 그때 그 시절의 향수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면서 박수근의 그림이 근대의 대표작으로 미술사적 재평가가 이뤄졌다. 생전엔 그림 한점 팔지 못했던 고흐가 사후 불우한 천재화가로 미술시장에서도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졌듯, 대형 캔버스를 구하기 어려워 소품 위주로 작업했던 박수근 역시 불우한 화가로서 작가의 인생과 더불어 작품까지 부상했다. 근래 미술품 아트페어 등을 통해 미술작가로 활동 중인 박수근의 아들과 딸의 작품도 박수근 그림을 연상시키는 친근한 이미지로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4. 어떻게 거래돼왔나

신작이 나올 수 없는 작고작가인데다가 박수근의 유작 중 유화가 300~400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박수근은 1990년대 이후 줄곧 국내 미술시장에서 작품값 최상위 작가였다. 박수근 그림은 각종 미술관은 물론 초보컬렉터들도 꼭 소장하고 싶어하는 수집 대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대 중반들어 미술품이 재테크수단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박수근 그림은 미술품 경매에서 최고 기록을 경신해왔다. 2000년대 초반만해도 작품값이 수억원대였으나 2006년말 ‘노상’이 10억원을 넘어섰고, 이후 ‘농악’이 20억원, ‘시장의 여인들’이 2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007년 봄 서울옥션 경매에선 위작 논란에 휩싸인 ‘빨래터’가 45억2000만원이라는 국내 경매사상 최고액에 낙찰됐다.

5. 위작 논란 잦은 이유는

위작 문제는 새삼스러운 오늘의 특이현상은 아니다. 동서고금에 걸쳐 진품, 명품과 더불어 위작이 유통돼왔다. 특히 국내 미술시장이 급성장하고 수십억원대의 고가품이 등장하면서 미술품과 진위 논란에 세인이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미술품이 ‘돈되는 투자 명품’으로 부상하고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짜의 유통도 도드라졌다. 신흥미술시장으로 급부상한 러시아에선 2004년 네덜란드화가의 작품이 러시아화가 작품으로 변조돼 소더비 경매서 고액에 거래됐다. 위조작 중 하나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무실에 걸려 있다가 다른 경매장에서 똑같은 그림을 본 애호가에 의해 가짜로 밝혀지기도 했다.

6. ‘짝퉁 미술품’은 어느 정도

위작의 수법이 치밀화, 전문화하면서 작가 당사자가 판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짜 같은 가짜도 적지않다. 과거 위작이 원작을 베끼는 초보적 수준이었다면 요즘은 컴퓨터와 카메라를 활용하는 등 원작의 재현이 훨씬 정밀해졌다. 원화 위에 종이를 얹어 비치는 선을 그대로 본떠 그리거나, 한지를 정교하게 앞뒤 두쪽으로 분리한 뒤 똑같은 그림을 복수로 제작하거나, 원화 속 이미지의 크기와 위치를 바꾸거나 믹스 앤드 매치시킨 가짜신작도 가능하다. 자신의 위작을 접한 원로화가가 “내 그림보다 잘 그렸다”고 놀라워했다거나, 20세기 서양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는 마음에 들게 그린 위작에 사인을 해주겠다고 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20세기 후반 영국 대영박물관이 중국 문화재수집가로부터 사들인 중국 고문서 600여점이 수집가와 정부관리 등의 공모에 의한 위작으로 드러나는 등 세계 유명 박물관 미술관의 소장품 역시 위작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7. 미술품 진위 판정이 힘든가

특A급 위작미술품은 작가마저 놀랄 정도로 솜씨가 뛰어나 전문가도 감정이 수월할 리 없다. 미술관 박물관에서 숱한 고미술을 접한 감정전문가 중에는 외부의 감정 자문에 대해 노코멘트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관계자들 사이에선 “가짜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진품이라고 확실한 표현을 하지 않을 경우” 위작으로 통용된다. 작고작가의 작품은 유족들의 의견이 중시되지만, 2년 전 이중섭 위작 사건때 작가 아들이 진품이라고 주장한 작품조차 가짜로 판명된 사례에서 드러나듯 가족의 판정을 전적으로 믿기 어려운 실정이다. 감정의 달인들은 작품을 척 보면 한눈에 진위의 느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고 말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위작 시비와 논란의 사례에서 보듯이 100% 완벽한 객관적인 감정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8. 미술품 진위 누가 판정하나

감정은 현장서 미술품을 직접 접해본 미술인들이 맡는다. 미술관 박물관의 학예사와 미술사학자를 비롯, 작품을 많이 다뤄본 화상, 표구상 및 작고작가일 경우 유족들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감정은 이론을 통한 학습보다 오랜 현장체험이 중시된다. 감정 전문가 중 화상의 비중이 높긴 하지만, 국내외에서 위작의 유통에 화상들이 관련된 사례가 드러나고 있어 자격 논란이 제기되기도 한다. 위작술이 발전하면서 작품의 도상뿐 아니라 물감과 화구 같은 재료의 분석 등 과학감정 전문가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박수근 ‘빨래터’‘떡 만드시는 어머니’가 위작이라고 주장해온 최명윤씨는 국내 미술품과학감정의 전위적 인물이다.

9. 위작 가려내는 절차와 방법은

미술품 감정은 안목감정, 자료감정, 과학감정의 세 단계를 거친다. 안목감정은 화법, 서명 등 해당작품의 특징을 살피는 과정. 대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기록들을 참고하는 자료감정이 동시에 이뤄진다. 자료감정의 근거는 소장처, 소장경로 및 전시회 도록 외에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각종 자료들이다. 안목-자료감정에서 붓터치 같은 기법, 서명의 형태에서 위작의 90% 정도가 걸러진다. 진위 판별이 미묘할 경우, 탄소연대측정기, X선촬영기, 적외선 및 특수DVD촬영기 등 기재를 사용하는 과학감정이 병행된다. 과학감정이 발달하는 반면, 위작 제조술도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당대의 재료를 활용한 위작은 오히려 판별하기 어렵다든지 추정된 제작연도의 오차 등 과학감정에도 허점은 남아있다. 그런 점에서 과학감정은 아직 감정의 보조수단으로 통한다.

10. 미술품 구입시 진품 사려면

최근 박수근의 위작 논란이 대형 미술품경매회사의 경매를 계기로 부각됐지만, 대형미술품경매회사 외에도 공인 화랑, 대형아트페어에서 구입하면 만약의 경우 문제 제기 및 환불 등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작품 구입 때 유통경로가 투명한 곳에서 전문가 감정서와 거래증명서 외에 소장 경위, 전시 경력, 작품 수록처 등을 확보해두는 것이 안전하다. 지난해 12월 위작 의혹이 제기된 박수근의 ‘떡 만드시는 어머니’의 경우 기증작의 사전 감정 절차를 무시한 채 서둘러 기증식을 치른 연세의료원측의 절차상 부주의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