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대산 정상 비로봉에서 바라본 적멸보궁. 사진 중간 아래 부분에 손톱만하게 적멸보궁이 보인다. 붓다의 정골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은 여의주를 희롱하는 용의 형상 중에 정수리 부분에 해당한다는 길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적멸보궁에서 참배객들이 기원을 드리고 있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어느 곳에 붓다의 사리가 봉안돼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이 신비감을 더한다.
풍수에도 조예가 깊은 선도(仙道)의 사범에게 “오대산 위로는 산이 날카로워 편하지가 않다. 수행하기에도 오대산 위는 아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인 김지하는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에 대해 ‘며칠 묵으면서 보니까, 그렇게 감싸주기만 하는 산은 아니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고, 설악산은 ‘산에 감정이 없더라’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모두 오대산과 비교하기 위해 했던 얘기들이다.
후덕함과 온유함은 오대산의 타고난 모습이다. 덩치는 크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화려하지 않지만 푸근한 산. 그래서 오대산을 좀 심심하다거나 만만하게 보는 이들도 있는데, 세상살이를 어느 정도 겪은 사람만이 오대산의 참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도 한다. 그곳에 적멸보궁을 모셨다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선 초 많은 살붙이들까지 목숨을 빼앗은 태종과 세조도 감싸안은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산이 오대산이다.
2월말 주말에 강원 평창군 진부면 월정사 쪽으로 오대산(五臺山·1563m)을 찾았다. 봄철 산불예방 입산통제(2일∼4월30일까지) 직전이었다. 월정사 앞 오대천은 두꺼운 얼음장이 풀리고 겨울가뭄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크고 깊은 여러 산에서 물길이 모이는 탓일 것이다. 오대산은 산을 관통하는 지방도 446호선(이달 폐쇄됐다)과 그 도로를 따라 난 상원사 계곡과 오대천을 사이에 두고 주봉인 비로봉, 호령봉(1561m), 상왕봉(1491m), 두로봉(1421.9m), 동대산(1433.5m) 등이 ‘∩’모양을 그리며 이어져 있다.
이달초에 한강의 발원지라는 태백시 금대봉의 검룡소가 오랜 가뭄으로 말라버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세종실록 ‘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한강의 발원지가 오대산 서대 염불암 부근의 우통수(于筒水)였으며 몇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후 실측을 통해 검룡소가 한강의 수원(水源)으로 부각됐다. 이를 두고 역사성을 무시했다느니, 직선거리로는 우통수가 더 길다느니 논란도 있었다. 이날 산행 전에 만난 월정사 법장스님은 “이 가뭄에도 우통수는 물이 마르지 않으니 여기가 진짜 한강의 발원지가 아니냐”고 말한다.
예전에 오대산의 상원사∼적멸보궁∼비로봉 코스는 월정사 일주문에서 시작한 듯한데, 요즘은 상원사 코앞 넓은 주차장에까지 차량이 들다보니 여기가 들입목이 됐다. 빨라지고 편해진 만큼 서운하기도 하다. 오대천과 그 주변의 다양한 식생을 감상하며 상원사까지 가던 옛 오대천길이 얼마나 좋았던가. 이제는 가더라도 차량을 줄곧 피해야 하는 도로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상원사도 예전 촌색시 같은 모습은 간데 없고 짙은 화장을 한 도시처자 같다. 이번에 가서 처음엔 여기가 상원사인가 의심했다. 그전보다 새 건물들이 늘었고 주변을 시멘트와 돌로 꾸민데다 단청도 기름져서 영 낯이 설다. 유지보수는 불가피하지만 옛 느낌을 살리면서 하기는 참 어려운 모양이다.
6·25전쟁 때 오대산에서 불타지 않은 유일한 절인 상원사에는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보물 제140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조선시대 세조와 관련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익히 아실 테고. 상원사를 둘러보고 나면 바로 왼편에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상원사에서 중대사자암을 거쳐 적멸보궁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린다. 좀 가파르긴 해도 길이 잘 정비돼 있어 오르기 어렵진 않다. 불공을 드리러 쉬엄쉬엄 오르는 할머니들이 많이 있다.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봉안한 오대산 적멸보궁은 5대 적멸보궁(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영취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중 하나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얻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했다는 불교 성지다. 다른 적멸보궁은 불사리가 어디에 안치됐는지 분명한데 오대산 적멸보궁은 알 수가 없어 더 신비감을 준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음택(陰宅·묏자리)중 최고의 자리로 꼽혔으니 여기에 진신사리를 모셨을 것이다. 비로봉이 흘러내린 가파른 능선 위에, 어떻게 이런 자리가 있을까 싶은 좁지도 넓지도 않은 곳에 편안히 위치한 적멸보궁은 그 앞에 서기만 해도 뭔가 성성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 일대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으로 적멸보궁은 용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위치라고 전한다.
적멸보궁에는 예전에는 못보던 안내소가 하나 옆에 지어져 있다. 안내소에서는 불공을 드리러 온 이들이 가져온 시루떡을 쌓아놓고 누구나 먹을 만큼 가져가게 했는데, 시장하던 차에 떡이 입에서 녹는다.
이날 올라보니 적멸보궁부터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아 아이젠이 필요할 정도였다. 이곳에서 비로봉까지는 50분 정도 걸리는데 몹시 가파르다. 중간중간에 나무계단을 설치해 놓아 그다지 힘들진 않다.
정상에 오르니 탁트인 전망이 가슴속까지 후련하게 한다. 전에 왔을 때는 정상에 돌무덤이 있고 정상석을 돌무덤이 감싸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돌무덤은 치웠고 큰 정상석을 세워놓았다. 올라온 방향으로 보면 아래로는 멀리 새끼손톱만하게 적멸보궁의 모습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왼쪽부터 상왕봉 두로봉 노인동 동대봉이 잇따라 늘어서 있다. 더 멀리로는 주문진이 보이고 평창 발왕산의 스키장 코스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보통 하산할 때는 북동쪽으로 다시 50분 정도 더 가서 상왕봉을 거쳐 삼거리로 내려오다보면 상원사로 향하는 국도를 만난다. 산불예방 입산통제 기간인 4월30일까지는 상원사~적멸보궁 구간과 소금강(무릉계)~구룡폭포구간만 개방되며 비로봉과 노인봉 등은 통제되니 봄이나 돼야 오대산을 제대로 오를 듯싶다.
글 =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코스
▲상원사∼중대사자암∼적멸보궁∼비로봉∼상왕봉∼삼거리∼북대미륵암∼상원사(3시간30분)
▲상원사∼서대염불암∼우통수∼1529봉∼갈림길∼비로봉∼적멸보궁∼중대사자암∼상원사(3시간)
대중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까지 버스로 간 후 진부터미널에서 하루 12편 월정사, 상원사행 버스 이용(이중 상원사행은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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