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짬뽕 건축’에 담긴 역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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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무대라면 건축물은 배우다. 이 책의 주무대는 서울로 대표되는 한국의 도시들이다. 그러나 건축 문외한도 한국의 도시와 건축을 떠올리면 한결같이 한숨부터 내쉰다. 어쩌면 이리도 못 생겼을까.

이 책도 못난 우리 도시와 건축의 현재에 대한 진단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책의 부제에서 약속했듯이 ‘우리 도시 건축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제대로 살피는 일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저자는 전통건축과 서양건축이 뒤섞여 혼돈스러운 서울을 차갑게 보지만은 않는다. 우리 역사와 문화로 미루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건축이 건축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과 도시, 역사와 현재의 중간지대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외려 혼돈은 역동성의 반증으로 나쁜 것만도 아니라고까지 말한다.

한국의 도시 어디를 가도 차고 넘치는 간판만 해도 그렇다. 이를테면 책은 서울에서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흉물스러운 경관의 대명사로 꼽히는 근린생활시설의 단면도를 잘라보인다. 맨 위층에서 예배드리는 신자, 그 아래층 학원에서 수험준비하는 학생, 그 다음층에서 당구내기 하는 대학생, 그 아래 식당, 지하층의 노래방에서 목청을 돋우는 사람들과 그 옆의 룸살롱에서 질퍽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 우리의 도시경관이 서구와 다른 것은 건축가의 문제 이전에 24시간 가동되는 산업구조 탓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세계 최고의 밀도, 오랜 선건축·후계획의 역사, 동서양이 뒤엉긴 짬뽕문화는 서울을 이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도시계획가는 땅을 넓히는 데, 건축가는 그 땅에다 집을 짓는 데,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데 관심을 쏟다보니 서양에서 배워온 도시학과 건축학을 융합할 여유도 역량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상상력은 어디에서 찾을까. 건축과 도시, 역사와 현실, 학계와 건축학계의 중간지대에 있으면서 이들의 접목과 가로지르기를 시도해온 저자는 가능성도 건축뿐 아니라 돈과 기술력, 역사와 문화까지 포괄한 영역에서 모색한다.

한국 도시 건축의 가능성은 불규칙한 외피의 곡면으로 유명한 프랑크 게리나, 의도적인 일탈과 불합리를 추구한 렘 쿨하스 같은 개인의 건축 어휘를 배우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변화와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되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서 새로운 혁신을 모색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건축 전공자를 위한 입문서 격으로 쓰였지만 일반독자에게도 ‘디자인’구호가 요란한 서울의 도시 건축 읽기에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