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에너지 패권 전쟁’ 깃발 올렸다

지난 6일 일본 도쿄(東京)만. 거대 유조선 ‘에너지 프런티어’호가 입항하고 있었다. 러시아 사할린에서 출발한 프런티어 호가 이날 싣고온 것은 액화천연가스(LNG). 그러나 단순한 LNG가 아니었다.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해 일본이 지난 십수년간 불태워온 ‘집념’의 결실이었다. 일본은 15년 전 러시아 벤처기업과 LNG공동개발 계약을 맺은 뒤 이날 첫번째 물량을 들여온 것이다. 중동지역에서 출발한 유조선이 해적이 득시글거리는 항로를 거쳐 일본까지 도착하려면 통상 20일이 걸린다. 반면 사할린에서 일본까지는 3일이면 충분하다. 일본으로서는 또 하나의 안정적인 에너지 수입선을 확보한 셈이다.

일본이 에너지 패권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중국이 아프리카 구석구석까지 누비며 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는 것에 이어 최근 일본 역시 에너지 확보에 뛰어들고 있다. 그동안 중국에 비해 비교적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던 일본은 최근 들어 엔화 강세를 발판으로 중동은 물론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태평양 등 전방위로 ‘촉수’를 뻗치고 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8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2006년 자국 기업들에 대해 에너지 확보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라고 주문했다. 당시 일본기업들이 해외에서 직접 에너지원을 개발하거나 프로젝트에 참여해 수입해온 물량은 일본 에너지 총소비량 중 15%에 머물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를 40%까지 늘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총에너지 소비량의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가 국가 존립에 필수적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후 정부 계획처럼 실적이 좋지는 않았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고, 에너지 시장의 ‘큰손’ 중국이 수익성 좋은 프로젝트마다 선점을 하기 일쑤였다.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던 원유가격이 경제침체로 인한 소비감소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엔화도 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꾀하기 시작했고, 원유 수입권 확보 및 관련 프로젝트 계약을 잇달아 성사시켰다.

지난 1월 ‘신일본석유’는 파푸아뉴기니와 유전개발 프로젝트 계약을 맺었다. 일본 최대 유전개발 기업인 인펙스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호주에서 원유 수입권을 확보했다. 인펙스와 신일본석유는 컨소시엄을 구성, 이라크 남부 유전개발 사업 입찰에 참가하고 있다.

세계 5위권 원유 수출국인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도 이번달 일본을 방문, 양국간 에너지 개발에 협력한다는 합의문에 서명했다. 일본 기업들의 해외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는 일본국제협력은행(JBIC) 관계자에 따르면 에너지 확보를 위해 연간 120억달러의 실탄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현재와 같은 에너지 가격 하락이 지속될 경우 해외투자가 오히려 일본기업들에 경영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여지는 있다. 미쓰비시(三陵), 미쓰이(三井) 등 일부 기업은 해외투자에 따른 손실분을 상각할 것으로 보인다.

양성욱기자 feelgoo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