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고 희망 - 2009 대한민국 리포트>“자선활동하며 ‘사람’ 돼… 눈감을 때 통장에 0원 남길 것”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청룽이 21일 통영 ES리조트에서 가진 인터뷰 도중 자신의 기부로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학생들의 사례를 설명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통영=임정현기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청룽이 ‘자기 자신을 믿으세요(相信自己)’라는 글귀와 함께 문화일보 독자들에게 남긴 사인.

인터뷰 = 이현종 국제부장

‘쿵후배우’보다 ‘기부천사’라는 수식어가 더 익숙한 청룽(成龍·55)이 20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문화일보가 펼치고 있는 ‘사랑 그리고 희망’ 운동과 관련한 인터뷰를 신청했다. 세계를 앞마당처럼 옮겨다니는 월드스타라 시간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마침 21일 경남 통영에서 ‘청룽의 희망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국 결손·조손가정어린이 100여명과 1박2일 동안 운동회 등의 행사를 하는 일정이 있어 시간을 잡을 수 있었다.

바쁜 월드스타가 1박2일 동안 꼬박 어린이들과 뛰고 노는 일정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보통 스타들이 자선행사를 한다고 하면 길어야 1∼2시간 정도 카메라에 잠깐 얼굴을 비추는 것이 많은데 과연 청룽은 어떨지가 무척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점심때부터 밤늦게까지 ‘감시(?)’한 결과 진정한 월드스타의 모습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100여명의 어린 초·중학생들과 운동회, 식사, 공연, 불꽃놀이 등 밤늦게까지(다음날도 자전거 기증, 청소 등의 일정을 소화함) 많은 행사를 할 때마다 그는 정말 열정적으로 아이들과 어울렸다. 짓궂게 하는 아이들에게 싫은 표정 한번 짓지 않고 함께 뒹굴고 웃고 박수치고 즐거워했다. 그가 이렇게 어린이들에게 각별한 정성을 쏟는 이유는 이랬다.

“어려서 부모님과 헤어지고 혼자 버려져 정말 무시를 많이 당했고 그때마다 더 강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14살 때 사회에 나와 일을 하게 됐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깡패였다. 살인도 하고 싸움도 하고 마약도 하고… 만약 그때 내가 한 걸음을 잘못 디뎠다면 지금의 청룽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어린이들을 돕고 있는데 그중에 몇명은 분명 커서 나같은 일을 할 가능성이 있다.”

청룽은 어린시절 생계를 위해 호주로 이민간 부모와 떨어져 홍콩에서 경극학교를 다녔다. 그는 아버지가 보고 싶어 돈을 빌려 호주에 다녀온 적도 있다고 했다. “아빠에겐 잘 있다고 했지만 자주 굶었고 돈 한푼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속에 간직한 표어가 ‘절대 포기하지 말자’였다. 지금 세상에 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보지만 겁나지 않는다. 너무 쉽게 돈을 벌려고 하면 안 되고 욕심부려도 안 된다. 한걸음 한걸음 탄탄하게 걸어나가야 한다.”

이날 청룽과의 인터뷰는 오후 9시쯤 청룽의 숙소인 통영 ES리조트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착오가 생겨 매니저가 방문 열쇠를 늦게 가져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숙소 앞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적인 스타와 계단에 앉아 인터뷰하기가 결례같아 머뭇거렸지만 청룽은 먼저 털썩 앉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놨다.

명예통영시민인 그는 지난 2005년 1월 통영에서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초청해 함께 유람선관광을 하고 1억원 상당의 컴퓨터, 20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한 바 있다. 이번 행사도 당시 다시 찾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련됐다. 통영은 예전에 영화촬영장소 물색차 왔다가 시장과 지역주민 등이 따뜻하게 대해주고 명예시민을 시켜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그의 기부철학에 대해 물어봤다. “어렸을 때는 돈이 없어서 돈만 열심히 벌었다. 지금은 자선활동을 시작하면서 사람이 되는 과정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단 하나, 좋은 일에 쓰기 위해서다. 나는 내가 눈을 감는 순간 통장에 0원을 남길 것이다.”

영화사를 소유하고 있는 청룽은 보통 영화 한 편에 1500만달러의 출연료를 받는 할리우드 초특급배우다. 대략 그의 재산은 4000억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쓰촨(四川) 대지진 때 제일 먼저 1000만위안(약 20억원)을 기부했고 태안 기름유출사고 때도 1만달러를 기부했다. 10년 전 이미 자신의 재산 절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했고, 22개의 낡은 학교를 새롭게 지어주었다. 그의 기부활동상은 홈페이지(www.jackiechan.com)에 자세히 나와 있다.

“나는 자선이라는 또 하나의 직업을 갖게 됐다. 영화 촬영하는 시간 이외에는 전부 자선활동을 한다. 지금 자연스럽게 어디 가게 되면 거기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캐나다에 가면 먼저 캐나다 자선단체를 찾는다. 영화찍다 보면 3일 정도 쉴 수 있는데 그러면 그 3일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그 사람들과 얘기를 한다.”

그에게는 가수활동을 하는 외아들 팡쭈밍(房祖名·17)이 있다. “혹시 아들이 재산을 전부 기부한다고 하니까 섭섭해하지 않더냐”고 물었다. “아들한테 이미 다 말했다. 만약 네가 스스로 돈을 벌어서 밥 먹고 살 능력이 되면 내 돈이 필요없지 않느냐.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 내가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 받은 사람이 아니고 스스로 노력해서 벌어 살아왔기 때문에 너도 그런 능력을 스스로 찾아서 벌어야 한다고 이미 다 얘기했다.” 그는 갑자기 한국말로 “돈 없어? 머리 안 아파. 돈 많아? 머리 아파”라고 말해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그는 “지금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이 돈에 더 욕심을 내는데 죽을 때 황금 먹으면서 죽는 것도 아니고 다이아몬드 먹으면서 죽는 것도 아닌데…”라며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자선활동 시작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창 돈벌이에 정신이 없을 때 한 병원의 어린 환자들이 그를 보고 싶어한다고 해서 억지로 갔다가 그 이후 아이들이 계속 눈에 아른거렸다고 한다. 그 뒤로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다 자연스레 기부활동을 벌였고 이후 ‘청룽 자선기금’이 설립됐다.

한번은 대형사고가 나서 죽을 뻔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사고를 당했을 때, ‘아! 이렇게 사람이 빨리 죽어가는구나. 내가 살면서 뭘했지’라는 반성이 들면서 변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기부만큼은 빌 게이츠보다 금액은 적지만 10년은 앞선다고 자랑했다. 청룽은 자신의 활동 때문에 스타들 사이에서 자선 활동이 크게 늘어난 것은 아주 잘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경제위기와 국가간 분쟁, 정치적 혼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항상 의문은 도대체 정치가 뭐기에 서로 싸우고 공격하는 것일까 생각을 많이 한다. 아프리카를 보면 누구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나. 그런데 정치는 정말 복잡하다. 그래서 지금은 정치에 대해 질문하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버린다.” 그는 특히 한국·중국·일본 간의 단합을 강조했다. “중·한·일 다 같이 협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늘 나라간 문제들이 많이 생긴다. 세 국가의 연예인만큼은 그런 경계 없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정이 꽉 차 있다고 한다. 중국 건국 60주년 홍보대사, 상하이(上海) 엑스포, 광저우(廣州)아시안 게임 홍보대사도 맡고 있고 유엔 친선대사 역할도 하고 있다. 7월부터는 ‘쿵후소자’라는 영화촬영에도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부탁했다. “우리가 희망을 만들어 줄 수 없다. 희망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자신을 믿어라’는 것이다. 어떤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자신을 믿고 그 신뢰감을 갖고 이겨내면 된다. 어떤 사람은 도피를 선택한다. 그런데 문제에 봉착했을 때 피하면 피할수록 문제는 더 커지고 더 힘들어진다. 문화일보 독자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은 ‘나 자신을 믿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30분으로 예정된 인터뷰는 1시간을 훌쩍 넘겨 오후 11시까지 계속됐다. 청룽은 전날 단 2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왜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스타인지 실감케 했다.

통영 = leehun@munhwa.com


■ 청룽은…

청룽은 1954년 4월 홍콩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대사관에서 요리사 생활을 한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청룽에게 쿵후를 가르쳤다. 아버지가 호주에 있는 미국 대사관 요리사로 가면서 7살 때 홍콩에 있는 홍콩경극학교에 입학시켰다. 여기서 청룽은 무술과 드라마, 노래 등을 배웠다. 경극이 인기를 잃으면서 별다른 일자리가 없고 특히 이 학교에서 쓰고 읽는 것을 배우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후 스턴트 맨으로 활동하면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촬영한 ‘취권’ ‘소권’ ‘캐논볼’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명성을 날렸고 할리우드로 진출, ‘러시아워’시리즈, ‘턱시도’ ‘80일간의 세계일주’ 등을 모두 흥행시켰다. 베이징(北京)에 영화사(Golden Way Films)를 갖고 있고 현재까지 100편의 영화를 촬영했으며 오는 7월 할리우드 스타인 윌 스미스의 아들과 ‘쿵후소자’ 촬영에 들어간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대역, 섹스신, 악역은 사절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