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부담금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라야

한때 ‘양입제출’이나 ‘양출제입’이라는 단어가 쓰였던 적이 있다. 전자는 수입을 헤아린 후 지출을 결정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지출을 가늠한 후에 거기에 맞게 수입을 결정한다는 원칙이다. 전자는 일반 가계나 기업에 적용되는 개념이고, 후자는 정부 예산에 적용되던 개념이다. 돈 쓸 일이 있으면 거두면 된다는 의미가 은연중에 배어 있는 개념이다.

정부는 돈을 벌어서 쓰는 조직이 아니라 거두어서 쓰는 조직이다. 그러다보니 함부로 쓴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정부 조직이 하고 싶은 일은 자꾸 생긴다. 이때 명분과 근거를 만들어 예산안을 제출, 통과되면 사업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한번 예산을 배정받으면 계속해서 지원을 받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말만 되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파헤치면서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이유가 무어냐고 물으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게 해서라도 예산을 안 쓰면 내년에 예산이 배정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써버려야 된다는 강박관념의 근저에는 남의 돈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물론 정부 예산에 상당한 의미가 있고 좋은 일에 쓰이는 돈도 많고 의미 있는 예산도 많다. 그러나 항상 고려돼야 하는 것은 이 돈을 지불하는 가계나 법인에 대한 배려다. 세금 내는 사람을 생각한다면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의 정신이 정부 예산에도 적용돼야 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도 우리 정부의 부담금 징수 규모는 15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1% 증가했다. 2004년에 10조2000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4년 만에 약 5조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부담금은 ‘특정의 공익사업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경제 주체에게 경제 정책적·유도적·조정적 목적으로 재화 또는 용역의 제공과 관계없이 사업의 필요 경비 부담을 위해 사업 소요 경비 등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금전 지급’을 의미한다.

이는 ‘일반 재정 수입 충당을 목적으로 국민 일반에게 담세 능력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조세나 ‘보험 원리에 따라 소득 보장을 위해 피보험자 간 연대적 배분 및 차등적 조절을 감안해 부과하는’ 사회보험과는 또 다른 부담이다. 부담금은 수익자 부담 원리가 작동하므로 거두는 데 명분이 있다 보니 자꾸 더 거두게 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조심해야 한다. 기금과 부담금은 잡초같은 성격이 있어 내버려 둘 경우 금방 늘어난다. 늘어나는 속도도 빠르다.

지난해의 부담금 내용을 보면 택지개발 확대 등으로 농지전용 면적이 늘어나서 농지 보전 부담금이 5405억원 증가했고,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이 출연금 부과 요율 상승에 따라 1839억원 증가했다. 담배 반출량 증가에 따라 국민건강증진 부담금이 883억원 늘어났고, 중소기업 대출 확대에 따라 신용보증기금 출연금이 753억원 증가했다. 그리고 전체 부담금의 79%는 중앙정부 기금(8조8000억원) 및 특별회계(3조3000억원)에서 사용했고 나머지 21%는 지자체에서 1조4000억원, 각종 공단에서 1조9000억원을 사용했다. 이제 이렇게 가면 부담금은 곧 20조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부담금관리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수입 부담금 운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의 확보를 통해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기업의 경제 활동을 촉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제 정부는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앞에서는 법인세 인하를 통해 기업 부담을 줄여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고 하면서 뒤로는 부담금 같은 준조세를 자꾸 거두어서야 되겠는가. 최근 확정한 ‘신성장동력 종합 추진계획’도 궁극적으로는 기업들이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그럴수록 말 그대로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환경을 만들려는 의지가 절실하다.

[[윤창현/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