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존엄사, 오늘 호흡기 제거>“생명경시 풍조 만연될까 두려워”

“모든 분들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면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사람의 생명은 고귀하며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이번 존엄사로 인해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국내 첫 존엄사가 시행된 23일 박창일(63) 연세의료원장은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존엄사를 허용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의료인으로서 살아있는 사람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결정을 내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존엄사 시행을 목전에 둔 시점에 박 원장이 천천히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선 사람을 살려야 할 의사가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거쳤던 고뇌가 묻어났다. 박 원장은 “의료진 사이에서 호흡기를 떼는 게 옳으냐 그르냐는 논란이 많았고 심도 있는 토론이 있었다”며 “결국 대법원의 판단과 환자 가족의 의견을 존중하는 쪽으로 힘든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이날 존엄사 시행을 최종 승인한 당사자이지만 “아직까지도 인위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과 같이 인간의 품위를 지키면서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것과 인위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데 많은 국민들이 아직 제대로 판단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존엄사 첫 시행 이후의 혼란도 우려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생을 마감해 달라고 할 때 의료현장에 혼란이 올 수 있고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생을 끊길 원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면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용권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