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을 소통의 계기로”

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강한섭·영진위)가 지난 1999년 출범 이후로 1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발표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데다가 기관장 평가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아서 해임 건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영화계에서 강한섭 위원장 체제에 대한 긍·부정적 시각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2008년 5월 취임 이후 겨우 1년 넘은 기관장에게 제대로 일할 기회를 주지 않고 해임하는 것은 큰 혼란을 야기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면서도 영진위가 이번 위기를 일시적으로 모면하려 하지 말고 한국 영화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 영화인들과 다양하게 소통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정재형 (동국대 영상영화학과 교수)한국영화학회장은 “영진위 평가에서 문제가 된 경영 방만·노조의 인사권 관여 문제 등은 이전부터 누적돼 온 것들로 강 위원장이 취임 이후로 개혁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온 것으로 안다”며 “현 정부가 임명한 지 얼마 안돼 해임한다면 앞으로 누가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강 위원장 체제가 영화계 인화(人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영화계 내부의 고질적인 보-혁 갈등 탓이지만, 영진위는 영화계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소통의 노력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제작자인 최완 아이엠픽처스 대표는 “부실 경영을 한 대형 공공기관은 놔두고 조그만 영화 기관을 겨냥한 공공기관 평가를 수긍하지 못하겠다”며 “2008년 평가를 한다면, 강 위원장 체제는 하반기만 일한 셈인데 그걸로 해임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춘연 (씨네2000대표)영화인회의 이사장은 “현 영진위 집행부는 영화계와 전혀 소통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며 “이번에 강 위원장이 해임 건의 대상이 된 것은 영화계 전체를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현재 영진위의 영화진흥위원인 이미연 영화감독은 “한 배를 탄 처지로서 위원장 해임 건에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강 위원장이 정책을 추진할 때 영진위원들과도 소통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처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소위원회를 폐지하거나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 사업 방식 변경 등을 추진할 때 영화계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지 않아서 아쉬웠다는 것이다.

역시 영진위원인 조혜정(연극영화학) 수원대 교수는 “내부인으로서 말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위기의식을 느끼고 향후 어떻게 해야 할지 심사 숙고해서 발전적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인 이용관(영화학) 중앙대 교수도 “강 위원장이 내부 문제를 추슬러서 일을 할 만 하니까 이런 일이 터져서 당혹스럽다”며 “향후 상황 전개를 기다려봐야 하겠으나, 영진위가 영화 발전을 위한 공공기관으로서 거듭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그동안 노조의 인사권 간여 등의 문제로 극심한 갈등을 빚어온 영진위 노사는 “단협 개정 추진 중에 뜻밖의 사태를 맞아 당혹스럽지만, 적극적으로 협력해 내부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겠다”며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