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눈 흘기는 거 봤지?

석양을 배경으로 배가 떠 있는 모네의 ‘해돋이 인상’과 남도의 섬 풍경을 담은 허련의 산수화가 한 화면에서 조우한다. 배가 떠 있는 고즈넉한 바다 위로 산수화 속 검은 글씨가 눈비처럼 흩날리고, 해가 지자 산 너머로 고층건물들이 휘황찬란하게 불야성을 이룬다.

모네, 허련부터 신사임당, 정선, 르누아르, 리히텐슈타인 등 동서양 명화와 걸작들이 46∼55인치 TV 화면에서 1초당 24장의 그림으로 이어지며 동적인 움직임을 드러낸다. 정지화면 속 익숙한 명화들은 짤막한 애니메이션처럼 나비가 날고 눈비가 내리는 등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담아내며 변화한다. 미디어아트작가 이이남(40)씨가 첨단 과학기기를 활용해 제작한 ‘움직이는 그림’이다.

최근 작품용으로 삼성전자의 LED TV를 지원받기 시작하면서 이씨의 LED 모니터 작품은 미술전시장을 벗어나 전자제품 매장 등을 통해 대중 속으로 들어섰다. 국내외 삼성전자 매장에서 이씨의 LED 모니터 작품이 공개되는 한편, 디지털 명화를 선보이는 ‘빛과 예술의 만남’전이 신세계백화점 서울본점 갤러리에서 23일부터 7월12일까지 열린다. 서울전에 이어 부산 센텀시티점과 광주점에서도 전시 일정이 잡혀 있다.

◆디지털 화면 속 명화=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 시대의 사람이 돼 보고 싶었다. 디지털은 그 시대로 들어가 사물의 재해석을 가능케 했다.” 모네, 정선의 시대로 돌아가 밤낮 사계절에 따른 풍광의 변화를 비롯해 일렁이는 바람이나 곤충과 새의 움직임을 화면에 담아내고 싶은 이씨의 열망은 2005년부터 현실화됐다.

조선대 미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1997년 애니메이션 강좌를 통해 ‘움직이는 그림’에 주목하던 중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TV 모니터를 활용, 김홍도의 ‘묵죽도’, 모네의 ‘해돋이 인상’ 등 명화를 움직이는 그림으로 패러디했다(현재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만화 100년’전에도 이씨의 영상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동서양 명화에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한 영상작품은 3∼10분 길이. 신사임당의 ‘초충도’에서 가지, 수박이 바람에 일렁이고 나비가 날고 방아개비가 땅 위를 기어 다닌다.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모나리자’에는 희뿌연 배경 위로 비행기가 떠 있고 모나리자의 눈이 흘깃 움직인다.

◆진화하는 디지털아트=급변하는 첨단기술이 그렇듯 LCD, LED 모니터를 활용한 이씨의 작품은 미술시장에서 위상이 불과 1년 새 급상승하며 인지도가 높아졌다. 지난해 봄 전시 때만 해도 작은 전자업체의 지원을 받아 LCD 모니터 위주로 작업했으나, 삼성전자의 후원에 힘입어 요즘은 USB와 보다 얇고 색이 선명한 LED 모니터를 이용, 작업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LCD 모니터로 전통의 산수화를 병풍처럼 꾸민 ‘디지털 병풍작품’은 관객의 시선이 쏠리는 인기작품이다.

컴퓨터도 잘 다루지 못하는 ‘기계치’였다는 그는 TV 모니터를 캔버스 삼아 작업하기 위해 기술을 익히는 한편 재료 확보에도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움직이는 그림’ 발표 직후부터 ‘친근하면서 재미난 영상’으로 호평을 얻으면서 서울뿐 아니라 해외 아트페어에서도 주목받는 인기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는 지난 봄 국내 아트페어에서 극사실적 묘사의 복숭아 회화를 통해 영상작업의 토대가 되는 그림 실력을 드러냈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