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自律高, ‘무늬’로는 취지 어긋난다

교육과학기술부의 100개 자율형사립고 지정 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교과부에 따르면 22일 현재 자율고(自律高) 신청 학교는 신청이 마감된 13개 시·도의 44개 학교다. 아직 신청이 마감되지 않은 대전·강원·충북 3개 시·도의 신청 학교 수를 합쳐도 50개를 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는 정부의 자율고 정책이 당초 기대와는 달리 일선 학교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30곳이 신청했으나 나머지 시·도는 1~3개교에 불과하다. 울산·전남·제주에서는 신청 학교가 1개도 없었고, 경기 지역은 단 1개 학교만 신청하는 등 지역간 불균형의 문제점도 나타났다.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2011년까지 전국에 자율고 100개를 비롯해 기숙형 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고 50개 등 모두 300개의 학교를 도입하겠다는 계획 아래 추진되고 있다. 정부의 자율고 정책은 우리의 공교육이 여전히 붕어빵 교육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에서, 고교 교육의 다양성을 살려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고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여 보겠다는 의도로 출발했다. 21세기 지식 정보화 사회를 맞아 세계는 교육개혁과 수월성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하고 있다.

우리도 나름대로 준비는 해가고 있으나 아직도 평준화 교육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일부 교육 단체나 학부모 단체로부터 자율고 정책은 평준화 해제와 고교등급제의 합법화로 이어지는 공교육 포기 정책으로, 학교와 학생들을 줄 세워 초·중·고 교육의 심각한 왜곡을 가져올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 오고 있다. 이러한 비판을 지나치게 의식한 정부가 자율고의 자율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불신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자율고가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되려면 교육과정 운영, 학생 선발, 인사와 재정 운영 등의 측면에서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교육과정 운영에서는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의 50%만 따르고 나머지는 학교장의 자율적 경영에 맡기고 있으나 학생 선발은 그렇지 못하다. 당초 면접이나 서류 전형 등으로 정원의 일정 배수만큼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방침을 추첨 방식으로 바꿔 자율고 정책을 정부 스스로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율고를 대비한 사교육을 억제하겠다는 그럴 듯한 명목으로 포장한 무소신 행정의 전형이라 하겠다.

사실 자율고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은 자율고 정책을 추진할 때부터 예견돼 왔다. 그런데 굳이 이 시점에 와서 꽁무니를 빼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학교의 교육과정에 맞는 학생의 수준이 담보되지 않은 자율고의 모습은 또 다른 유형의 평준화에 불과하다. 무늬만 자율고로 할 바에는 차라리 공교육 시스템을 공고히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마련해 교육의 질을 높여 나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자율고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자율고의 자율성이 훼손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을 구현해 나가야 한다. 이도저도 아닌 엉거주춤하는 정책으로는 우리 교육에 혼란과 불신만을 가중시킬 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매년 10억원 가까운 법정 전입금을 부담하면서도 원하는 학생을 뽑지도 못할 바엔 자율고로 바꿀 이유가 없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서울 지역만을 위한 반쪽 자율고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역간 균형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 가야 한다. 자율고의 설립 취지를 충실하게 살려나가는 동시에 부실한 공교육의 질적 수준을 최대한 끌어올려 경쟁성과 평등성을 모두 확보해 갈 때 귀족형 학교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점이다.

[[남경희 / 서울교대 교수·사회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