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생각하며>수학의 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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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한 나비의 날갯짓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뉴욕에서 어마어마한 폭풍우를 가져온다는 현상을 일컬어 나비효과라 한다. 이를 직접 실험하기 위해서 나비의 날갯짓보다 큰 동작으로 손을 휘저어보지만 그때마다 지구 반대편에서 폭풍우가 일어났다는 소식은 없었다. 나비효과는 날갯짓마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특수한 환경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인생에도 나비효과가 작동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커트라인 부근의 점수로 당락이 갈리는 수험생들,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면서 사소한 오해로도 헤어질 수 있는 결혼 적령기의 남녀들은 나비효과 지역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필자도 살아온 인생을 회상하면 나비효과가 몇 번 있었다. 고3 첫 모의고사에서 간발의 차로 수학 1등을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종례시간에 이례적으로 칭찬을 해준 것이 계기가 돼 수학을 평생 직업으로 삼게 됐다. 두번째는, 석사과정에서 학문에 대한 인생관의 변화로 수강하고 있던 전공필수 과목을 학기 중간에 자진해서 취소했었다. 이로 인해 졸업이 한 학기 늦춰졌고 박사 과정과 취직에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만약 며칠만 그 결정을 늦췄더라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대학이 갑자기 폐쇄된 채 학기를 마감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세번째는, 1993년 교환교수로 캐나다에 갔을 때 한국어와 된장을 연구하는 교수들을 접하며 한국의 1인자가 세계의 1인자임을 알게 됐다. 반면에 순수수학은 세계적으로 경쟁하는 분야였기에 선택에 아쉬움이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선택을 현명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고 한국이라는 환경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수학교육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다.

지인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면, 골치 아픈 수학을 하니 머리는 좋겠지만 아무래도 좀스럽고 융통성이 없을 것 같다는 눈빛을 느껴야 했다. 수학에서 주로 다루는 사칙 연산의 답이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를 확 바꾼 일이 연초에 있었다. 미국에서 최고의 직업으로 수학자를 꼽은 월스트리트저널을 보면서 어깨가 으쓱해진 것이다. 동료들과도 이야기하면서 서로 자긍심을 높였고, 인생의 반려자인 아내도 동감한다며 힘을 실어주었다.

30년 가까이 대학에서 위상수학, 수학교육론, 교양수학과 일반 교양강좌를 두루 맡아왔다. 모든 수업에서 강조한 것은 숲을 모른 채 나무만 보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을 지양하고 학문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얻으라는 것이었다. 수업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머잖은 장래에 직장·배우자·인생관 등을 결정하면서 나비효과 지역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수업과 함께 업적 평가 때문에 해마다 논문이 필요하지만, 마흔 살 즈음에서 내 삶의 큰 목표를 세웠다. 수학적 사고를 통한 인생 지침서를 만드는 것으로, 처음엔 우리나라 사람을 염두에 두었으나 잘 만들면 세계인을 독자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길이 남을 역작에 도전하고픈 마음가짐이 중년의 내 삶을 알차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아침마다 살아온 날 수를 USB에 업데이트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를 통해 남들이 연말연시에 느끼는 시간에 대한 흐름과 아쉬움을 자주 접하게 된다. 또 아침 샤워는 이것저것 생각한 것들이 의외로 잘 요약되면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시간이다. 나의 취미 생활은 평소에는 운동과 산책이라 가끔씩 강화도나 춘천 등지로 드라이브를 나선다. 고유가 시대에 부담이 되는 취미 생활이지만,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이 정리되고 인식의 깊이를 더할 수 있어 15년 넘게 계속하고 있다. 광대한 자연을 배경으로 음악이 있는 차 내부 공간은 홀로 사색하기에 안성맞춤이며, 대학에서 가르친 수학적 개념을 현실과 연결하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수학을 다루는 사람들은 논리적인 수학세계를 통해 복잡한 현실세계를 살펴볼 수 있기에, 일반인보다 세상을 보는 데 있어 전망이 좋은 창(窓)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것이다. 수학적 힘을 키울수록 적당한 모델을 일상에서 잘 찾아 그를 통해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스포츠는 인생살이의 훌륭한 모델이다. 왜냐하면 운동 경기는 인생에 비해 아주 짧은 2∼3시간에 전 경기를 관전할 수 있으며, 승부를 가르는 터닝 포인트가 있어서다. 얼마 전 새벽 3시에 생중계된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최종 예선 마지막 게임인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전은 훌륭한 모델로 손색이 없었다. 어느 순간 골이 터지면 월드컵 진출 팀이 그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이어서 긴장의 연속이었다. 심판의 판정 기준, 감독의 작전 능력, 선수들의 개인기, 간발의 차이로 골과 노골이 되는 게임 운이 승패를 가르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게임이 끝난 후에, 그 요소들을 거울 삼아 삶에 영향을 주는 것들을 깊이 살피면서 새벽잠을 청했다.

잠을 설치면서 생방송으로 보는 이유가 있다. 관심 있는 운동경기를 라이브로 보느냐, 녹화방송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형성되는 인생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승부가 결정된 운동경기를 녹화방송으로 보면 세세한 과정은 무시되고 결과만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반면에 라이브로 보면 긴박한 상황의 순간들을 같이할 수 있으며, 특히 승부처에서 행해지는 양쪽 진영의 작전 성패를 즉시 확인할 수 있어 배울 점이 많다. 각 경기의 터닝 포인트를 찾고 분석할수록, 인생에도 결정적 시기가 있음을 알고 그 대비책을 세우려 할 것이다.

이러한 체험과 깨달음이 있어야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인생의 나비효과에 잘 대비하려면, 세상에 대한 인식 능력과 생각하는 힘을 평소에 꾸준히 길러야 한다.

[[문권배 / 상명대 사범대학장·수학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