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아버지’가 말하는 ‘처세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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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옥시리보핵산(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세계적 생물학자 제임스 듀이 왓슨(81)은 여든이 넘어도 일반 대중에게는 여전히 시건방지고 천재적인 스물다섯의 청년으로 남아있다. 1953년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네이처’지에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 논문을 실어 유전자 생물학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패기만만한 청년으로 말이다.

그 당시 몇몇 과학자들이 뛰어난 명성과 엄청난 지원을 받으며 왓슨과 크릭보다 DNA 연구에서 훨씬 앞서 있었다는 사실은 왓슨에게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라는 이미지까지 덧씌워 놓았다. 비록 그가 다른 연구팀의 DNA 엑스선 사진을 어깨너머로 본 것이 결정적 단서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뛰어난 지력과 발빠른 종합력으로 과학사의 스타가 됐다.

이 과학사의 스타가 2007년에 쓴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를 사기 위해 서점에 간다면, 어느 쪽으로 갈까라는 흥미로운 망설임을 가질 만하다. 과학서 코너냐 아니면 자기계발서 코너냐라는. DNA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계적 생물학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이중나선 구조 발견과 교수 시절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회고하고 과학계와 학계의 풍경을 세밀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당연히 과학서 혹은 과학사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정체성의 상당부분은 자기계발서에 가 있다. 노과학자가 삶과 과학에서 얻은 통찰을 근거로 일반인들에게 주는 충고를 담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삶을 시기별로 나눠 정리한 뒤 각장의 끝에 ‘과학에서 배우는 충고’라는 이름으로 5∼10개 정도의 조언을 풀어놓았다. 조언들은 세계적 과학자답게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주는데, 놀랍게도 동시에 대단히 세속적이다. 조언, 충고라기보다는 유연한 처세술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때도 많다. 분야별로 나눠보자면 학습법, 대학생활법, 교수 강의법, 동료 사귀는 법, 논문 쓰는 법, 네트워크 만드는 법, 성공법, 행복학 등이 총망라돼 있는데 자기계발서 수십권 분량이 한권에 다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대중의 머릿속에 있는 ‘천재적인 스물다섯 청년’에 가려진 왓슨의 또다른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에게는 ‘이중나선의 아버지’ 이후 이 수식어만큼이나 그를 따라다닌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뛰어난 과학행정가이다. 그는 하버드대 교수였던 1968년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의 소장을 맡은 뒤 2008년까지 결정권자로 일하면서 이곳을 세계 제일의 연구소로 만들어놓았다.

그가 스스로를 ‘자애로운 독재자’쯤으로 자리매김해 과학자들을 독려하고 조직을 관리하면서 정부 지원을 따내고 사회적 관심에 끊임없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부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만든 결과였다. 따라서 그의 기록을 따라가다보면 과학계 역시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하고 이해관계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험난한 현실 사회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같은 ‘현실’을 거쳐 그곳에서 성공한 왓슨이기에 그의 조언은 과학계 및 학계라는 특정 울타리를 넘어 조직과 사회에 몸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하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도 수다가 필요하다’거나 ‘과학자들을 야구팀처럼 이끌어라’ 또 ‘연구실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되지 말라’ 같은 과학계를 조준해 풀어낸 조언조차 일반인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의 충고는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낄 만큼 대단한 목표를 설정하라’는 꿈과 이상에 대한 조언부터 ‘논문지도교수는 젊은 사람으로 골라야 이익이 된다’는 구체적 방법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어린시절을 돌아보며 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지적으로 궁지에 몰리면 재빨리 도움을 구해라 ▲닮고 싶은 젊은 영웅을 찾아라 ▲선생님에게 절대 무례하게 굴지 마라. 선생님에게 무례하게 굴지 말라니? 월반이나 우등반 편성의 권리를 쥔 선생들에게 절대 불경한 태도를 보이지 말고 자기 이익을 챙기라는 말이다. 대학시절에 대해서는 ▲새로운 발상을 하려면 새로운 사실이 필요하다

▲인기 있는 친구가 아니라 똑똑한 친구를 사귀어라 ▲교수들이 당신의 지성을 좋아하도록 만들어라 등의 충고를 준다. 이어 그는 ▲지적 경쟁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라 ▲당신의 편을 들어줄 중요한 인물을 알아두어라 ▲윗사람과 알고 있는 친구를 만들어라 ▲기부요청을 거절당해도 절대 화난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제목으로 뽑힌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는 그가 노년의 자기 삶을 돌아본 뒤 내놓는 조언 중 하나이다. 새로운 자극을 주지 못하고, 새로운 열정을 갖지 않는 사람들, 말 그대로 지루한 사람들을 피하라는 그는 “당신부터 지루하지 않은 사람이 돼라”고 말한다. DNA의 비밀을 밝혀낸 그는 삶의 비밀에 대해서도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최현미기자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