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재앙이 된 ‘캘리포니아 드림’

얼마전 회사에서 파견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살던 지인이 잠시 서울에 들렀을 때 전해준 캘리포니아주의 현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초등학교에 2명의 자녀를 보내고 있는데 요즘 한 한급당 학생수가 4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20여명 정도였는데 재정적자타결책으로 교사들을 해고하면서 학급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월급도 깎이면서 교사들의 질적 수준도 낮아졌다고 한다. 곧 주 4일제 수업도 실시하고, 주정부에서는 교과서 찍을 돈도 없다고 하니 어떻게 집에서 교육시킬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교육분야뿐만 아니라 263억달러(약 32조8000억원)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교도소 수감자수를 2만7000명 줄인다고 한다. 일단 수천명을 조기에 석방하고 가택수감으로 형기를 채우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여기에 세수확대를 위해 21세 이상 성인에게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법안도 상정해 놓고 있다. 돈만 된다면 뭐든지 팔 수 있다는 것이 지금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 캘리포니아가 당면한 현실이다. 주의회와 주정부가 합의한 예산감축안에 따르면 교육예산을 90억달러, 건강보험 예산을 13억달러, 교도소 등 예산을 12억달러 감축할 계획이다.

세계 최고의 첨단 산업단지인 실리콘밸리, 영화산업의 본산지인 할리우드, 도처에 널려 있는 금광, 그리고 천혜의 자연조건과 인재(人才), 2007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이 우리나라의 2배 수준인 1조8000억달러에 달하는 캘리포니아가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어디를 둘러봐도 부족한 것이 없는 캘리포니아의 추락은 ‘정책의 실패’와 ‘무능한 지도자의 포퓰리즘’에 있다.

캘리포니아는 국민투표, 국민발안과 국민소환 등 직접 민주주의제도가 가장 발달돼 있다. 특권층의 맞서 일반 시민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1920년대부터 주헌법에 규정돼 왔다. 1960년대 80건의 안건이 국민투표에 부쳐졌고 1980년대에는 257건, 1990년대에는 378건에 이르는 각종 안건들이 국민투표로 처리됐다. 의료보험, 교육개혁에서부터 게이들의 권리, 안락사에 이르기까지 각종 안건들이 국민투표에 의해 처리됐다.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 발달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캘리포니아가 지금과 같이 엉망진창이 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재정적자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주민발의 13호(Proposition 13)’다. 1978년에 통과된 이법안은 주민들이 보유한 부동산 평가금액의 연간상승률을 2%로 제한하는 것으로 부동산 가격이 아무리 뛰어도 재산세 징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부유층을 위한 일종의 감세정책인 이법안은 지난 2003년 아널드 슈워제네거 지사의 선거자문을 맡았던 ‘투자의 달인’워런 버핏이 이 법안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지만 슈워제네거는 듣지 않았다.

이같은 ‘정책실패’에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터미네이터’ 이미지를 업고 당선된 슈워제네거 지사의 ‘무능한 파퓰리즘’이 위기를 더 가속화시켰다. 곳간은 말라가는데 대중적 인기를 위해 자동차세 감세를 실시, 재정파탄을 더욱 앞당겼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문제는 태평양 건너 남의 일이 아니다. 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는 무능한 여의도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정말 남일이 아닌 것 같다. 국가의 미래보다 당리당략과 표얻기용 정책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여기에 인기보다 미래를 보는 지도자의 혜안과 참모들의 중요성이 절실해 보인다.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 등이 집단이기주의적 요소는 없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현종 / 국제부장]] leehu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