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엔 한국이 ‘가해자’… 올바른 역사인식 필요”

“베트남전쟁 동안 베트남을 다녀온 한국인은 군인과 민간인을 합해 40만명에 이른다. 그 중 문학하는 몇 사람이 전쟁에 대해 약간의 작품을 쓴 것 외에는 아무도 베트남이 어떠한 나라인지 이해하려는 이가 없었다. 이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국의 베트남 연구자들이 베트남전 참전병사들이었다는 것과 좋은 대비가 된다.”

지난 27~28일 서울 중구 충무로2가 세종호텔에서 ‘역사교육을 통한 한국과 베트남의 상호이해 증진’을 주제로 열린 제3회 동아시아 역사화해 국제포럼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유인선 전 서울대 교수는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에 관해서 거의 무관심한 우리의 현실을 지적했다.

국내에서 베트남사를 전공한 1세대 연구자 격인 유 교수는 이날 발표한 ‘한국인의 베트남 역사와 문화 인식’을 통해, 중학교 사회과 검인정 교과서와 고등학교 검인정 세계사의 오류들을 지적한 뒤 무엇보다 교과서의 내용을 정확히 서술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예를 들면, 전근대 베트남에서 왕조들은 리 왕조·쩐 왕조·레 왕조 등으로 바뀌어도 1800년 이전까지 모두 국명이 ‘대월(大越)’이었는데, ‘11세기에 독립한 대월’ 또는 ‘명을 몰아내고 대월을 세웠다’는 등의 잘못된 교과서 서술이 많다는 것.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유 교수는 “지금 베트남 정부나 역사학계는 전통문화의 재발견 내지는 문화재 보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경제원조도 좋지만, 문화재 복원사업 등에 도움을 준다면 양국 간의 우호증진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문화 이해에도 더욱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한국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 유네스코 베트남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포럼은 역사대화를 통한 역사화해의 지평을 동남아시아까지 넓힌 게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동안 아시아 지역의 역사갈등이나 분쟁에서 주로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해 온 한국은 베트남과의 관계에서는 가해자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베트남간 역사갈등이 표면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확대되고 국내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양국간 상호이해 부족에 따른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팜 산 짜우 유네스코 베트남위원회 사무총장을 비롯, 베트남과 한국·중국·일본, 호주 등지의 역사 및 미디어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번 포럼에선 한국과 베트남 양국 학계와 시민사회가 상대 나라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펼쳐졌다.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12월 국교 정상화 이후 지난해 양국간 인적교류가 52만명, 교역액이 98억달러에 이르렀으며 오는 11월 이명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이 추진되고 있을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 교수와 함께 ‘베트남과 한국의 역사, 문화적 유사성과 베트남의 한국 이해’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 응오 반 조안 베트남 사회과학아카데미 동남아시아학 저널편집장에 따르면, 베트남 사회에선 최근 베트남의 한국학이라는 학문까지 출현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타나 리 호주 국립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교수 등이 지적했듯이, 근대화와 민족국가 건설을 지상 목표로 내건 역사교육을 받은 아시아인들은 자국을 비롯, 미국 등 서구의 역사나 현재 이들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예의주시하고 있는 반면, 정작 옆에 있는 이웃 국가에 대해서는 무지 또는 무관심한 게 현실이다.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 뉴스를 분석한 김성란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미디어에서 베트남이 ‘황금의 땅’과 ‘전쟁의 나라’, 쌀국수와 ‘신붓감’의 나라로 묘사되고 있는 상황을 살펴본 뒤 “국내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는 베트남에 대한 정보들이 매우 편향적이고 불충분(불완전)하며 ‘우리’ 중심적인 동시에 ‘자신’과 ‘타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