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게 듣는다>“한국, 미국 베끼기 그만두고 은행 대출규제 강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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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사진=천영식 워싱턴특파원]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경제학 원론’을 공동 저술한 미국 경제학계의 거두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65·사진) 코넬대 교수는 “미국 경제의 더블딥(경기회복 국면에서 다시 침체) 가능성이 여전히 우려되고 있다”면서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추가적인 경기부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주류 경제학자인 그는 문화일보와의 신년호 특별 인터뷰를 통해 “당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뒤 2조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필요했으나 실제 의회를 통과한 건 7870억달러에 불과했다”면서 “여전히 1조2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 프랭크 교수는 “아직 경제가 완전 회복된 게 아니므로 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면서 “인플레이션은 경제를 살린 뒤에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의 추가 파산 가능성을 경고하고, 현재 10%를 넘고 있는 실업률이 5~6%대가 될 때까지는 경기부양이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자아빠의 몰락’, ‘이코노믹 씽킹’, ‘승자독식사회’ 등 한국에도 번역돼 널리 알려진 경제서적의 저술가이기도 한 프랭크 교수는 “신용구매에 관한 한 한국이 미국 베끼기(copying)를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은행규제를 강화하라”고 한국에 충고했다. 그는 한국인에 대해서도 “빚을 내지 말고 저축을 확대한 뒤 여유가 되면 소비하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인터뷰는 미 동부에 눈이 많이 내린 지난 12월9일 뉴욕주 북쪽 끝에 위치한 눈덮인 코넬대의 프랭크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프랭크 교수와의 일문일답.



―당신의 책 제목처럼 ‘승자독식사회(Winner―take―all Society)’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바뀔 수 없는 건가.

“승자독식사회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음악을 생각해 보라. 옛날엔 직접 연주를 들어야 했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CD나 컴퓨터로 최고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러나 나쁜 점은 돈이 소수에게 몰린다. 최고가 아니면 아무도 당신을 찾지 않는다. 슈퍼스타 몇명이 백만장자가 된다. 승자는 점점 더 많은 걸 갖게 되고, 사회적 불평등이 형성된다. 이는 항상적인 소득불평등을 의미한다.”

―그럼 당신의 또다른 책 ‘부자아빠의 몰락(Falling Behind)’에 나오는 대로 중산층의 몰락도 막을 수 없나.

“매우 힘들다. 시장의 힘은 중산층에 친절하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중산층을 위한 세금을 깎아주는 등 중산층의 조건을 보다 편하게 만들어주는 거다. (정부가 나서) 의료보험, 대중교통 등 중산층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

―당신은 중산층에 저축을 더 하라고 하지 않았나.

“저축이 중요하지만 저축하기가 쉽지 않을 거다. 중산층이 자식들의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아이들은 뒤처지고 그런 상태가 대대로 유지된다. 돈을 가진 사람들이 최고의 학교를 짓고 주변에 몰려산다. 중산층이 자식 교육을 위해 따라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부모는 좋지 않은 학교 주변의 집을 위해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 중산층의 미래는 없나.

“(미래를 위해선) 열심히 일하고 교육을 받는 길이 있다. 더 많은 수입을 위해선 세금제도를 바꿔야 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에 세금을 매겨야 한다. 가령 복잡한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혼잡세를 거둬들이는 식으로 말이다. 세금정책으로 해로운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게 하고, 중산층은 덜 쓰도록 해 돈을 모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소비를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비싸게 매기는 누진소비세도 있다. 가령 누가 딸에게 멋진 파티를 열어주면, 모든 사람들이 따라하고 싶어한다. 이때 파티 소비에 누진소비세를 매겨 돈 있는 사람에게서 세금도 걷고 중산층의 지출도 줄인다는 개념이다.”

―누진소비세는 당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인데, 경제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되나.

“충분한 소비가 이뤄지지 않는 지금은 아니다. 정상적 시기에 누진소비세는 투자소비를 늘릴 것이다. 경제위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라.”

―벤 버냉키와 경제학 원론을 함께 저술했는데, FRB 의장인 버냉키의 정책에 동의하나.

“지금 잘 하고 있다. 그가 지금 FRB 의장으로 있다는 게 우리의 행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언제 만났나.

“12년 전에 만나서 1997년 경제학 원론을 같이 집필했다.”

―당신은 더블딥을 우려하나.

“당연히 더블딥을 걱정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만기일이 대거 도래하고 있다. 올해 많은 은행들이 추가로 파산할 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더 생긴다. 경제위기가 극복되길 원하지만 부실대출 때문에 문제들이 많을 것이다.”

―당신은 항상 경기부양을 더 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는 지금도 더 해야 하나.

“더 필요하다. 공화당이 재정적자를 걱정하는 바람에, 처음 시작할 때 경기부양 규모가 너무 작았다. 경기침체를 빨리 끝내려면 충분한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 거기에다 지금 캘리포니아 같은 지방정부는 예산을 수백억달러씩 삭감하고 있다. 그들은 경기부양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주정부 및 지방정부에 더 많은 돈을 줘야 한다.”

―부시 정부 때 7000억달러, 오바마 정부 때 7870억달러 등 지금까지 들어간 경기부양 규모면 충분하지 않나.

“7000억달러는 은행구제금융으로 직접적 경기부양이 아니다. 은행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경기부양으로는 2조달러 정도 필요했다. 7870억달러가 조성됐으니 1조2000억달러가 여전히 필요하다.”

―당신은 며칠 전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재정적자를 우려하지 말라’고 했던데, 정말 괜찮은 건가.

“재정적자를 줄여야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재정적자도 나쁘지만 경기침체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더 나쁘다. 실업률이 충분히 해소될 때까지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기다려야 한다. 나중에 재정적자를 제거할 방법은 세금정책을 포함해서 많이 있다.”

―시중에 풀린 돈은 어떻게 조절하나.

“FRB 의장은 그걸 허용하지 않을 만큼 진지하다. 만약 인플레이션의 큰 위기가 있다면 화폐공급을 수축시킬 수 있는 많은 시간을 갖고 있다. 나는 그를 잘 안다. 걱정 안해도 된다.”

―미국 경제에 가장 큰 문제가 뭔가.

“저축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저축을 해야 경기침체가 왔을 때 투자 등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소득분배(income distribution) 시스템도 부족하다. 의료보험시스템은 시작단계고, 낡은 인프라에다 모든 도시에 대중교통체계가 거의 없다. 투자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저축을 중시하는데 왜인가.

“사회보장만으로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 많은 저축이 투자를 낳고, 투자는 성장률을 끌어올린다. 이것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더 쉽게 할 수 있게 한다.”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실업 등의 많은 문제 중 미국이 시급히 다뤄야 할 사안은 뭔가.

“인플레이션은 절대 아니다. 일본은 지금 디플레이션이 문제 아닌가. 우리는 지금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이 더 문제가 되는 상황에 있다. 또 10%에 달하는 실업률을 해결해야 한다. 8~10% 실업률에서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수 없다. 5~6% 정도로 실업률을 낮출 때까지 경기부양을 계속해야 한다.”

―국가부채는 걱정없나. 미국의 빚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90%를 넘어섰다.

“대공황 직후 125%까지 치솟았다. 경기침체가 더 큰 문제다. 취업률이 확보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국도 국가부채가 증가하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기침체는 적자를 증가시킨다. ‘바로’ 돈을 조달해서 ‘바로’ 쓰는 게 경기침체를 단축시킨다. 빚보다는 경기침체를 단축시키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나중에 경기가 살면, ‘나쁜 행동’에 세금을 매기면 된다. 대기오염, 숲파괴, 해양생물멸종 등에 비싼 돈의 허가비용을 내게 하거나 세금을 매겨 빚을 갚을 수 있다. 중요한 건 경기침체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FRB 권한을 두고 논쟁이 있다. FRB는 권한을 키우자는 입장인 반면 의회는 권한을 줄이자고 하는데.

“FRB가 하지 않는다면 다른 기관이 해야 한다. FRB 없이는 경기침체가 훨씬 악화됐을 것이다. FRB처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만약 의회가 상황을 떠맡았다면, 우리는 절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의회는 장애물이다. 우선 상원의 규칙을 바꿔야 한다.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를 막기 위해 항상 60석을 확보해야 한다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올해 한국이 주요20개국(G20) 의장국을 맡는다. 서울에서 정상회의도 연다.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 한국에 필요한 것이 뭔가.

“한국은 이미 놀랄 만한 성장을 했다. 제조업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하다. 불과 몇년 전 ‘현대(Hyundai)’ 브랜드는 존중받지 못했다. 지금은 상당히 좋아졌다. 유럽이나 일본 차들보다 싼 값에 고품질의 차를 생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G20의 역할을 어떻게 보나.

“G20은 주요8개국(G8)을 대신할 것이다. 참가국이 많아졌고,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비중도 늘어나고 있다. G20 국가들은 아주 중요하고, 국가간 대화도 늘려야 한다”

―한국과 한국경제에 대해 충고를 한다면.

“신용구매에 관한 한 미국을 베끼지 마라. 우리 미국인보다 더 많은 저축을 하라. 미국인도 옛날엔 지금보다 많은 저축을 했다. 또 형편이 안 되면 뭐든 빚을 내서 사지 마라. 저축을 한 뒤 여유가 될 때 소비하고, (빚을 내지 말고) 현금으로 지불하라. 현 국면에서 한국인은 미국인보다 낫다. 그러나 현재의 위치를 잃는 것은 한순간이다.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 정부는 어떤가.

“한국 정부도 미국 베끼기를 멈춰야 한다. 당신들의 은행을 규제하라. 사람들이 너무 많이 대출하도록 허용하지 마라. 한국이 (미국을) 베끼지 말아야 할 것은 도처에 존재한다.”

―올해 주식시장은 다시 한번 하락 가능성이 있나.

“난 주식 전문가가 아니다. 세계 경기침체가 끝나면 주식시장도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난관이 있다.”

―당신은 낙관주의자인가, 비관주의자인가.

“나는 그래도 낙관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이타카 =kkachi@munhwa.com

프랭크 코넬대 교수는…

로버트 프랭크 코넬대 교수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과 함께 대표적 경기부양론자이면서 소비확장론자다. 이들은 통칭 케인스학파로 분류되지만, 구체적인 이론에서는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

프랭크 교수는 소비이론과 함께 누진소비세로 알려진 조세이론을 주창하면서 독창적인 이론체계를 확립했다. 그의 이론은 때로 비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경기침체 및 중산층 몰락, 승자독식사회 등을 분석하는 데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세계경제에 대한 그의 진단과 처방을 요약하자면,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기침체인 지금은 대규모 경기부양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며, 경기부양 규모는 크면 클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 경제에 2조달러의 경기부양이 필요했다는 그의 주장은 버냉키 의장이나 크루그먼 교수보다 공격적이고 자신만만하다. 그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는 지금에도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지속적으로 추가 경기부양을 촉구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그의 경기부양은 실업률이 5~6%대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경기부양에 따른 재정적자나 국가부채의 증가에 대해서도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는다. 재정적자나 부채의 증가보다 경기침체의 지속에 따른 어려움이 훨씬 크다는 논리다. 경기가 회복되면 적자나 부채 등을 치유할 수 있는 데 비해, 경기침체가 계속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랭크 교수의 이론 중 가장 독창적인 것은 역시 조세이론이다. 그는 중산층의 몰락을 막고, 정부 소비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누진소비세를 주창했다. 일반적으로 부유세로 알려진 누진소득세와 달리 누진소비세는 소비행위에 세금을 차별 적용하는 방안이다. 이른바 중산층이 부유층의 소비를 따라가는 ‘지출연쇄작용’의 고리를 끊어야 중산층도 살고, 국가도 건강해진다는 논리구조다.

또 각종 공해유발 등 ‘나쁜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세금징수를 통해 나쁜 행위를 억제시키는 한편 정부 재정을 늘리는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아서 세실 피구가 오염물질에 세금을 매기자고 제창했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피구세’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누진소비세 등 조세개혁이 지금 당장 실현가능한 게 아니라 경기회복 뒤에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45년생으로 올해 65세이며, 조지아공대 수학과를 나와 UC버클리에서 통계학 석사,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코넬대 존슨경영대학원 경제학 교수로 있다. 9권의 저서가 있으며 이중 버냉키 의장과 공저한 경제학 원론 및 부자아빠의 몰락, 승자독식사회, 이코노믹씽킹 등이 국내에 번역됐다. 지금도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정기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