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 산책> “IT 부흥 때의 열정으로 ‘친환경차 강국’ 불 지필 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우진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이 12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경영대 교수연구실에서 토요타 리콜사태 이후 글로벌 자동차시장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임정현기자

100년 만의 대전환이다. 포드의 대량생산혁명이 시작된 뒤 100년 만에 세계자동차업계가 최대 변환기에 직면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제국의 몰락과 재기, 일본 토요타자동차의 대규모 리콜사태, 자동차의 심장 격인 내연기관을 버린 전기차시대의 도래 등으로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출구를 찾기 힘든 버뮤다 삼각지대에 갇혔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표되는 글로벌업체들 간 제휴 등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 바람도 업계판도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거대한 지각변동에 대해 정밀하고 실증적인 분석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난 12일 봄빛이 완연한 관악산 기슭의 서울대 캠퍼스에서 국내 최고의 자동차산업 전문가 중 한 사람인 주우진(50·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을 만났다. 최근 토요타 문제를 속속들이 연구해온 주 회장은 토요타 문제와 복잡하게 뒤얽힌 글로벌 자동차업계 변화에 대해 깊이있는 통찰과 명쾌한 해석을 들려줬다.

토요타, 매출 200조원의 함정

주 회장은 요즘 자동차업계 최대 화두인 토요타 리콜 사태의 원인에 대해 “기업 매출이 200조원을 넘어서면 관리하기 어려워진다”며 말문을 열었다.

“GM의 매출이 200조원 가까이 되고, 토요타는 200조원을 넘었습니다. 이 경우 경영의 한계가 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지난 10년간 자동차산업이 연간 4%씩 성장했는데 토요타는 성장률이 8%에 달했습니다. 남의 몫까지 빼앗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토요타는 타회사 인수·합병(M&A)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압축성장을 하다보니 사람을 많이 못키웠어요. 미국 리콜사태도 미국에 권한이 있는 관리자가 있었으면 곧바로 결정을 내려야 했지요. 그런데 본사 허락을 받아야 리콜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주 회장은 “토요타의 매출이 200조원이 되려면 대부분 나라에서 1위를 차지해야 한다”며 “전세계 차산업 규모가 1500조원 정도인데 1개 기업이 300조∼400조원을 가져가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자체가 무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요타의 이같은 야망이 현실화되면 다른 회사들이 줄줄이 망하기 때문에 정치적·사회적으로도 용납이 안 된다고 분석했다. 토요타 사태를 미국의 일본 때리기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도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주 회장도 정치적 의미를 배제하지 않았다.

“미국 경쟁력이 저하됨에 따라 미국이 그린카 분야에 드라이브를 걸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시장 파워를 갖춰야 하고, 일본자동차업체를 약화시켜야 합니다. GM 지분 60%를 미국 정부가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차를 때리면 정부 소유 기업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고라는 자신감의 덫

토요타의 경우도 2010년에 갑자기 차량 결함 문제가 불거진 것이 아니라 이미 2005년부터 관련 결함이 계속 신고되고 있었다. 이를 방치해 화를 키운 것과 관련, 주 회장은 토요타가 ‘과잉 자신감의 덫’에 걸렸다고 분석했다.

“토요타가 스스로의 품질과 코스트 다운 능력을 과신한 게 또하나의 원인입니다. 토요타는 경영학자들로부터 너무 많은 칭찬을 받게 되자 자기 품질을 과신하게 됐어요. 우리가 최고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른 차업체보다는 덜 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계속 성공하다 보니 소형차 분야에서도 흑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코스트를 낮출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게 오산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실패와 성공을 겪으면서 크는 기업이 훨씬 더 강한 기업입니다.”

그는 “투자업계에서는 3번 연속 성공한 사람을 가장 위험한 사람으로 본다. 자신감 때문에 돈을 끌어모아 무모하게 투자하기 때문”이라는 비유를 들었다. 주 회장은 “폭스바겐도 최근 오버 컨피던스(과잉 자신감)를 갖고 있는 것 같다”며 “급속한 확장으로 품질의 문제와 경영의 허점이 드러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토요타의 리콜비용은 5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어지간한 기업 같으면 벌써 망했을 것”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회자된다. 토요타의 장래가 궁금했다. 주 회장은 “토요타가 지난 5년간 번 수익이 8조엔(약 100조원)이며, 리콜비용은 토요타의 경쟁력을 기본적으로 저하시킬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미지에는 커다란 타격을 입었지만 수년 안에 복구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토요타는 향후 5년간 원가절감보다 안전 쪽에 집중할 것입니다. 많은 자동차업체들이 리콜을 소비자들로부터 더 신뢰받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토요타도 이번 사태를 충분히 극복할 것입니다.”

주 회장은 “국내 자동차업체로서는 (토요타 리콜사태 이후) 2∼3년이라는 한시적 기회가 주어지는 것뿐”이라고 잘라말했다.

정보기술(IT) 강국에서 하이브리드카강국으로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 리콜 이후 친환경차 시장 위축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 회장은 “각국 정부가 그린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인센티브도 많이 제공하고 있다”며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카 부문은 주춤할지 몰라도 전반적 세계 차 시장은 하이브리드카가 주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자원이 40년 안에 고갈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데다 전세계에서 사용하는 자동차용 휘발유가 세계 석유소비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점을 논거로 들었다. 주 회장은 우리 지식경제부도 전문가 수백명을 모아 지난 9일 그린카 전략 포럼을 열었다고 소개했다. 자동차산업, 자동차공학, 전기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서로간의 공통분모를 도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주 회장은 “김대중 정부 때 정보기술(IT)에 올인한 뒤 한국이 전세계에 IT강국으로 알려졌듯이 친환경차 분야에서도 그런 붐이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IT 붐을 일으켰던 때의 열정으로 전 국민이 친환경산업에 매달려야 합니다. IT 부흥의 원동력은 기본망을 갖추고 서비스업체를 끌어들인 것이었죠. 그린카 분야의 경우 인프라 확충을 시작하는 단계이지만 이 부문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인력이 문제입니다. 그린카 인력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특별한 인센티브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주 회장은 “(100%) 전기차의 경우 현 시점에서 전지 무게가 너무 무겁고 비싼데다 전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트렁크 공간도 좁아지는 점, 차가 무거워 바퀴 마모가 빠른 점이 단점”이라며 “당분간은 하이브리드카가 늘어날 것이며 전기차는 유가가 150달러 정도는 가야 보급이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던진 사건도 기억과 망각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지금은 토요타 사태가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자동차 역사상 최대 사건 중 하나였던 지난해 GM몰락은 잊어져 가고 있는 측면이 있다. 주 회장은 “GM의 경우 기술도 잘 개발했고 우수한 인력도 많았다”며 “하지만 미국 시장에 의존해 글로벌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고, 대형차에 집중하다 유가 급등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GM은 미국의 자존심이라고 볼 수 있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전보다 좀 더 작은 규모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강력한 경쟁자로 생존할지는 모르지만 프랑스 자동차업체들이 르노, 푸조, 시트로엥 3사 체제로 갔듯이 미국 자동차업체들도 수년간 어느 정도 시장 경쟁력을 유지할 것입니다.”

국내 차업계, 경쟁체제가 해답

국내 차업계는 글로벌 차 업계 격변에서 뭘 배워야 할까. 당장 쌍용차와 GM대우차 문제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주 회장은 “기본적으로 자동차 회사는 청산되는 경우는 별로 없고 M&A의 대상이 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대형차 시장을 보면 현대·기아차와 쌍용차뿐인데 어느 정도 유효한 경쟁시스템을 유지해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면서 “GM대우가 GM의 하청기지냐 아니냐를 놓고 논쟁하는 것도 소모적이며, 어떻게 하면 하청기지가 안 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 회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성공 요인을 두 가지로 분석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합병으로 규모의 경제에 도달했다는 점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품질에 대한 집착이 세계최고의 품질 수준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현대·기아차 경영이 좀 독창적입니다. 마케팅도 그렇고 품질 드라이브도 걸어서 단시일 안에 세계 최고의 품질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JD파워 품질 지수를 보면 현대가 지난 5년간 지속적으로 톱5 안에 들었습니다. 이제는 1위도 하고 있고 토요타를 이기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현대차의 품질 비용은 비쌉니다. 품질 체크 단계가 일반 자동차 회사보다 2단계가 더 많죠. 품질을 위해 코스트를 희생했는데 이런 면은 참 좋다고 봅니다.”

그는 다만 현대·기아차의 국내 마켓 셰어가 85%에 달함에 따라 서비스 부문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 회장은 “토요타 리콜 사태를 겪으면서 현대차에 대한 불만도 제기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책임있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서비스 분야에 잘 훈련받은 관리자를 많이 양성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서비스요원들이 지금보다 좀 더 친절해져야 하며, 수리기간을 단축하고 수리비용도 더 낮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 회장은 “현대차가 유럽 시장 등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토요타나 혼다 정도의 브랜드 이미지를 갖춰야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린카 분야에서 한발 늦는다는 이미지를 주면 다른 차들도 잘 안팔리게 된다”며 “당장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 시장 가치를 선점하기 위해 세계 최고수준의 그린카 업체들을 빨리 따라잡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 회장은 “글로벌 제휴와 관련해서, 예컨대 고급차업체가 대중차 분야를 보완하기 위해 글로벌 제휴를 한 사례 등은 실패로 끝났는데 이는 양사의 경영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반면 취급 차종이 같으면서 지역별 약점을 보완하는 글로벌 제휴는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자동차업계는 만성적인 공급과잉 상태에 빠져있다. 글로벌 차업계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인지, 신흥시장을 통한 재부흥의 길로 갈 것인지는 안갯속이다. 안갯속에서 통찰력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 회장이 IT 붐을 빗대어 얘기한 대로 모든 경제주체들이 그린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할 때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가 밝아진다는 점이다.

인터뷰 = 예진수 경제산업부 부장대우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