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고 춤추고… 인생 뭐 있나, 즐겁게 살아야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종선 할머니가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부창마을 마을회관 앞에서 이웃들과 함께 꽃묘를 화분에 옮겨 심고 있다. 심만수기자

충북 진천 부창마을 87세 박종선 할머니, 늘 모자란 듯 먹어… “배가 부르면 더 피곤혀”

지난 6월29일 오전 충북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 부창마을. 깨끗하게 정돈된 꽃길 사이로 구성진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얼씨구나 절씨구, 얼쑤’, ‘얼씨구나 절씨구, 지화자 좋다.’ 마을회관에 모인 노인들이 흥겹게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소리였다. 십수 명의 노인 가운데 유독 목청이 좋고 표정이 밝은 노인이 바로 박종선(87) 할머니. 박 할머니의 까만 피부와 이마에 굵게 파인 주름은 고생을 많이 한 시골 할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지만 어깨를 크게 들썩거리며 신명을 내고 있었다.

“일주일에 이렇게 한번씩 노래하는 게 너무 재밌어. 만날 놀기만 하면 좋겠는데 말이야. 허허허.”

박 할머니는 80세가 되던 7년 전부터 일을 그만뒀다. 그는 “젊어서부터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몸이 아파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게 됐다”며 “만날 아파서 병원에 다녔고 골다공증에 고혈압 진단까지 받은 뒤부턴 일을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할머니는 ‘아프다’는 말이 엄살로 들릴 만큼 정정해 보였다.

마을회관에서 매주 하루씩 진행하는 ‘짐볼(gym ball : 재활치료·스트레칭 등에 사용되는 큰 공모양의 운동기구)요가’ 시간에도 박 할머니는 유독 어려운 동작들을 잘 따라한다. 요가강사 배은미(여·36)씨가 “박종선 할머니는 정말 유연하시다”고 칭찬하자 박 할머니는 “이렇게 일주일에 한번씩 체조를 하고 나면 온몸이 시원해지는데 열심히 해야 한다”며 진지하게 동작을 따라했다. 척추 추간판(디스크) 협착이 있는 박 할머니는 “요가운동을 시작한 후부터는 통증이 크게 줄어 병원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는 이렇게 항상 밝고 적극적인 성격이지만 “세상살기가 고추보다 매웠다”며 어렵던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70년 전인 17살에 시집을 와서 시조부모와 시부모를 모시며 7남매를 낳았다. “평생 내 땅을 일궈보지 못했다”는 박 할머니는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그는 “농사를 참 많이도 지었는데 도조(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논밭을 빌린 대가로 해마다 내는 벼) 내고 나면 남는 게 얼마 없어서 먹을 것도 없을 때가 많았다”며 “그러면 품도 팔고 그랬지만 사는 게 어려워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는 또 14년 전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큰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는 “노인대학에 다니던 영감이 졸업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돌아오질 않고 아무 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다음날 수소문을 해보니 어느 병원 영안실에 있다고 하더라”며 “건강하던 양반이 차에 치여서 그렇게 가버리니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는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가 바로 ‘화투’다. 매일 마을회관에 모여서 이웃들과 화투를 친다는 그는 “점심때도 치고 저녁때도 치고 점당 10원씩 재미삼아 치는데 점수 계산도 하면서 머리도 쓰고 아주 재밌다”며 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한 이웃 할머니는 “종선 형님이 유독 기억력이 좋아 노랫말도 잘 외우고 화투도 잘 친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의 또 다른 장수 비결은 절제된 식사 습관과 자기관리다.

그는 “하루 세끼 밥을 챙겨먹긴 하지만 절대 배부르게 먹지 않는다”며 “배가 부르면 기진하고 더 피곤해지는데 그게 몸에 좋지 않다는 신호”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혼자 살기 때문에 특별히 해먹는 반찬도 없고 된장도 잘 안 끓이지만 적게 먹고 적당히 움직이는 게 보약이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가 자신의 건강을 이렇게 챙기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식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나이들고 몸까지 아프면 자식들한테 폐만 끼치게 된다”며 “내 몸을 내가 아껴서 죽을 때까지 건강하고 재밌게 살다 가는 게 지금 유일한 소망이다”고 말했다.

진천 = 채현식기자 hscha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