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도’ 이곳의 낮은 도심의 밤보다 낮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도시가 불볕더위로 벌겋게 달궈진 날. 운무가 밀려든 만항재 정상의 온도는 21.6도까지 내려갔다. 서늘하고 청량한 대기 속에서 만항재 정상의 낙엽송 숲길을 걷노라면 더위로 늘어졌던 온몸의 근육들이 탱탱하게 당겨지는 느낌이다.

연일 ‘폭염주의보’에다 열대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여름은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덥습니다.

입추에다 말복까지 지났으니, 이제 좀 바람 끝이

서늘해질 법도 한데, 더위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한껏 달궈진 아스팔트와 시멘트건물 속의

도회지 한복판에 갇혀 지내는 여름은 더더욱 힘겹습니다.

높은 습도와 훅훅 끼쳐대는 열기, 그리고 강렬한

뙤약볕에 온몸이 축 늘어질 정도입니다.

여름의 초입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참겠지만,

여름의 절정을 넘어서도 좀처럼 수그러지지 않는

늦더위는 우리를 더욱 지치게 합니다. 어찌나 견디기 힘든지,

‘그래 봐야 이제 보름 남짓’이란 위로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휴가의 절정이 막 지나고 우리 땅에서

‘가장 시원한 곳’을 찾아 길을 떠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마침 강릉 지방의 수은주가 37.2도까지 올라가고,

어디라 할 것 없이 전국이 아궁이에 풀무로 바람을 불어넣듯

벌겋게 달궈진 날이었습니다.

강원 정선과 태백의 경계쯤에 대덕산과 금대봉,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그 산줄기를 딛고 이쪽 저쪽을 넘나들면서

서늘한 바람을 찾아봤습니다.

그렇게 온도계를 들고 찾아간 곳이

정선의 만항재와 함백산 정상, 두문동재

그리고 태백의 검룡소와 용연동굴이었습니다.

운무가 걸린 만항재와 함백산 정상은 서늘하다 못해

소름이 오슬오슬 돋아날 정도였습니다.

정암사에서 만항재로 이르는 고갯길 중턱의

고한2리 마을에서는 아주머니들이

죄다 긴팔 옷을 덧입고 있었습니다.

21.6도. 여름꽃들이 만발한 해발 1330m의 만항재 정상 숲은

서늘한 운무가 휘감으면서 초록 이파리마다

영롱한 물방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함백산 정상으로 올라가자니 기온은 더 떨어져서

수은주는 20도 근방에 머물렀습니다.

태백의 검룡소도 물소리와 함께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했고,

용연동굴은 대여섯 계단을 내려서자 마치 물이 새듯

온도계의 숫자가 빠르게 내려가서 12.5도에 머물렀습니다.

이즈음 정선과 태백 일대를 찾아간다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태백의 구와우마을 해바라기 밭입니다.

7, 8월 평균기온이 19도에 머물러, 도시 중에서는

가장 서늘한 곳이라던 태백시도 올해만큼은 예외입니다.

이날도 태백 시내의 한낮 기온은 31도를 훌쩍 넘었습니다.

예년에는 순차적으로 피어나던 구와우마을의 해바라기들이

올해 한꺼번에 폭죽처럼 피어난 것도

다 이런 폭염 때문이지 싶었습니다.

그래도 구태여 더위를 무릅쓰고 해바라기 밭을 찾아간 것은

해를 바라보며 정염과 열정을 불태우는 해바라기 밭은

모름지기 세상을 다 태워버릴 듯한

뙤약볕 아래에서 더 화사하고 아름답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선·태백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