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출의 음악 언어 표현하고 싶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이먼 바커(사진 오른쪽)와 김동원 원광대 교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영화 속 한 장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호주 출신 세계적인 재즈 드러머 사이먼 바커는 지인이 건네준 녹음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지인은 ‘미친(Crazy) 음악’이라고 했지만 그에게는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영감 넘치는 음악이었다. 한국인 세습무(世襲巫) 고 김석출 선생이 연주하는 장구소리는 자신만만하던 젊은 재즈 뮤지션에게 머나먼 구도의 길을 걷게 한 복음이 됐다.

바커는 그 연주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7년 동안 17차례나 한국을 찾았다. 그러나 잡힐 듯 멀어져가는 그의 존재는 신기루와도 같았다. ‘마스터 킴’ 김석출 선생을 찾아가는 바커의 여정은 그의 친구이자 재즈가수인 에마 프란츠에 의해 카메라에 담겼다. 다큐멘터리 영화 ‘땡큐, 마스터 킴’은 그렇게 완성됐다.

영화 개봉에 맞춰 한국을 찾은 바커를 지난 25일 만났다. ‘인생의 스승’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는 바커의 모습에서는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한마디로 놀라웠습니다. 처음에는 서양의 드럼세트를 연주하듯이 한 명이 연주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도저히 어떻게 연주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죠. 너무도 놀라운 음악이었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마치 전설의 비기(秘技)를 전수받기 위해 은둔고수를 찾아가는 무협지같다. 바커의 여정은 2005년 국악인 김동원 원광대 교수를 만나면서 실마리를 찾는다. 그는 김 교수와 함께 판소리꾼 배일동 명창, 장구 대가 박병천 명인, 오고무의 진유림 대가 등 국악 고수들을 차례차례 만나고, 마침내 김석출 선생을 대면한다. 그리고 3일 후 김석출 선생은 세상을 떠났다.

“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에는 너무 연세가 많으셔서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연주를 시작하면서 선생님은 금세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주셨죠.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뮤지션으로서 그가 받은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이완(relaxation)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연주할 때 몸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게 됐어요. 몸이 완전히 이완돼야 한다는 것, 그로 인해 음악의 균형과 흐름, 순환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죠. 또 음악을 하나의 큰 형태라고 봤을 때 새로운 어휘(vocabulary)를 알게 됐다고 할까요. 전혀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즉흥 연주(improvisation)라는 측면에서 재즈와 한국 민속음악, 그 중에서도 김석출 선생의 동해안 별신굿 연주는 맞닿아 있다. 바커는 그의 연주를 ‘하나의 언어’라고 표현했다.

“김석출 선생과 가족들의 연주는 그 자체가 하나의 언어처럼 느껴졌어요.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로 그들의 언어를 표현하듯, 저도 김석출 선생의 음악적 언어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오랜 여정을 끝낸 소감에 대해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단 한 번의 만남. 아쉬움은 없었을까.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한 번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자체로도 큰 영감을 받았고, 그분이 그러셨던 것처럼 뮤지션으로서 평생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 ‘땡큐, 마스터 킴’의 영어 제목은 ‘인탠저블 애셋 넘버 82(Intangible Asset No.82)’다. 동해안 별신굿(중요무형문화재 제82-1호) 기능보유자 김석출 선생을 일컫는 말이다.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